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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노신 Feb 17. 2020

직방 광고의 거짓말

불우한 환경에서도 '나답게' 살아가라는 주문은 왜 나쁜가.

출근길, 바쁜 발걸음을 재촉하다 신호 대기 중인 버스의 전면 광고에 눈길이 멈췄다.


"집 같은 건 신경 안 써. 어디에 살든 나답게 살자."

이 광고는 부동산 애플리케이션 '직방'의 광고였다.


광고 속 청년은 당당한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살짝 내려다보는 눈빛이 오만해 보이기도 한다. 광고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젊음이 주는 자신감, 당당함, 패기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어디에 살든' 당당할 수 있고, '나다운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인공을 내세워 "집 같은 건 신경 안 쓴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만일 광고주가 지금의 청년세대를 대변하고자 이 청년을 등장시킨 것이라면, 청년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그것은 판단 착오라고 말해 주고 싶다.

청년세대에게 있어서 주거 문제는 '신경 안 쓰는' 문제가 아닌, 신경을 쓸 수가 없는 종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주거를 해결할 만한 자본을 얻지 못했고, '지. 옥. 고'라 불리는 지하, 옥탑방, 고시원으로 내몰리는 현실 속에 주거 문제 말고도 해결해야 할 다른 문제들이 매일 턱밑까지 도달해 있기 때문에 그저 견뎌내는 좌절스런 상황을, '나답게 살자'는 말 따위로 자위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의 얼굴을 한 누군가를 세워두고 "집 같은 건 신경 안 써, 어디에 살든 나답게 살자"는 말로 우리 세대를 대변하는 것은 잘못되었을뿐더러 나쁘기까지 하다. 이는 도저히 집 같은 건 신경 쓸 수가 없는 현실을 별 것 아닌 것처럼 축소시키고, 젊음이란 그런 문제쯤은 으레 감당하고 '나 답게' 이겨 나가야 하는 존재로 판단하고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화면을 바라보는 청년의 얼굴이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누가 봐도 거짓말인 말을 자기기만적으로, 조소하듯 내뱉으며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을 읊조리는 자포자기의 심경일까.

혹은 사회적인 불능을 자기의 탓으로 돌리고 '젊기에 당연하다, 혹은 젊으니 괜찮다'는 자기 합리화에까지 도달해버린 어리숙한 청년의 변명일까.


뭐가 되었든 이 광고가 거리로 퍼트린 말은 진실이 아니다.

우리는 집 같은 건 신경 쓸 수 없고, 그러한 상황에서 나답게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것이 현실이며, 우리 세대의 진실이다.


그러한 진실을 의도적으로, 혹은 착오에 의해 왜곡한 광고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심지어 나쁘다고. 말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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