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네스를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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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신 케이

스토리 71 - 기네스를 좋아하세요


Rollei 35 TE, ilford 400 / Shibuya, Tokyo - Mar


어느 날의 어느 오후.

도쿄 시부야의 어떤 길을 지나가다가 어떤 아이리시 펍을 지나쳤다.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느낌도 없이 그냥 지나쳤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저녁에 기네스를 마셨다. 아니 "마시게 되었다"라고 표현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단지 1.3초 남짓 스윽- 지나쳤을 뿐인데, 이 기네스 간판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준 게 분명했다.

'오늘 기네스 마셔야지!'라고 내 자유로운 의지대로 마시러 간 게 아니라,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대로 '오늘 기네스 마셔라!'라는 듯한 이미지에 뇌가 영향을 받아 그에 반응해서 갔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나의 기네스 마시는 행동에는 나의 자유의지가 없었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번 기네스만이 아니라 내일 아침에 늦잠을 잘지 말지, 커피를 한잔 더 마실지 말지도, 전부 내 의지가 아닌 이미 정해진 행동의 결과일 수 있다.


그럼 누가 정했다는 걸까.

우리 모두가 지금 이 순간에 하고 있는 행동 그리고 다음에 할 행동이 몽땅., 뇌가 이미 이전에 주변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만들어낸 '결과'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생리학자인 벤자민 리벳(Benjamin Libet) 박사가 1983년에 수행한 유명한 실험이 있다. 리벳 박사는 피실험자의 앞에 버튼을 놓고서는 피험자가 본인이 버튼을 누르고 싶을 때 언제라도 누를 수 있게 하고 그들의 두뇌 활동을 측정했다. 실험의 결과는 놀랍게도 피험자가 버튼을 누르는 행동을 하기 전에 이미 뇌에서 일종의 준비활동을 하고 있음이 발견되었다. 왜 놀랍냐면, 피험자 본인이 스스로 '눌러야지!' 의식하기 전에 뇌에서 특정 행동을 하도록 준비 그리고 명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찰만 하는 존재.
인간은 뇌가 시키고 나서 행동하며 의식한다 > 인간은 본인 행동의 주체가 아니라 단순히 '액션-결과-변화'의 의식있는 '관찰자'인 셈이다 > 관찰은 흘러가는 것을 보는 것이다 > 흘러간다는 것은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가도록 '방향'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다 다르게 흘러가는 운명.

인간의 행동이 이미 뇌에 의해 정해진 결과라면, 인간에게 '운명'이 존재한다는 말도 가능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성격은 운명'이라는 말도 있다. '성격'이란 뇌가 우리 주변의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또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는지의 차이이다. 우리 뇌는 각자 다 다르기에 받아들이는 방식도 다 다르고, 따라서 개개인의 성격도 다르다. 그에 따라 뇌가 시키는 행동도 다 다르며 당연히 그 결과도 달라지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 모두의 인생이 다 다른 것이 아닐까. 한 사람의 뇌는 한 사람의 운명인 셈이다.


자유의지와 운명.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없고 운명만 있다는 '운명론'을 무작정 받아들이게 될 때는, 어떤 면에서는 편안해지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인간의 삶이 허무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고대부터 현재까지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철학적 논쟁과 과학적 의심을 동시에 해오고 있다.


@ 결국은.. 지금 기네스를 마시러 가는 걸 (또 마시러 가는 걸)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거창하게 설명해봤습니다. 음- 하하 =)



한번 지나쳤던 길과 장면을 다시 돌아와서 찍은 사진이다. 사실 흑백 필름 사진은 참 어려운 사진이다. 컬러 필름보다 주변 빛을 더 잘 이해해야 하고, 인화했을 때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컬러 필름보다 몇 배는 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가지 알고있는 팁은, 검은색과 흰색의 피사체를 같이 찍을 땐 피사체를 더 매력 있게 강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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