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와 숨바 여행기 2. 우리는 발리 밖에서 행복할 순 없을까?
첫 주는 우붓에서 지냈다. 발리의 유명한 요가원인 요가반(Yoga Barn)에서 주최하는 '발리 스피릿 페스티벌(Bali Sprit Festival)' 티켓을 샀기 때문이다. 추천하는 사람도 있었고, 별로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쨌든 내가 가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니, 한번 속는 셈 치고 가보자는 마음이었다. 더군다나 코로나 이후에 우붓을 간 적은 없으니 오랜만에 우붓을 다녀오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2주 전, 작년에 발리 우다라 요가(Udara Yoga & Spa)에서 만났던 친구가 3개월간 여행을 하기로 했고, 그 시작을 우붓에서 하기로 했으며 하필이면 그 일정이 나와 겹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작년에 만난 이후로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지만 다시 만날 줄은, 그것도 발리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겸사겸사 여행의 시작이 우붓이 된 것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도 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은퇴 후 발리로 이주해 살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틈이 나면 부동산에 찾아가 시세를 알아보기도 했다.
"근데 왜 발리야? 물론 발리가 너무 좋지. 근데 왜 발리야?"
"무슨 소리야? 발리는 천국이잖아. 이 섬 전체에 흐르는 영적인 기운(Spiritual energy)은 어디에도 없어. 나는 유럽 생활이 너무 힘들고 지쳐."
"내가 20대 때는 유럽이 나에겐 천국이었는데."
"나이가 들면 유럽이 힘들어. 넌 발리 와서 살고 싶지 않아?"
바로 '당연히!'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발리가 가진 에너지가 너무 좋다는 말엔 200% 동의하는 바이고, 그러니 시간이 날 때 꼭 발리로 오는 것이겠지만 내가 노후를 보내고 싶은 곳인가? 하는 질문엔 아직 확답을 할 수 없었다.
"그때 내가 어디에 있든, 그냥 그곳을 발리로 만들고 싶어. 발리에 여행 오는 게 너무 좋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그 일상도 발리의 기운이 느껴지길 바라."
"그건 불가능해. 발리가 아닌데 어떻게 발리로 느껴. 작년에 내가 발리에서 인테리어 소품이랑 그림을 사 가서 집에 잔뜩 뒀지만, 나는 집에 있는 시간보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더 길고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은 늘 화가 나있고 바보 같단 말이야. 발리 사람들이 아니라고. 발리 사람들은 모두 영적이고 난 그런 사람들 옆에 있고 싶어."
이 대화는 작년에도 우리가 했던 대화이고, 앞으로도 자주 할 대화의 주제다. 20대의 나는 막연하게 이탈리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삶을 즐기는 태도와 미적 감각, 미식에 대한 문화가 나를 매료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생각도 아주 길게 가진 않았다.
발리를 발리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바다와 숲은 찾아보면 더 나은 곳도 있을 텐데. 이미 많이 오염이 되었고, 호주 사람들, 최근엔 러시아 자본에 잠식당하고 있는 발리가 정말 천국일까? 우리가 발리를 발리라고 생각하는 그 이유는 사실 발리의 전통이 아닌 발리에 거주하는 백인들을 중심으로 만들어낸, 거기에 발리 현지인들의 전통문화가 아주 일부 섞여있는 요가와 명상, 영적인 콘텐츠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아니었던가? 어딜 가도 요가를 하는 문화, 싱잉볼부터 공, 핸드팬 같은 온갖 명상 악기들이 흔해 빠진 곳. 모든 것에 '명상'이라는 말을 붙여 콘텐츠가 되는 곳. 발리 음식보다 서양식 채식 식당이 더 많은 곳. 우리가 인도나 네팔에 가지 않고 발리로 오는 것은 서양 문화가 만들어낸 발리식 문화의 편리함과 매력 때문이 아닐까?
우붓에 오랜만에 가는 것이긴 하지만, 우붓은 언제나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호기심을 10배로 증폭시켜 주는 곳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을 것을 알았다. 하고 싶은 게 늘 많은 '하고잡이'인 나는 우붓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하는데 적지 않은 돈이 들 것을 예상, 숙소는 아주 저렴하게 묵어보기로 했다. 발리에서 홈스테이를 해 본 적도 없고 불편하고 더러웠다는 후기들을 많이 들어서 걱정도 됐지만, 후기가 꽤나 좋고 위치가 요가반에서 5분 거리도 안 되는 곳에 있는 곳을 발견해 그곳에 머무르기로 했다. 방은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있었고 샤워실과 화장실도 개별 룸에 붙어 불편함이 없었다. 호스트 부부는 너무나 친절한 전형적인 발리 가족이었다.
나는 1층에 있는 방에 묵게 되었는데, 방 앞에는 작은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다. 매일 아침 일찍 눈을 뜬 나는 그곳에서 차를 마셨다. 6시쯤 되면 호스트의 아내가 나와 나와 눈인사를 한 뒤 조용히 사리를 올리면 차낭을 했다. 차낭은 발리 사람들이 매일 하는 의식으로, 힌두교 신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축복을 비는 행위다. 이때 꽃과 밥, 쿠키 등을 대나무 잎 등으로 만든 접시에 올려 바치는데 이를 '사리'라고 한다. 발리에 가면 길거리나 문 앞, 차 안과 밖 등 어디에서나 이 사리를 볼 수 있다. 사리를 돈 주고 사기도 한다고 들었는데, 내가 머물던 집의 호스트 부부는 매일 아침 이 사리를 직접 만들었다.
"하루에 몇 개나 만들어?"
"50개. 보름달이 뜨거나 달이 새로 차오르는 날엔 150개, 명절에도 150개씩 만들어. 평소엔 50개만 만들고."
"너무 힘들겠다. 어떻게 매일 50개씩 이걸 만드는 거야."
"별로 안 힘들어. 어릴 때부터 해와서 익숙해."
"남편은 뭐 하고 매일 아침에 너 혼자 이걸 만들고 기도도 혼자 하는 거야? 50개를 한 손에 들려면 엄청 무거울 것 같은데?"
내 안엔 아직도 남녀혐오문제가 남아있었나 보다.
"남편도 같이 할 때도 있어. 근데 남편은 다른 일이 많으니까. 이건 내 일이야. 난 이거 하는 거 좋아해."
한 손에 든 큰 쟁반 위엔 50개의 차낭이 겹겹이 올려져 있었다. 집 대문부터 집안 구석구석, 집 앞의 도로에도 구석구석, 남편과 시동생의 차 안과 밖, 가족들의 오토바이 근처에도 사리를 올리고 기도를 했다. 하나의 사리를 올리고 눈을 조용히 감았다가 손으로 휘휘 저었다가 다시 그 손을 이마와 가슴 앞으로 가지고 와 기도를 올리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봤다.
"기도 할 때 무슨 생각해? 무슨 기도를 하는 거야?"
"신들께 감사하다고 해."
"뭐가 감사한데?"
"그냥 모든 게 다 감사하지. 우리 애들도 건강하고 잘 놀고 있고, 남편도 건강하고. 나도 이렇게 매일 차낭사리를 만들어 올릴 수 있고. 부모님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냥 여기 살아있는 것, 더군다나 건강하게 잘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다고 해."
"매일매일 똑같이 그냥 살아있는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하는 거야? 다른 건 없어?"
"... 응. 이보다 더 감사할 일이 있나? 그냥 여기 존재하는 것에 감사하지."
"진심이야? 아니면 너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해 오던 거라서 그런 거 아니야? 뭔가 문화적으로 늘 하던 것이라서 늘 그냥 자동적으로 그렇게 기도하는 거."
"... 아니야. 진심이야. 매일매일 감사해."
매일 아침 진심으로 존재함에 대한 감사를 실천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발리를 만드는 것이구나. 서양 자본에 의해 개발이 되든 말든, 자연재해가 섬을 덮치든 말든, 무슨 일이 일어나도 매일 아침 사리를 만들고 차낭을 올리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아주 옛날부터 발리를 지키고 있었다. 발리를 발리 답게 만들어낸 힘은 이 발리사람들이 매일같이 빠지지 않고 차낭사리를 하는 의무와 책임, 그에 더해 일 년에 몇 번이고 더 있는 종교적 의식을 치러내는 근면성실함, 그들이 바쳐낸 노동과 시간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집단 무의식이 발리를 발리답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매일 감사하고 있는가?
쓰다 말다를 반복하는 감사일기를 쓰는 정도가 아니라 나는 정말로 존재 자체에 감사함을 매일 느끼고 표현하고 있는가? 나는 내 존재에 매일 진심으로 감사한가?
꼬리를 무는 자문들에 이어 이상하게 '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의식을 치러야만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신이 아니라 조상들이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평소에 조상에 대한 생각을 히고 산 적이 없는데. 더군다나 조상님들에게 감사할 일이 뭐가 있다고. 내 삶에서 그들은 없는 존재나 마찬가진데. 그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지내는 제사 때문에 우리 가정엔 늘 불화가 있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갑자기 조상님들에게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발리 여행 내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