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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노신 May 24. 2020

아무 노래, 아무 시 (2)

쓰지 않고도 살 수 있었다, 잘.

*이번 편에는 작가 자신의 인생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TMI 주의)




대학을 졸업하던 무렵 내가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무용함'이었다.

내가 해 온 일에 대한 무용함, 내가 노력을 쏟아온 시간과 그 결과에 대한 무용함.


대학에서 다른 친구들이 취업 준비를 하고, 실용적인 일들을 할 때 나는 현실과 동떨어진 '시 쓰는' 일에 모든 힘과 시간을 썼다.

하지만 돌아보니 그것은 실용성이 없고, 그래서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게 되고, 누군가의 관점에서는 내가 대학시절 동안 '아무것도 안 한' 것과 마찬가지인 시간을 보냈다고 여겨질 거라 생각을 하면 괴로웠다.


누가 시를 쓰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내가 좋아서 한 일이면서도 화가 났다. 그 일 때문에 내 인생이 피해를 본 것 같았고, 누군가에게 속아 잘못된 선택을 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아주 이상한 방식으로 도피했다. 내 인생을 망쳐버린 시에 대한 복수심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세상에서 무시하고 값을 매겨주지도 않는 시 대신에, 세상이 알아주고 많은 돈을 버는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활자와 언어로 만들어진 것 중 가장 힘센 것, 쉽게 무시당하지 않고 실용적이고 단단한 외연을 가진 것. 법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부터 나는 법학과목을 수강하며 로스쿨 진학 준비를 했다.

몇몇 법학 강의를 들었고 밤새워 법전을 읽으면서 공부를 했다. 중간고사 때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중간 정도 등수를 받았고 교수님께 면학 상담을 신청해서 상담을 하러 갔다.

문학을 공부하던 사람이 왜 법학을 하려고 하냐는 말에 "제가 잘하는 것이 언어이고, 법 역시 언어이기 때문에"라고 말했다. 교수님은 반만 맞고 반은 틀린 말이라고 했다. 문학의 언어와 법의 언어는 다르다고.


"자네가 문학을 하던 사고방식과 몸의 감각들이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것과는 아주 다를 거야. 그래서 체질을 바꾼다는 생각으로 공부해야 하고, 어찌 보면 180도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해.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먹고 숨 쉬고 생각하고, 살아가야 한다고. 다시 태어나는 일이라고 보면 돼. 그걸 할 수 있겠나?"

당시에 상담에서 교수님이 나에게 해 준 말이었다.


기말고사까지 나는 최선을 다해 공부했고 결국 A학점을 받았다. 그 정도면 가망이 없지는 않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로스쿨 진학을 위해 국회 인턴에 지원해서 경력도 쌓았다. 이후 2018년에 1년 동안 로스쿨 입시에 뛰어들었다.


스터디에서 만난 사람들은 교수의 조언처럼 나와 '체질적으로 다른' 사람들이었다. 글쎄, 사람들을 그렇게 나누고 판단하는 일이 그렇게 좋은 일은 아니지만, 돌아보면 그들은 나보다는 훨씬 실리에 밝았고, 취할 것과 버릴 것을 선택하는 데 있어 간결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스터디를 하면서 7월까지 LEET를 준비했다. 이때 나는 일도 하면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이었다. 일과 공부, 두 가지밖에 없는 삶 속에서 어느샌가 나도 그들처럼 조금은 간결한 몸과 마음의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당장 오늘 해내야 하는 일이 매일매일 닥쳐 있었기 때문에 그밖에는 아무런 다른 생각도, 감정도 들지 않았던 것이다.


7월 둘째 주 시험을 앞두고 1주일간 연차를 내고 매일매일 집에서 공부에만 집중했다.

그러던 날의 어느 오후였다. 시간은 4시를 넘어 노을이 창을 건너 책상 위의 책 위로 한 줄기 빛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문제 푸는 데에 집중을 하다가 잠시 그 햇살에 이끌린 듯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바라봤다.

갑자기 지난 1년간의 시간이 스쳐 지나가면서 만 1년이 넘도록 시를 읽지도, 쓰지도 않고 그리워하지도 않으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시를 쓰지 않고 '살았다'는 사실에서 환한 깨달음이 찾아들었다.


고등학교 1학년 이후 전문 기관에 소속돼 시를 쓰기 시작했고, 대학에 진학하고 또 등단을 위해 시를 쓰면서,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나는 '시를 쓰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내 모든 것을 가져가고 온 몸과 마음을 다해 나를 추동하는 '시 쓰기'에 대한 무모한 이끌림을 표현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살아있는 것이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시에 대해서 생각하지도 않고, 읽거나 쓰지도 않으면서, 아무 생각도 없이 잘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있는 것이다.


이 순간 나는 '시에 사로잡혀서 여기까지 끌려 온' 사람이라는 피해의식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시를 좋아한 것도, 시를 쓴 것도 나였다. 그래서 힘들어졌다면, 그건 내 선택의 결과다.

그 당연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고 어쩌면 영영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때의 심정에 대해서 나는 급히 노트에 적어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시를 쓰며 사는 삶이 가장 아프다.

그리고 가장 좋다.

시를 안 쓰고도 살 수 있다.

시를 쓰지 않고서 살아갈 수 없으리라 생각한 예전과는 다르다.

안 쓰고도 살 수 있다, 잘.

만약 내가 시를 쓰며 살아가게 된다면,

그건 내가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고

그 결정에 따라 여러 도움도 받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예전처럼 어찌할 수 없음은, 견뎌낼 수 없음은, 감당할 수 없음은, 주체할 수 없음은

남아있지 않다.

지금 나는 매우 괜찮다.

시를 쓰든 안 쓰든 나로 사는 것이다.

자유의지에 의해. 그뿐이다.

-2018년 7월 14일"



얼마 후 나는 시험을 치렀고, 이후의 로스쿨 입시 과정에도 최선을 다해 임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내가 살아오며 개발했고 자신 있었던 모든 능력치를 쏟아부었고 결과를 기다렸다. 그리고 실패했다.


이 과정을 통해 내게 남은 것은 결국 7월 중순 어느 날 나에게 지는 해와 함께 내려 비치던 한줄기의 빛, 그 빛이 전해주고 간 깨달음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살아갈 내 인생에 대해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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