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숨결 위에 내려앉은 겨울의 첫 마음

가을이 미처 떠나지 못한 자리에서 겨울을 만나다

by 얼웨즈 Always

가을과 겨울이 한 자리에 앉는 순간


바람이 잔잔하게 흘러가던 오후, 시선이 우연히 멈춘 곳에는 아직 채 소멸되지 않은 가을이 있었다. 바스락거리며 일렁이는 낙엽 하나. 그리고 그 주변을 조심스레 감싸고 있는, 햇살에 반짝이던 얇은 눈 결정들. 그 순간, 문득 떠오른 단어는 ‘공존’이었다. 분명 가을은 끝났고, 겨울은 시작되었는데, 이 두 계절은 마치 서로를 밀어내지 못한 채 잠시 겹쳐 서 있었다.


낙엽은 이미 자신의 계절을 보냈다. 단풍의 절정도 지났고, 바람 앞에 흔들리는 힘조차 예전만 못하다. 그런데도 그 위로 겨울의 첫발이 조심스럽게 내려앉아 있었다. 마치 오래된 친구가 갑작스레 찾아왔지만, 문턱에서 속삭이듯 말하는 듯했다. “조금만… 같이 있어도 될까?”



눈은 순간의 설렘 같은 존재다. 따뜻한 빛을 받으면 금방 사라지고, 스치듯 지나간다. 그 하얀 조각들이 낙엽 위에 내려앉아 반짝이던 그 모습은 오래 남을 장면이었다. 녹아가는 눈과 말라가는 낙엽이 함께 만들어내는 순간은, 그저 자연의 풍경을 넘어 작은 삶의 질문처럼 다가왔다.


왜 이 둘은 서로 부딪히지 않고 이렇게 어우러져 있을까.
왜 겨울은 가을을 완전히 지우지 않고 천천히 스며들까.
왜 가을은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면서도 마지막 흔적을 남겨놓을까.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안에는 ‘사라짐’과 ‘시작됨’이 동시에 있었다. 마치 우리가 어떤 관계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길을 시작할 때 느끼는 복잡한 감정처럼. 완전히 비워지지 않은 자리에서 새로운 마음이 살며시 들어오는 순간. 감정과 감정이 겹쳐지고, 시간과 시간이 서로 기대며 흐르는 그 흐릿한 경계의 시간.

바로 그 경계가, 이 사진 속에 있었다.


갈빛 낙엽은 여전히 따스했다. 겨울이 시작되었지만, 가을의 온기는 아직 남아 있었다. 눈은 처음이었기에 더 순수했다. 아무것도 덧칠되지 않은 새하얀 마음처럼 가볍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 부드럽고도 섬세한 만남은 자연이 내게 들려준 작은 비밀 같았다. 서로 다르지만, 그 다름이 조화를 만들어낸다는 것. 완벽히 같지 않아서 오히려 더 아름답게 어울릴 수 있다는 것.


우리는 종종 ‘완전한 전환’을 꿈꾼다. 이별이면 깔끔한 이별, 시작이면 확실한 시작을 원한다. 하지만 실제의 삶은 대개 이렇게 경계 위에 있다. 조금 남아 있는 온기와 조금 내려앉은 차가움이 뒤엉키며 천천히 변해간다. 가을과 겨울이 공존하듯, 우리도 늘 ‘무언가 끝나가는 중’이면서 동시에 ‘무언가 시작하는 중’일지 모른다.


사진을 찍던 순간, 손끝에 닿던 공기의 온도도 두 계절을 닮아 있었다. 햇살은 따뜻했지만 바람은 차가웠다. 따뜻함보다 차가움이 조금 더 강하면 겨울이 되고, 차가움보다 따뜻함이 조금 더 많으면 가을이 된다. 그렇게 계절은 언제나 아주 작은 차이로 변해간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어떤 날은 마음이 무너질 듯 차갑지만, 누군가의 말 한 줄, 햇살 한 조각, 오래된 기억 하나가 마음을 조금 따뜻하게 하는 순간이 있다. 그 미세한 차이가 하루를, 다시 한 번 살아볼 용기를 만든다.


그렇게 가을과 겨울이 만나던 그 자리에서, 나는 공존의 의미를 생각했다. 서로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으면서, 그러나 겹쳐 있는 시간. 완전히 떠난 것도 아니고, 완전히 온 것도 아닌 그 틈. 그 틈에서 새로운 계절은 준비되고, 시간이 흐른다.


공존은 어쩌면 ‘함께 있음’이 아니라 ‘함께 머무를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겨울은 가을을 채찍질하지 않았다. 가을은 겨울을 거부하지 않았다. 둘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한 채, 한순간을 함께 숨 쉬었다.


나도 내 삶의 여러 계절들을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과거의 나를 완전히 지우려 하지 않고, 미래의 나를 조급히 만들지 않으면서.가던 마음과 오던 마음을 잠시 함께 앉혀두고, 서로의 온도를 느끼며, 마지막을 천천히 보내고 처음을 조심스레 맞이하는 일.


사진 속에서 가을과 겨울이 공존했듯, 우리도 늘 여러 감정과 순간을 안고 살아간다. 기쁨과 두려움, 안정과 불안, 기대와 회의, 따스함과 차가움. 각각의 감정은 다른 계절처럼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때로는 기이할 만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그 어울림 속에서 우리의 하루는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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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눈이 녹으면 흙이 보이고, 그 위에 다시 새순이 돋는다. 낙엽이 썩어가면 그 자리는 봄의 뿌리가 깃든다. 변화의 순간은 늘 이렇게 겹친다.


가장 눈부신 순간은 언제나 ‘경계’ 위에 있다.
가을이 떠나는 자리에서 겨울이 시작되고, 그 사이에서 우리는 삶의 결을 배운다.
사진 한 장 속에 담긴 계절의 만남을 오래 들여다보며, 나는 오늘의 마음을 천천히 정리해본다.

지금 내 삶에도, 어쩌면 공존이 필요하다는 것을.


완벽함보다 여유가, 단절보다 연결이, 지워내기보다 품어내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계절처럼, 언젠가 모든 것이 자연스레 흘러갈 것이라는 것을.


251204 by 얼웨즈(Alw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