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에 몸을 대상화하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가기
요즘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아침 시간이다. 언젠가부터 밤보다 아침시간을 즐겨왔지만, 확신을 가지고 아침 시간을 즐기게 된 것은 올해 들어서인 듯하다. 차를 마시기 시작한 이후 아침에 눈을 뜨면 차를 마신다. 주로 녹차를 마시기도 하지만 더운 날엔 백차를 마시기도, 또 영 잠이 깨지 않는다 싶을 땐 청차를 마시며 후각을 먼저 화끈하게 깨운다. 차를 마시며 곁들이기도, 주로 차를 다 마시고 먹기도 하는 아침밥은 과일 5종이다. 5종을 먹어야겠다고 정해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 5가지 다른 종류의 과일을 예쁘게 담아내어 두고 차와 함께 마시는 그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과일 5종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있다. 우선 서로 다른 과일을 다섯 종류나 접시에 담으면 모양과 색깔이 상당히 화려해진다. 한 가지 과일만 담았을 때보다 다섯 가지를 담았을 때, 그 화려함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 화려한 과일 한 접시를 보며 아침부터 '예쁨'을 잔뜩 즐길 수 있다.
다섯 가지 과일을 매번 준비하는 것은 아침마다 과일을 씻고 깎아 담는 것보다, 그 과일을 끊이지 않게 준비해 두기 위해 장을 보는 일이 훨씬 더 노력을 필요로 한다. 제사상 차리기를 '도우며' 다 준비된 재료로 전을 부치기만 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한 사람은 정말 전을 '부치기'만 한 사람이다. 사실 제사상 차리기에 가장 어려운 것은 그 재료를 무겁게 사 오고, 씻고, 다듬어 요리하기 전까지의 과정에 있다. 과일을 준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너무 덥고 비가 많이 와 가끔 배달을 시키기도 하지만, 주로는 시장이나 생협에서 과일을 골라 무겁게 짊어지고 집으로 와야 하는 일이 가장 힘든 과정이다.
다섯 가지 과일을 두는 것에는 돈도 많이 든다. 과일을 구매해 본 사람만이 진심으로 알 수 있는 과일 가격. 생각보다 몹시 비싸다. 나는 일주일 단위로 과일을 준비하는데, 주로 한 번 장을 볼 때 5만 원 정도를 쓰는 편이다. 냉동 과일도 늘 구비해 두는데 (냉동유기농망고, 냉동유기농 블루베리, 냉동 블랙베리), 냉동 과일과 생과일을 같이 사면 10만 원이 든다. '무슨 과일이 이렇게 비싸!'하고 놀랄 때도 많지만, 술도, 담배도, 배달 음식도 거의 먹지 않는 나에게 과일은 즐거운 사치다.
아무튼 이렇게 다양한 과일을 한 접시 담아두고, 천천히 차를 우려 마시는 시간은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하루가 아무리 분주하고 정신없이 돌아가더라도 내 아침 시간만큼은 누구보다 여유롭고 차분하게 보낼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아침 찻자리가 요즘 내 일상의 가장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자부한다.
아침 차와 과일을 먹는 것 외에 주로 아침에 하는 루틴 중 추가된 것은 PT를 받는 일이다. 주 2회 헬스 PT를 받고 있는데 나도 몰랐던 내 잠재력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체력이 약하고, 뼈가 약하고, 근육이 없는 사람으로 나를 가둬두던 스스로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던져두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언제까지 무게를 얼마나 들겠다느니, 근육량을 얼마나 늘리겠다느니, 어떤 몸을 만들겠다느니, 그런 목표를 가지지 않는다. 자칫 '건강한 몸'을 목표로 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관념들도 결국엔 내 몸을 '대상화'하고 마는 일이기 때문이다. 종종 성적 대상화가 아닌 대상화, 그러니까 '근육질 몸'이라던지 하는 몸의 대상화는 성적대상화의 반대적인 개념으로도 사용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대상화의 큰 틀에서 몸을 몸으로 바라보지 않는 어떠한 수단이자 특정한 집단에서 옳거나 바람직하다고 보이는 목적의 대상으로 소비되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이 부분을 지양하려면 대상화를 알아차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쉽지 않다.
친구의 요가원이 일주일간 문을 닫는다고 했다. 이유는 요가 강사가 가슴 확대술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몸을 바라보는 시선과 가치관이 요가적 개념과 완전히 반대적 개념을 가지고 있는 듯도 한데, 그 요가원을 계속 다녀야 할까? 친구의 판단과 결정이지만 적잖이 충격을 받긴 했다. 해외에서 그룹 고강도 운동 프로그램을 재밌게 즐기고 있는 친구는 본인이 그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하면 꼭 한국인만 '살 많이 빠져?' 또는 '바디프로필 찍을 거야?'같은 질문을 한다고 했다. 탄탄하고 보기 좋은 몸을 만드는 것, 근육질 몸을 만드는 것 말고도 하고 나면 개운하고 함께 운동하는 그 시간이 즐거워서 고강도의 운동을 한다는 것들은 어째서 옵션이 되지 못하는 걸까.
나는 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도려내어지고, 기능을 잃기도 한 내 몸을 나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무게를 드는 운동을 주 2회 하고, 살사와 훌라를 추고, 낑낑거리며 요가를 하고, 걷고 달리는 일의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
퍽이나 게으른 것 같다가도 바다가 보고 싶으면 훌쩍 바다로 가서 내 몸을 바다에 던지기도 하고, 냉장고에 과일과 야채가 가득하도록 장을 보고 씻어 다듬고, 작은 손으로 반죽을 쳐내어 빵을 구워내고, 간단히 도시락을 싸고, 매일 아침 거르지 않고 다기를 모조리 꺼내 차를 우려 마시고 또 그 다구를 씻어 널어놓는 내 몸을 나는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컨디션이 조금이라도 떨어진 것 같을 땐 어김없이 신호를 주고, 시간을 따로 내어 낮잠을 한 바탕 자고 나면 또 어김없이 '나 이제 괜찮다'라고 신호를 주는 내 몸과 나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나는 몸을 몸으로, 있는 그대로의 몸으로, 아끼고 대접하고 존중하며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