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기억

참빗, 가려운 생의 매듭을 풀어내던 손길

by 얼웨즈 Always

기억은 가끔 코끝을 스치는 비누 향기나 살갗을 파고드는 서늘한 바람을 타고 불쑥 찾아온다. 내게 있어 유년의 기억은 할머니의 무릎 위, 그리고 머리칼 사이를 촘촘히 훑고 지나가던 참빗의 서걱거리는 소리에 박제되어 있다. 반세기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에도, 할머니가 참빗으로 머리를 빗겨주실 때 느꼈던 그 형언할 수 없는 시원함은 여전히 내 정수리에 생생한 감각으로 남아 있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 할머니의 무릎은 세상에서 가장 안온한 요람이었다. 퀴퀴한 솜이불 냄새와 할머니 특유의 분내음이 섞인 그 품에 머리를 맡기고 누우면, 세상의 어떤 소란도 발을 붙이지 못했다. 할머니의 거친 손마디가 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길 때마다 전해지던 그 투박한 온기는, 어린 내게 전해지는 무언의 축복이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할머니의 낮은 숨소리와 함께 내 두피를 정갈하게 길들이던 참빗의 리듬이 들려오는 듯하다. 그것은 단순히 머리를 빗는 행위를 넘어, 손자의 남루한 일상을 당신의 사랑으로 촘촘히 정돈해주시던 거룩한 의식이었다.

1970년대, 그 시절의 풍경은 지금의 잣대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결핍의 시대였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온수로 샤워를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었다. 머리를 감는 행위조차 거창한 의식과도 같았다. 수도꼭지만 틀면 따스한 온수가 콸콸 쏟아지는 지금과 달리, 당시엔 곤로 위에 양은 냄비를 올려 석유 냄새를 맡으며 물을 데우거나, 연탄불 위에서 은근하게 물이 덥혀지기를 기다려야 했다. 찬바람이 서늘해지는 늦가을부터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머리에 자연스레 기름기가 돌아 '천연 세팅'이 되는 날이 허다했다.


동네에서 제법 형편이 낫다는 집들도 한 달에 서너 번, 큰맘 먹고 온 가족이 읍내 대중목욕탕으로 '행사'를 떠나는 것이 고작이었다. 우리 집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목욕탕 가는 날이면 평소 온화하시던 이모부는 공포의 대상으로 변모하곤 하셨다. 평상시엔 성인군자가 따로 없으셨으나, 탕 안에만 들어서면 마치 숙제라도 해치우듯 조카들의 몸에 쌓인 '때 옷'을 박박 밀어내셨다. 벌겋게 달아오른 피부가 따가워 칭얼거려도 이모부의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그 서슬 퍼런 '폭군'의 손길 끝에 얻어낸 매끄러운 피부는 며칠 못 가 다시 유년의 흙먼지 속에 파묻히곤 했다.

멋에 민감했던 사춘기 형과 누나들은 한겨울에도 펌프질로 퍼 올린, 손끝이 얼얼한 냉수로 머리를 감으며 고집스러운 '멋'을 부렸다. 하지만 철부지였던 나와 또래 아이들은 어머니에게 머리채를 붙잡힌 채 억지로 머리를 감는 시늉만 겨우 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들의 머리칼 속에는 원치 않는 불청객들이 공생하곤 했다. '이'와 그들의 알인 '서캐'가 머리숲을 무대 삼아 사방팔방 진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수업 시간에도 여기저기서 머리를 긁적이는 친구들을 보는 것은 흔한 풍경이었다.

그런 우리들에게 할머니의 '참빗 처방'이 내려지는 날은 축제와도 같았다. 할머니께서 장롱 깊숙한 곳에서 무슨 대단한 보물이라도 되는 양 누런 종이봉투를 꺼내시는 날이면, 우리 삼남매와 옆집 이모네 남매까지 다섯 아이의 눈동자는 할머니의 손끝을 향해 반짝였다. 겹겹이 접힌 종이를 조심스레 펼치면,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 촘촘하게 엮은 황금빛 참빗이 그 자태를 드러냈다.


할머니는 엄격한 서열에 따라 우리를 한 명씩 무릎 사이에 앉히셨다. "자, 순서대로 앉아라." 할머니의 나직한 명령에 아이들은 앞다투어 자리를 잡았다. 빗질이 시작되면 할머니는 마치 게시판에 공고라도 하듯 아이들의 머릿속 사정을 낱낱이 읊으셨다. "에구, 이 녀석은 이가 두 마리에 서캐가 세 개네.", "요놈은 이가 한 마리인데 서캐는 없구먼.", "아이고, 계집애가 이는 다섯 마리에 서캐는 한 다스네!" 장난기 가득한 할머니의 중계방송에 아이들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고, 할머니는 짐짓 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손길만큼은 정성을 다해 빗어내리셨다.

참빗의 살이 두피를 긁고 지나갈 때의 그 아찔한 시원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가려운 곳을 정확히 짚어내는 할머니의 손길은 어떤 명의의 침술보다 예리하고 정확했다. 흰 종이 위로 툭툭 떨어지는 검은 '이'들을 손톱으로 꾹 눌러 '톡' 소리를 내며 잡을 때의 쾌감. 그것은 단순한 위생의 문제가 아니라, 내 몸속의 잡념과 가려움을 동시에 씻어내는 정화의 의식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다. 화려한 샴푸와 컨디셔너, 온갖 헤어 제품이 넘쳐나고 '이'라는 존재는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옛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세상은 더 깨끗해졌을지언정, 내 마음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던 그 촘촘한 온기까지 채워지지는 않은 듯하다. 할머니의 투박한 무릎 위에서 느끼던 그 서늘하면서도 따스했던 감각이 그리운 것은, 아마도 그 빗질 속에 담겼던 '사랑'이라는 이름의 정성 때문일 것이다.

참빗은 단순히 머리를 빗는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척박했던 시절, 서로의 지저분함조차 보듬어 안았던 가족의 연대였고, 손자의 가려움을 당신의 손으로 직접 덜어내 주시던 할머니의 지극한 자애였다. 문득 거울 앞에 서서 듬성듬성해진 머리칼을 보며 생각한다. 내 삶의 헝클어진 매듭들도 그날의 참빗처럼 촘촘히 빗어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할머니의 누런 종이봉투 속에서 나오던 그 참빗의 살들이, 오늘따라 유독 시리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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