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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노신 Feb 08. 2021

'삐빅-' 차별입니다

공간은 어떻게 차별을 가시화하는가

주어진 공간의 크기가 곧 권력의 크기이다


대학교 교직원으로 일하면서 자주 했던 생각이다.

내가 일하던 단과대학 행정실은 건물 2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내부 구조는 파티션 없이 오픈된 사무공간이 있고, 벽으로 분리된 방이 있었다.

방의 크기는 전체 사무공간의 1/3 정도 될 듯싶다. 이 방의 이름은 '학장실'이었고 학장님 혼자 사용하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공간을 10명 정도 되는 직원들이 썼다.


내가 사용하는 공간이 비좁은 것은 아니었고, 학장실이 넓어야 할 이유도 있었다.

각종 회의가 있을 때 교수님들은 학장실에 둘러앉아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또 학장님을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았기에 응접의 공간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담당하고 있는 직의 중요성과 영향력을 판단하여 주어진 공간이었다.


 '공간'에 대해서 보다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때는 따로 있었다.

출근을 하다 보면 1층 로비 오른편에 경비원이 머무는 작은 창이 딸린 부스가 있었고, 그 부스 내부에 쪽문으로 연결된 작은 방이 있었다. 그 방의 이름은 '환경 미화원실'이었다.

우리 단과대학 미화 직원은 내가 알기로 여섯 분이다. 연령이 50대 중반 이상 된 분들이었다.

업무가 밀리는 기간에 새벽 6시에 출근한 적이 있는데 환하게 불이 켜진 사무실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미화 직원분들은 사무직원들이 출근하기 전 새벽에 청소를 시작했다. 아침 작업이 끝나면 잠시 몸을 누이고 휴식을 취하는 곳이 '환경 미화원실'이었다.


그 방에 가본 적이 있다. 무언가 안내를 전하기 위해서였고 방문을 두드리자 문이 빼꼼 열렸다.

6-7평 정도 될까 말까 한 방에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앉거나 기대어 휴식을 취하고 계셨다. 공용 사무공간보다 훨씬 작고, 학장실보다도 작은 방이었다.

그때 나는 같은 건물에서 일하지만 다르게 대우받는 노동의 지위를 명징하게 확인할 수 있었고, 그러한 차이를 두기로 결정한 사람의 이유는 무엇일지 생각하게 되었다.


왜 우리는 '노동'이라는 같은 범주 안에
 이렇게 많은 차별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일까?


이렇게 가시적인 공간의 차이를 만들면, 자연스럽게 수행하는 노동에 대해서도 인식의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더 넓고 쾌적한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은 중요한 사람이고, 상대적으로 좁고 어두운 공간을 배정받는 사람은 덜 중요한 사람인 것 같은 인식 말이다.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눈에 바로 보이는 현상이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든다.

자연인으로서 동등한 자격과 권리를 지닌다는 원론적인 이야기가 머쓱할 정도로 현실 속 권리의 등고선은 좁고 가파르다. 점유한 공간의 차이는 그러한 구조적 불평등을 시각적으로 확인하게 한다.


그렇게 시각화된 불평등은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주지만 그 구조 내에 머무는 당사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누군가의 넓은 공간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배정된 좁은 공간으로 걸어 들어가는 행위가 반복되며 스스로도 자신을 '덜 중요한 사람'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든 차별은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동안 그것을 겪는 사람의 마음속에 내재된다.

그리고 나는 대학이라는,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것 같은 장소에서 반복되는 이러한 차별의 문제가 견디기 힘들었다.


공간으로서 나타나는 지위의 차별, 합법적으로 존재하는 정규직과 계약직 차별, 학생들 사이에서 존재하는 차별들, 내국인과 외국인, 여성과 남성, 성소수자와 비성소수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에 대한 생각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네가 그렇게 고민해봤자 달라지는 것 하나도 없어."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시하기에는 너무나 본질적인 문제였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차별받고 싶지 않고, 차별하고 싶지 않은, 존엄함을 가진 사람 말이다.


건물을 설계하며 공간의 용도를 나눌 때, 노동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 않게 공간을 배정하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그곳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이 각자 동등한 공간을 점유하며 같은 목표를 위해 일하는 '동료애'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구의 일이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하지 않고, 누구의 존재가 더 가치 있거나 덜 가치 있지 않은, 그런 것들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구분하고 공고히 하지 않는 우리라면 정말 좋겠다.


지니가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면 나는 첫번째로 세상에 있는 차별을 1/3 정도 없애 주기를 부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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