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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생 Nov 17. 2022

조카와 나

 조카는 나의 과학 메이트다. 내가 하는 과학 이야기를 가장 유심히 들어주고 함께 나누는 사람은 조카다. 로켓을 발사하거나 특이한 천문현상이 있으면 나는 조카와 통화를 하며 길게 수다를 떤다. 평소와 달리. 평소엔 이모의 전화에 관심을 잠깐 가졌다 이내 중단된 놀이로 돌아가려 한다. 다 컸다고. 애기 때는 안 그러더니만. 조카는 2022년 현재 6살이다.

 태어나자마자 사랑할 수밖에 없던 조카의 생에 과학이 있으면 했다. 살다 어려운 시기는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는 그런 시기가 찾아온다면 광활한 우주에 등을 기대서 쉬기를 바란다. 경이와 신비, 호기심에 몸을 숨기면 고통의 눈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뒤늦게 알아낸 위로와 위안의 방식을 그는 더 빨리 알아내기를 바랐다. 그래서였다. 조카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왔던 건. 어느 날 녀석이 손에 쥐고 있던 물건을 떨어뜨리는 순간 같은 거.

- ㅇㅇ아 지금 손에서 이거 떨어졌지?

조카의 끄덕임.

- (바닥을 툭툭 치며) 공중에 떠 있지 않고 땅에 떨어졌어. (아래로 잡아당기는 손동작을 하며) 그건 다 아래에서 잡아당기는 힘이 있기 때문이야. 그걸 중력이라고 해. 중력. 뭐라고?

- 중력

- 맞아. (물건을 다시 떨어뜨리며) 뭐 때문에 떨어진다고?

- ...

조카는 대답 대신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돌려 자신의 일을 했다. 조카는 중력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날의 조카는 아직 기저귀를 차고 있었고 한 두 단어로 말을 했다. 20개월이 되려면 몇 달 더 있어야 했던 거 같다. 그래서 야무진 손을 가진 지금과는 달리 작은 손에 들고 있던 걸 쉽게 놓쳤다. 공중이란 단어를 모를까, 힘이란 단어는 알까, 잡아 당겨진 적은 있겠지만 잡아당긴다는 말은 모르지 않을까. 나는 조카의 이해를 돕기 위해 손짓 발짓을 동원 했지만 당연히 이해시킬 수 없었다. 그날 조카는 자신의 이해를 바라는 가장 길고 어려운 문장을 들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조카를 만나면 조잘조잘 이야기 한다. 20개월이 겨우 될까 말까 한 아이를 붙들고 중력을  설명하는 일 같은 건 더는 않지만 이해 가능한 이야기만 하지도 않는다. 나는 말하련다 너는 들으렴 하는 마음으로 이야기 하면 조카는 나 알아, 나 봤어 하고 이야기에 동참한다. 반쯤은 알아들어 맞는 말을 하고 반쯤은 엉뚱하게 알아들어 틀린 말을 한다. 나는 세상 최고 호응가가 되어 호들갑을 떤다. 로켓이 너무 신기하지 않냐고, 엄청나게 많은 연료를 그 얇은 통 안에 싣고 올라가는 게 대단하지 않냐고, 분리되어 버려진 로켓이 별똥별처럼 타버리는 게 재미있지 않냐고. 우리는 신기하고 대단한 것을 신기하고 대단한 만큼 표현하며 시시덕댄다.

 작년 어느 겨울밤엔 시골에서 별을 보고 있었다. 실은, 나는 별자리를 정말 모른다. 도시에서 자랐기 때문에 빛의 방해 속에서 하나씩 얼굴을 드러내는 별을 감상한 게 전부다. 그렇지만 하나씩 드러나는 별빛에 마음을 밝히게 되는 날들이 많았으니까, 조카도 별을 자주 보는 사람이 되면 좋겠으니까, 별자리 앱과 급하게 욱여넣은 겨울철 별자리 지식으로 별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별자리 이야기도 좋고 조카가 신나게 지어낸 별자리 이야기도 좋은 밤. 우리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 방에 들어와 하늘에 대한 이야기를 더 했다. 항성과 행성의 차이 같은 것을 이야기 하고, 지구의 위성인 달과 목성의 위성인 이오, 유로파, 그 외 덜 유명해 외우지 못하는 가니메데, 칼리스토의 사진을 찾아봤다. 이해 해도 좋고 이해하지 못해도 좋은, 그리고 무엇보다 돌아서서 다 잊어도 좋을 이야기를 오래 나눴다.

 이야기를 멈춘 건 조카의 다리가 걱정 되어서였다. 소파에 앉은 나와 달리 소파 팔걸이에 기대 선 녀석의 다리가 아프지 않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꽤 되었다. 앉은 나와 선 녀석의 눈높이가 맞아있었는데 그 작은 다리가 아프진 않을지 흘긋 흘긋 봤지만 어쩐지 선뜻 앉으라고 할 수 없었다. 앉으면 어떤 감흥이 깨질 것만 같았다. 앉은 자세는 조카의 감정을 담지 못할 것만 같았다.

- 엄마, 이러다 나 로봇박사 말고 우주비행사 되면 어떡하지?

조카가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였다. 이해 해도 좋고 이해 못해도 좋고 돌아서서 다 잊어도 좋을 이야기를 나누던 이유. 내가 주고 싶은 것은 지식이 아니라 그 느낌이었다. 네가 사는 이곳엔 신기하고 신비롭고 가슴 벅찬 것이 있다고. 그게 업이어도 좋고 업이 아니어도 좋지만 인간인 우리에겐 고양될 그런 것이 있음을 잊지 말라고. 그 감흥의 경험이 조카의 생에 켜켜이 쌓이길 바란다.

 조카는 이제 어렴풋이 중력을 이해하는 것 같다. 언젠가 조카에게 모든 물체는 잡아당기는 힘이 있다고, 보이진 않지만 지구도 우리를 잡아당기고 있다고,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조카는 '응 맞아, 그래서 우주인이 떠 있는 거 나 봤어.'라고 말했다. 그 정도면 중력이라는 말은 몰라도 개념 정도는 느끼고 있는 듯이 보인다.

 어제는 아르테미스 1 프로젝트(SLS) 발사가 있었다. 챙겨보려고 하지 않았는데 몇 번 연기된 발사가 40분가량 미뤄졌다는 것을 30분쯤 전에 알았다. 볼까 말까, 연차라 집에 있었지만 하던 일도 있었고 요즘은 무언가 흥이 나는 시기가 아니기도 해서 안 보려고 했는데, 그랬는데 어느새 홀린 듯 NASA 생중계를 틀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예전에 티켓도 끊어 두었다.(티켓 사진은 맨 아래에) 제대로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기대와 설렘이 가득한 발사 현장을 보고 있자니 여지없이 조카가 생각났다. 몇 분 남지 않았는데 전화를 할까 말까. 마침 유치원에 가지 않고 집에 있다고 했었는데. 잠깐 망설이다 전화를 했지만 조카는 집에 없었다. 진작 알려주지 그랬냐는 (조카를 돌보는)엄마의 핀잔을 뒤로하고 아르테미스 발사장면을 봤다. 발사는 무사하고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15분쯤 지나고 발사팀 디렉터가 멋진 연설을 시작했다. 그동안 마주했던 무수한 벽과 고생이 스쳐갔을 테고 함께 했던 팀에 대한 고마움 등 얼마나 많은 생각이 오갔을까. 울컥임이 느껴지는 그녀의 연설은 아름다웠다. 동료들과 자신이 다시 인류를 달에 보내고 나아가 화성에 가기 위한 프로젝트의 첫 걸음을 내딛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 넘쳐 보였다. 그 발사가 새로운 세대에 영감이 될 것이란 확신도 있어보였다. 오르기 어려울수록 더 멋진 풍경이 있을 거라고, 막막한 순간마다 자신과 동료들을 독려하기 위해 했던 말들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자신 있게 말했다. What a beautiful view it is! 그리고 타이를 자르겠다고 했다. 엥? 타이를? 그때 마침 전화가 왔다.

- 이모 몇 번 틀어야해?

조카였다. 아! 화면에선 그녀의 녹색 넥타이가 잘려지고 있는데. 이 중요한 순간에!(전통이라고 한다)

- 로켓? 그거 이미 발사 다 했어.

- 끝났어?

- 응. 발사는 다 끝났어. 그런데 이게  어디 가는 거냐면 달에 가는 로켓인데, 예전에도 사람이 달에 가기는 했는데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많아서 다시 가려는 거야. 오늘은 사람을 태운 건 아니고 인형을 태워서 보냈어. 로켓 이름이 뭐냐면...

- 누리호?

(내게는 너무) 귀여운 녀석. 일전에 누리호 발사를 알려준 보람이 있었다. 발사 영상 링크를 보내주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가능하다면 다음 누리호 발사는 조카와 함께 봐야겠다. 세계 최초 편대비행 위성인 우리의 도요샛이 실린다고 하니 함께 이야기 하면서. 언젠가(찾아보니 2년 7개월 전 쯤) 담당 박사님이 설명해주시는 방송을 들었는데 다시 듣고 가야겠다. 그래서 나의 과학 메이트와 함께 대단하고 놀라운 것을 대단하고 놀라운 만큼 기뻐하며 즐거워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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