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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May 11. 2024

비와 당신의 T버전

비와 나

내일 등산을 가야 하는데 비가 온단다. 나는 비를 싫어했다. 과거형인 이유는 요즘 가 주는 감성에 흠뻑 빠져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T 감성을 내뿜었던 나는 비가 오는 날은 옷과 신발이 젖어서 싫었고, 차가 막혀서 싫었다. 버스 안에서 젖은 우산들에 치이는 건 정말 최악. (같은 이유로 눈 내리는 날도 싫어하는 T형 인간) 불편한 것들이 잔뜩인 날에서 빗소리가 좋다는 둥 감성을 찾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비를 마냥 싫어할 수는 없었던 건 비가 내린 다음날을 가장 좋아했기 때문이다. 가장 좋아하는 날씨를 만나려면 어떻게든 싫어하는 비를 만나야 했으니깐.


삶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



비가 내리고 난 다음의 그 상쾌한 공기가 좋았다. 비를 흠뻑 맞은 나무들이 뿜어내는 그 냄새가 좋았고, 먼지를 씻어 내리고 난 후 그 깨끗한 풍경이 좋았다. 나는 여전히 비 내리고 난 후를 가장 좋아하는 날씨로 꼽는다.


보슬비가 내리던 날. 성수의 카페 '할아버지공장'에서 올려다 본 모습.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요즘은 비가 싫지 않다는 것이다. 요즘 내 휴대폰 갤러리에는 비 오는 날의 풍경을 찍은 사진들로 가득하다. 최근 비가 내리는 날들이 많아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비와 함께 만난 꽃과 초록잎들은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비는 튤립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비 오는 날의 에버랜드.  비 내리는 봄날의 놀이동산은 예뻤다.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오늘 아침 공방으로 향하던 버스 안. 내일 등산 가야 하는 데 비가 오나 안 오나 하늘을 한참 봤고, 지금은 저녁 7시 반 집 안.

밖에서 비 내리는 소리 아니 내리는 비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집에 바라본 비

빗소리와 함께 따뜻한 차 한잔하고 싶어지는 저녁.

그리고 내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씨에 사랑하는 반려견과 함께 힘차게 산을 오르겠지.


비는 비 내린 다음날을 기대하게 한다.


비 내리는 날 만난 교보문고 광화문점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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