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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레어 Dec 22. 2020

고작 인간일 뿐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 리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어느 날 우리 반의 아이가 다가와 넷플릭스에 '나의 문어 선생님'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는데 꼭 봐야 한다고 예쁜 눈을 단호하게 뜨고 말했다. 처음에는 아이가 선생님을 부르며 뭘 물어보는 줄만 알고 "선생님이 뭐?"라고 반문했을 정도로 그 제목이 낯설었다. 그게 아니라 '나의 문어 선생님'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으니 꼭 보라고, 엄청나다고 연신 강조를 해서 그날 밤 그 아이와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 '나의 문어 선생님'을 시청했다.

다음 날, 나는 주변 교사들과 다른 아이들에게 '나의 문어 선생님'을 추천하고 다니느라 무척 바빴다.


제목의 이유, 왜 문어를 선생님이라고 했을까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웨스턴 케이프. 삶에 부닥친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딜레마를 겪고 있는 다큐멘터리 감독 포스터는 웨스턴 케이프의 바다를 찾아 휴식기를 갖다가 바닷속에서 한 문어를 만난다. 처음에는 새로 보는 생명체에 몸을 숨기고 도망 다니기만 하던 문어는 매일 같이 찾아오는 포스터가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고 어느 날은 다리 하나를 내밀어 그와 '교감' 하기까지 한다. 문어는 강아지, 고양이에 견줄 정도로 지능이 높다. 수천 년 동안 바닷속 수많은 생명체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떻게 숨어야 하고, 어떻게 이동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학습해온 동물이다. 그런 문어가 한 인간을 마주했을 때 숨지 않고 자신의 다리를 뻗어 만졌다는 것은 그 존재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나중에 문어가 포스터의 몸 주위에서 춤추듯이 움직이는 모습은 머릿속에서 상상해본 적이 없는 장면이었지만 우리 강아지가 와서 애교 부리는 것이 떠오를 정도로 자연스럽고 친밀했다.

포스터는 그렇게 1년 동안 매일 바닷속에 들어가 문어를 살폈으며 그 기간 동안 문어의 생활을 촬영한다. 문어가 천적인 파자마 상어에게 공격당해서 다리 하나를 잃을 때도, 그 잃었던 다리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시 자라날 때도, 상어에게 미친 듯이 쫓기다 결국은 지능적으로 상어의 몸 위에 안착하여 해칠 수 없게 했을 때도, 수컷과 짝짓기를 한 후 알들을 보호하고 부화시키다 제 색을 잃고 천천히 죽어갈 때까지.

포스터에게 문어는 1년 동안 제일 친한 친구나 마찬가지였는데 그 문어가 위험의 상황에 처했을 때 나서서 구하지 않았던 것은 그저 한 인간으로서 그들의 세상인 바닷속에서 생태 교란을 일으키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마음이 너무나 아팠으면서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인터뷰 장면에서 포스터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문어에 대해 무지했던 나는 문어가 바닷속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떻게 적을 피하는지, 어떻게 먹이를 먹는지를 보며 엄청난 반전 영화를 보는 것처럼 계속해서 놀라고 또 놀랐다. 가끔 문어가 적들로부터 피하려고 해초처럼 보이기 위해 사람처럼 걷는다는 것을, 빨판마다 조개껍질을 다닥다닥 붙여 자신의 몸을 숨긴다는 것을. 어떻게든 생을 이어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문어에 대해 배운다기보다는 문어를 통해, 문어에게서 배우는 것이 많았다.

그래서였다. 제목이 문어 '선생님'인 이유는.


인간의 역할이 무엇일까  

문어뿐만일까. 땅 위에서 인간들이 먹고 자고 일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영상 속에 담긴 바닷속의 생명체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터득해온 방식으로 생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과 인간들을 가장 크게 구분지을 수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지능이 높고 두 손 두 발을 움직일 수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게 생태계를 계속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연간 1200만 톤의 플라스틱이 바다로 유입되어 해양 생물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산지의 공간 확보를 위해 일부러 산불을 내 야생동물들을 위협한다. 석유를 채굴하고 연소하는 과정에서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고 지구 온난화를 가속시킨다. 모두 우리 인간들로부터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당장의 편리하고 쾌적한 생활을 위해 지구 상의 다른 동물들과 생물들에게 참으로 이기적인 일들을 멈추지 않고 하고 있다. 결국은 이 악순환의 끝이 우리들이 되리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문어와는 달리 인간들에게는 팔, 다리를 잃었을 때 다시 복원시킬 수 있는 능력과 세포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사고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대신 인공 팔과 인공 다리를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똑똑한 인간들이여. 아직 시간이 있다. 망가져가고 있는 생태계를 돌이킬 수 있는 시간. 애초에 인간들만의 것이 아닌 이 지구를 지구 상 모두 생명체들에게 공평하게 누리게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조개껍질로 몸을 숨기고, 잃었던 다리가 100일에 걸쳐 다시 자라나는 문어가 살고자 하는 바다는 플라스틱이 떠다니는 바다가 아닐 것이다. 어떻게 하든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동물과 생물들에게 최소한의 이기심과 최대한의 양심을 갖고 살아가는 인간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우리는 고작 인간일 뿐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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