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었던 날을 보내며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좋아한 지 얼마나 됐다고
2024년 6월을 끝으로 나는 글을 쓰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글을 쓰지 않은 채 일정 시간이 지나자
요즘 작가님의 관심사는 뭐냐고 물으며
부드러운 말투로 글 좀 써보라고 브런치에서 알림이 온다.
그 알림을 몇 번이나 받고도 모른 채 지나갔다.
12월을 끝으로 알림을 못 받은 것 같다.
이걸 왜 기억하냐면 지금 이 글을 12월에 쓰다 말았기 때문이다.
12월의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다
꼭 쓰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 브런치를 켰다.
글을 쓰려는데 그간 글을 쉬게 된 나름의 이유를 적어야 흐름상 맞겠다 싶어 그 이야기부터 적어 나갔다.
그러다 지하철 환승을 위해 글쓰기를 잠시 멈췄고,
환승한 지하철은 사람이 너무 많아 적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또 멈춰졌다.
지금 적다만 글을 읽어보니 그냥 하기 싫어서 안 했다는 말을 참 길게도 적었다.
그날의 적다만 글을 곧 다시 이어서 적으리라던 결심은 어느샌가 눈 녹듯 사라졌고,
결국 정말 적고 싶었던 이야기는 메모해 놓지 않았기에 기억나지 않는다.
12월 글을 끄적인 어느 날 이후 적다만 글이 있다는 핑계로 (그 글을 마무리하든 지우든 수습해야 하기에)
또 브런치를 외면했다.
조금 전 정말 오랜만에 5년 일기장을 펼쳤다.
'오랜만에'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24년 2월 시작했던 5년 일기도 어느샌가 멈추었다.
페이지를 넘기다 눈에 들어온 12.22(일)의 일기.
이날은 24년 여름 이후 처음 일기를 적은 날이다.
수많은 공백은 정리되지 않은 내 마음의 표현.
무기력이 만드는 공백 속에서 이젠 일어나야 하는 때.
- 24.12.22(일) 일기 中
무언가를 쓴다는 것 - 내 생각, 마음을 표현한다는 게
참 힘든 시기였구나.
일기 뒷부분을 보면 구체적으로 쓰여있진 않지만
저 날 뭔가 희망적인 날이었구나.
그래서 나는 쓸 수 있었구나. 오늘처럼.
그날도 오늘도 나에게 특별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오늘은 12.22일의 일기를 읽은 것,
24.3.23 일기를 보며 웃으며 25.3.23일을 채워나간 것.
사소한 이 일은 나를 글 쓰게 만들었다.
그리고 12.22일의 일기를 보며 든 또 다른 생각.
나는 늘 일어서려고 부단히 애를 쓰고 있었구나.
24.12월 말은 정말 많이 힘들고 애쓰던 날들인 게 기억나는데
그때도 '이젠 일어나야 하는 때'라고 일어나지 못하는 나에게 뭘 그렇게 부담을 주었을까?
나를 일어나게 만드는 것, 글을 쓰게 하는 것 - 나를 끌어올려주는 건
나의 채찍질이 아니라
예전에 썼던 일기를 다시 읽어보는 것처럼
내 마음을 마주하는 것.
예전에 썼던 일기가 과거의 내 마음이라면
나에게 필요한 건
지금 현재 내 마음을 마주하고 인정해 주는 것.
쓰고 싶지 않다면 쓰고 싶지 않은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있는 그대로.
대신 일기장을 넘겨봐야 어느 날의 일기를 읽을 수 있듯이
손가락 하나 정도는 까딱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