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마음 쌓기,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치원 발표회, 졸업식부터니까, 일곱 살 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나의 엄마 자리는 할머니가 대신해 주셨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나쁘지 않았다.
처음 학교를 입학했을 땐, 알 수 없는 설움에 가기 싫다고 한 달 정도 떼를 쓰고 계속해서 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매일 아침 나를 학교에 데려다주셨다. 적응하고 나서도 가끔은 아프다고 몇 번 결석을 하기도 했지만 나름 잘 자랐다. 할머니 덕분이었다.
학교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할머니는 담임선생님과의 면담에 와주셨고, 어쩌다 반장이 되었을 때는 패스트푸드점에서 반 친구들 몫의 햄버거를 사 들고 오셨다. 소풍 전날, 입고 싶은 옷이 없다고 투정을 부리면 밤늦게라도 손을 잡고 나가 옷을 사주셨다.
그런 장면들이 기억 속에 꽤 선명하게 남아 있다. 지금 할머니는 아흔이 넘으셨다. 건강하시진 않지만, 아직 정정하시다. 귀가 잘 안 들리시는데도 내 목소리를 듣겠다고 먼저 전화를 하신다. 그 전화를 받을 때마다 미안하고 감사해서 목이 멘다. 왜 나는 먼저 전화하지 못할까.
어째서 무거운 마음에 더 무게를 더하게 될까.
자주 찾아뵈어야 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두렵다는 핑계가 떠오른다. 할머니는 나를 보면 반가워하시고 괜찮다고 웃으시는데 괜히 나는 가슴이 먹먹하다.
혹시 마지막일까 봐.
철이 없을 때 몇 번은 못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할머니께서 어떤 중요한 상황들 속에서 결정이 필요할 때, 나는 우선순위에 없다고 느끼며, 역시 할머니는 아빠나 고모, 당신 자식들을 더 위하시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때로는 오빠만 걱정하시니까 오빠만 더 좋아하시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럴 때 나는 엄마의 사랑 대신 받았어야 할 할머니의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러다 언젠가 할머니가 이런 얘기를 하셨다.
자기 어머니는 정이 많은 분이 아니셨고,
어린 시절, 여성으로서 처음 겪는 변화조차 아무 말 없이 지나가야 했다고.
그땐 무언가 큰 병에 걸린 줄 알았을 정도였는데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 곤란했다고 하셨다.
그 얘기를 듣고 나서야 나는 할머니가 자라온 환경을 조금이나마 상상하게 되었다.
말이 없고 표현이 서툴렀던 그 시절을 할머니는 어떻게 견뎠을까.
그런 분이 나에게는 너무 많은 걸 주셨다.
나는 무엇을 그렇게 많이 바라기만 했을까.
할머니를 생각하면 늘 두 감정이 함께 따라온다.
감사함과 죄송함.
어쩌면 사람의 마음이란 늘 그렇게 복잡한 채로 머무는 걸지도 모른다.
한 가지로만 정의할 수 없는 마음들.
내게 좋지 않은 일이 있거나 잠시 병으로 아플 때면 할머니는 내가 힘들까 봐 먼저 눈물을 흘리신다.
이미 한참 전에 할머니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살고 있지만, 그 울타리 안에서 안전하고 올바르게 자랐던 기억들은 평생 따뜻하게 남을 것이다.
여름이 가기 전에 다시 한번 찾아뵈야겠다. 걱정하시지 않게 건강한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