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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의 빛 강성화 Sep 01. 2024

죽음에 가까워진 아버지에게 쓴 막내딸의 편지 한 통

아버지의 딸이라 행복했습니다

주말 오후, 그동안 미뤄 두었던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 쓴 편지에 관한 글을 쓰려다 울컥해 눈물이 고였습니다. 그 모습을 본 딸이 다정하게 말했습니다.


엄마,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할아버지가 오늘은 난꽃이 되어
엄마 곁에 왔잖아요.


그래, 정말 그런 것 같아.
어제저녁에는 아름다운 노을이 되어 오시더니
오늘은 이렇게 또 예쁜 난꽃이 되어 오셨네.
할아버지가 우리 린이 잘 키우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항상 지켜봐 주시네.


훗날 제가 하늘나라로 갔을 때 육체의 부재가 전부가 아님을, 이렇듯 그리움과 슬픔도 사랑과 행복의 감정에 스며들어 평온한 미소와 함께할 수 있단 걸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가슴속에 살아있는 한 영원히 죽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 난꽃으로 찾아온 아버지 >




지난 1월, 병상에 계신 아버지를 두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얘기를 처음 들었던 날이었습니다. 담당의로부터 소견을 듣고 둘째 언니가 가족 단톡방에 남긴 메시지에 순간 가슴이 무너져 내려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었습니다.


'일이 주일 후면 퇴원이 가능하다고 하더니. 설마. 그럴 리가. 기적이란 것도 있잖아. 그런데 남은 날이 정말 며칠 남지 않았으면 어떻게 하지? 안 돼. 아버지에게 마음을 다 전하지 못했는데.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기다려 주세요~!'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무얼 하면 좋을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숨을 고른 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발걸음은 문구점을 향했습니다.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에 머릿속은 복잡했습니다. 내일 당장 아버지를 찾아갈 생각을 하니 마음만 바빠질 뿐. 두서없이 써 내려간 편지에 제 마음을 오롯이 담기 어려웠습니다. 삶의 밧줄을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매장마다 쓴 아버지의 이름 석자. 사랑하는 아버지를 향한 간절함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 행복했어요>




다음 날, 남편과 딸을 두고 3시간 40여분 동안 쉬지 않고 운전해서 도착한 병원에는 사랑하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코, 목, 팔에 주렁주렁 줄을 달고 힘없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깨끗이 손을 씻고 로션을 발라 퉁퉁 부은 아버지의 발을 마사지했습니다. 잠시 후 막내의 손길을 느낀 아버지는 잠에서 깼습니다.


아버지 막내딸 성화 왔어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아버지의 손을 두 손으로 감쌌습니다. 따뜻한 아버지의 오른손에는 힘이 들어갔습니다. 아버지의 손을 잡은 제 두 손에도. 간병하시는 분에게 아침을 죽 한 숟가락 드시다 말았단 얘기를 듣고 따뜻한 죽을 주문해서 가져와 점심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아버지, 먹기 싫어도 잘 드셔야 해요.
먹어야 기운도 차리죠.
얼른 나아서 우리집으로 가요.


아버지는 막내딸이 떠주는 죽을 동치미와 함께 싫다는 내색 없이 남김없이 드셨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간병인분은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딸기 세 개를 작게 잘라 제게 건넸습니다. 아버지는 딸기까지 다 드셨습니다. 입맛이 갑자기 돌아올 리 없을 터. 사랑의 힘이었을 것입니다.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


정해진 면회시간이 얼마 남지 않자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먼 거리를 달려왔건만 아버지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마음껏 허락되지 않는 현실이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준비해 온 편지를 꺼냈습니다.


아버지, 글씨 보여요?
막내가 아버지에게 편지 써 왔어요.



아버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사실 원래는 제가 돌아가면 기운이 있을 때 읽어보시라고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편지를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의 눈빛을 보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그냥 이대로 돌아가면 후회할 일이 생길 것 같은 마음에 저는 용기를 냈습니다.


그곳은 다인실. 혹여라도 다른 분들에게 불편을 드릴까 싶어 가능한 나지막한 목소리로 읽기 시작했지만 고요한 병실 속에서 제 목소리는 더욱 선명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어 내려간 편지. 아버지는 미동도 않고  마지막장까지 편지에서 눈을 떼지 않으셨습니다.


편지를 거의 다 읽어 갈 무렵 제 목소리를 멈추게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병실을 둘러보던 간호사였습니다.


보호자분이신가요?
시간이 넘었습니다. 나가셔야 해요.


그 순간 제가 대답을 하기 전 누군가가 그녀를 향해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괜찮아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언제 들어왔는지 맞은편에는 또 한 명의 간호사가 다른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 그녀도 옆에서 편지 읽고 있는 것을 조용히 듣고 있었나 봅니다. 아버지를 향한 딸의 마음이 느껴져 그녀는 차마 나갈 시간이라 말하지 못하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버지, 이제 가야 할 시간이에요.
내일 또 올 테니 잘 드시고 계세요.
사랑해요.


침대에 기대어 앉아 있을 힘도 없는 아버지에게 손 흔들어 인사해 달라고 해 기어코 인사를 받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몇 번이나 아버지를 돌아보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뒤로하고 문을 나서려는데 그 순간 누군가가 말을 건넸습니다. 문 앞에 있던 다른 환자의 간병인이었습니다.


정말 감동이에요.
편지 읽는 내내 눈물이 났어요.
아버지는 행복하시겠어요.


가벼운 목례를 하고 문을 나서는 순간 참고 있던 뜨거운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기도했습니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아직 전하고 싶은 마음이 더 남았다고. 제발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만 더 허락해 달라고.




아버지를 뒤로 하고 1시간여를 운전해 달려온 고향집. 병상이 아닌 이곳에서 저를 맞아주시던 아버지 생각에 한참 동안 마당을 서성거리다 문패에 눈길이 멈췄습니다. 부모님을 위해 직접 만들어 선물했던 문패였습니다.


문패를 선물했던 다음 날 아침잠에서 깨 집밖으로 나와 보니 벌써 문패가 걸려 있었습니다. 막내딸의 선물에 흐뭇해하시던 아버지는 아침 일찍 그렇게. 아버지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참 동안 문패를 쓰다듬었습니다.(비록 아쉽게도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


엄마와 통화할 때면 아직까지 가끔씩 이런 얘기를 하시곤 합니다.


아버지가 2년만 더 살다 갔으면 좋았을 텐데.
고생 많이 하고 살았는데
맛있는 것도 더 먹고
좋은 옷도 더 입고
그렇게 더 누리다 살다 갔으면...


며칠 전 또 그 말씀을 하시길래 웃으며 이렇게 답했습니다.


엄마, 아버지가 하늘에서 보고
참 좋아하시겠다.
아버지가 떠났는데도
이렇게 생각해 주는 아내가 있어서.
아내와 자식들에게
이토록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으니
우리 아버지,
세상 참 잘 살다가셨네, 그렇죠?

그래, 그렇지.
잘 살다가셨지.
100점 만점에 100점이지.


엄마의 웃음 섞인 목소리에 제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습니다. 통화를 마친 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맑고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아버지가 우릴 지켜보며 웃고 계시는 듯했습니다.



ps. 아버지와의 이별을 생각하며 마음을 전하려 했던 건 비단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좀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았는데 엄마가 면회를 갔다가 아버지를 보고 눈물이 났다고. 누워있는 아버지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어 순간 눈물이 났다고 합니다. 장례식장에서 아버지 보낼 때 이런 거 읽어주면 아버지도 좋아하지 않겠냐고 하시며 들려준 엄마의 진심. 100점 만점에 100점이라는 엄마의 말은 그저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 아버지, 엄마 마음 잘 느끼셨죠?>
< forever with you >


written by 초원의 빛

illustrated by 순종

그림 속 사귐 - Daum 카페 :  '그림 속 사귐'에서 순종님의 다양한 그림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Always be happy!*^_____________^*



* 오늘의 추천곡 *

Luther Vandross 'Dance with my father'
https://youtu.be/wmDxJrggie8?si=PfB8osq-oldUHTHt



심규선 님의 '우리는 언젠가 틀림없이 죽어요'

https://youtu.be/FDyf89Mkvy8?si=Ras0FCXQLuGneKX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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