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랩메이트는 있지
박사 말년의 어느 날, 나보다 적어도 다섯 살은 어린 랩메이트 K에게 인생에 대해 푸념한 일이 있다.
“K야 내가 어제 문득 생각을 해봤는데.”
“응응.”
“우리 오빠는 배우자도 있고 아이도 있고 직업도 있고 차고 있고 집도 있고 심지어 고양이도 있단 말이야. 근데 나는 그중 하나도 없어. 하나도 없다구! 어떡하지? 망했나? 이거 이래도 되는 건가? 지금이라도 뭔가 해야 되나?”
뭐 결국엔 내가 선택한 길이긴 한데 갑자기 문득 와 이거 망한 건가 싶을 때가 있지 않나. 나도 내가 이 시점에 이렇게까지 기반과 계획과 대책이 없을 줄은 몰랐다.
패닉 상태에 빠지려는 나를 차분한 눈길로 바라보던 K가 판결했다.
“고양이를 들이렴.”
나는 즉시 감탄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너 참 현명하구나.”
“배우자보단 고양이지.”
“응응.”
덕분에 내 패닉은 금방 퇴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