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내가 만든 장소들
"내일은 파스타가 먹고 싶어."
"그럼 '거기' 갈까?"
"그래 '거기' 가자."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고 나서 1, 2, 3초가 지난 뒤에 동시에 깔깔 웃고 말았다.
'거기'라니 어디를 말하는 거며 또 좋다고 할 건 무언가. 하지만 우린 알고 있었다.
얘기를 나눠보니 그가 지칭한 '거기'가 내가 생각한 '거기'가 맞았으며 "역시 파스타는 '거기'지~!" 하면서 또 한 번 깔깔대며 다음 화제로 넘어갔다.
만난 지 만 2년을 채운 남자친구와 요즘 들어 이런 순간이 잦다.
같이 있다가 동시에 같은 말을 내뱉는다든지 같은 생각, 같은 행동을 하고 위의 일화처럼 '그거, 저거'같은 대명사로 소통한다.
연애 초반에 폭풍 같은 적응기를 거치며 여러 패턴으로 다투기도 했던 우리가 요즘은 웬만해서 다투지 않으며, 다투더라도 화해까지 1시간을 넘기지 않게 되었다. 왜 마음이 상했는지, 뭘 바라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며 나 역시 그렇게 헤아리게 된 것이다.
관계라는 것은 두 사람이 만들어 가는 장소다. 그들만의 시간에 따라, 그들만의 언어로 소통이 이루어지는 장소 말이다.
그 장소는 당사자 사이에서만 내밀하게 열리며 다른 누군가가 함께 공유할 수 없다. 보이지는 않지만 명백한 드나듦이 존재하며 관계가 유효기간을 다한 후에는 텅 빈 채 남겨지기도 한다.
집을 지을 때 기초공사부터 튼튼해야 하듯이 관계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알아가며 갈등하고 이해하는 과정은 엎치락뒤치락, 땅을 고르고 바닥을 평평히 하는 기초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무언가를 허투루 넘기거나 확신이 지나치면 미래에 큰 위험을 초래하는 것처럼 관계 역시 투입하는 정성에 비례해 완성되는 것임을 배운다.
물론 많은 노력을 해도 잘 안 풀리는 관계도 있다. 그러니 처음부터 튼튼한 자재를 꼼꼼히 선별하듯 잘 맞고 오래갈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일이 중요하다.
누군가와 만나는 일은, 공들여 지은 둘만의 장소로 들어가는 일이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저마다의 방이라면 내가 힘들 때 가장 먼저 찾고 싶은 방은 어디일까. 또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방이 되어주고 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장소'로서의 관계에 대한 애착이 더욱 커진다. '그'보다도 '나'보다도 '우리'가 중요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우리는 홀로 살아갈 수 없으며 언제나 관계 속에 있다. 내가 속한 관계, 그 각각의 장소들이 안녕한지 돌아보아야겠다.
오래 비워둔 장소들을 이따금 쓸어주고 그리움이 머문 장소에 들러 그림 하나 걸어둔 뒤 바라보다 혼자 거닐어 보아야겠다.
너와 내가 만든 장소들, 그 장소들의 모습과 역사가 곧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