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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원동 바히네 Jul 30. 2021

석류와 홍삼이 쏟아졌다.

자궁적출을 했다고 하니, 다들 내 피부 걱정을 했다.

수술을 하고 친구들이 집에 병문안을 오거나 집으로 선물을 보냈다. 과일이며 책, 꽃을 보낸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들이 아팠을 때 뭘 해준 게 있었는지 돌아보게 됐다. 집에 들러 분리수거를 내다 버려준 친구는 내가 죽기전에 꼭 은혜를 갚겠노라 벼르고 있다. 내가 아프고 작아졌을 때, 마음이 심란하고 상처 받았을 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선물하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사람들의 힘으로 나는 금방 회복했다. 


걱정되는 마음을 담아 준 선물 중에 인상 깊은 것들도 있었다. 석류즙, 홍삼, 콜라겐, 리프팅 기능이 있는 마스크팩, 폐경기 여성을 위한 종합영양제 같은 것들이었다. 어렴풋이 자궁수술을 했다고 하니 '여자에게 좋다'는 건강기능식품이나 미용과 관련된 제품들을 선물한 것이다. 내가 자궁적출을 한 것을 아는 친구도, 모르는 친구도 모두 비슷한 선물을 했다. '여자에게 좋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선물을 준 친구들의 따뜻한 마음을 받아들고 고민에 빠졌다. 


나는 수술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수술 후에도 내 외모의 변화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아마 수술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의사와 충분한 상담을 했고, 난소를 남기기 때문에 걱정하는 것처럼 바로 폐경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일 수 있다. 거기에 앞서 나는 내 외모에 대한 걱정 때문에 수술을 망설일 상황이 아니었다. 일단 살고 봐야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내가 여성이라는 것이 자궁의 유무로 결정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억지로 그런 생각을 안 하려 노력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매달 생리를 하면서 자궁의 존재를 느낀다거나 내가 여성이라는 확신을 한 적이 없었다. 나는 생리를 하기 전에도 여자였다. 내 머리카락이 길었을 때도 숏컷이었을 때도 나는 내가 여성이라는 것을 의심한 적이 없었고, 내 가슴사이즈는 늘 작았지만 이 또한 내가 여성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었다. 내가 치마를 입는다고 해서 여자가 되고, 바지를 입는다고 해서 남자가 되지 않았다. 화장을 진하게 하는 날도, 맨 얼굴로 나가는 날도 나는 여자였다. 내가 자궁이 있든 없든 나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었고, 아이를 낳지 않는 내 몸이 여성의 몸이 아니라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15살에 맹장염으로 맹장 제거술을 받았다.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해서 병원에 갔는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니 부모님들은 무척 놀랐지만, 맹장염이라는 사실에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애들이 크다 보면 한번쯤 겪는 일처럼, 그 누구도 넘치게 슬퍼하거나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자궁을 적출한다고 했을 때 엄마는 큰 슬픔에 빠졌고, 내 주변 친구들과 지인들은 앞으로 변할 내 외모를 걱정했다. 나는 내가 뭘 걱정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졌다. 정말 나는 여성성의 상징이라 여겨지는 탄력 있는 엉덩이와 가슴, 피부를 읽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가? 자궁의 유무가, 혹은 폐경 이후 나타날 수 있는 외모의 변화가 여성을 여성이라 규정짓는 요소가 되는 것은 누가 정한 것일까? 유방암으로 가슴을 절제한 여성들은 여성성을 잃은 것일까? 그렇다면 반대로 가슴을 풍만하게 보이기 위해서 인공 물질을 가슴에 넣은 경우는 어떠한가? 더 뾰족한 턱을 가지기 위해 턱을 깎아낸 경우는? 잘록한 허리를 위해 갈비뼈를 뺀 경우는 또 어떠한가? 맹장과 자궁은 신체의 일부인데, 왜 한쪽은 그럴 수 있는 일로, 한쪽은 큰일 날 일로 생각하는 걸까? 


자궁을 적출하지 않았지만 난소의 기능에 문제가 있어 여성호르몬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는 경우는 어떠한가? 혹은 여성호르몬의 한 종류인 에스트로겐만 우세한 경우라면? 대부분의 난소, 자궁, 유방 질환들이 에스트로겐의 과잉으로 생기는 질환인데, 우리는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를 만들어주는 이 에스트로젠이 많다고 즐거워해야 하는가? 에스트로겐 과잉으로 인해 난소나 자궁에 여러 문제들이 생겨 출산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우리는 스스로의 여성성에 의심을 하는가?  에스트로겐 과잉으로 인한 질병을 앓고 난 뒤 자궁을 적출하고 나서도 나는 에스트로겐이 행여나 모자라지 않을지 걱정해야 하는가? 만약 의사의 말 대로 내 난소의 기능이 정상이라면, 나는 자궁을 적출한 이후에도 에스트로겐의 - 아마도 조금 과할 가능성이 있는 - 영향을 받을 텐데, 나는 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다른 질병들을 걱정해야 하지는 않은가? 아니면 에스트로겐이 혹시나 모자라 외모로 드러나는 내 여성성이 줄어들까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몹시 혼란스러워졌다. 


수술 후 집에서 회복과정을 거친 뒤 마지막으로 병원 외래진료를 갔다. 수술부위가 잘 아물었는지, 감염은 없는지, 신체적, 정신적으로 모두 회복했는지를 문진하고 확인했으며, 초음파를 찍어 결과를 보기도 했다. 마지막 외래에서 의사는 나에게 모든 것이 괜찮다고 했다. 매번 그렇지만 외래진료실에서 환자와 의사는 갑과 을이 된다. 아무도 그렇게 규정한 적이 없고, 진료비는 내가 내고 서비스는 의사가 제공하지만 늘 환자가 을이 된다. 죄를 지은 것도 없는데 어쩐지 당당하지 못하고 위축된다. 나는 마지막 외래진료를 앞두고 집에서 질문 리스트를 만들었다. 짧은 외래시간 안에 물어보고 싶은 것들을 마지막으로 빠짐없이 물어보고 싶었다. 

내 질문 리스트는 아래와 같았다. 

수술 후 관리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 내가 주의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내 난소가 잘 작동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지? 호르몬을 정기적으로 검사할 필요가 없는지?

조기폐경의 위험이 낮고, 보통 일반적인 폐경보다 1년 앞당겨진다고 말씀해주셨는데, 별도의 호르몬 치료는 그럼 필요 없는 것인지?

앞으로 다른 질병의 위험은 없는지? 주의해서 봐야 하는 질환이 있다면 무엇인지?

친구들이 준 건강기능식품들이나 보조제들을 먹어도 되는지? 

앞으로 헌혈을 해도 괜찮은지? 출산한 여성의 경우 혈소판 지정헌혈이 불가능한 것으로 아는데, 나의 경우에는 가능한 것인지?

항생제 치료를 너무 오래 받았는데, 별도로 유산균을 복용할 필요가 있는지?

열심히 머리를 굴려 질문 리스트를 만들어 손에 쥐고 의사에게 하나하나 물었다. 

"수술 잘 됐어요. 다 괜찮아요. 호르몬은 검사할 필요 없어요. 난소는 남겼으니까 호르몬은 정상이에요. 호르몬이 안 좋거나 폐경이 더 앞당겨진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친구가 준건 드세요. 그런 건기식은 호르몬에 별 영향도 없어요. 헌혈은 가능해 보이는데, 혈소판 지정헌혈이 가능한지는 저도 모르겠네요? 유산균은 드시고 싶으시면 드세요."


나는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간 메모를 하나하나 침착하게 물어봤고, 의사의 대답은 단호하거나, 혹은 성의가 없었다. 진료실에서 가운을 입은 의사의 권위를 생각해본다. 환자는 의사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밖에 없다.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 상황이 되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다. 나는 의사가 내 질문의 성심성의껏 답해주기를, 결론적으로 '걱정 안 하셔도 돼요'가 아니라 왜 걱정을 안 해도 되는지, 수술 후 내 호르몬이 다시 정상적으로 잘 분비가 되는지, 다시 에스트로겐 과잉으로 인해, 아니면 다른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질병에 대해 어떻게 관리하면 좋을지를 설명해주길 바랬다. 하지만 평일 오전 대학병원의 좁은 외래진료실에서, 이런 내 바람은 조금 과하게 취급됐다. 나는 어떻게든 추가적인 설명을 들으려 질문을 유도했지만, 의사는 자꾸 결론을 한 줄로만 요약해서 급히 설명할 뿐이었다. 실망스러웠지만, 더 이상 붙잡고 늘어진다고 원하는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내가 낸 2만 원이 넘는 외래진료비(여기에 3만 원 정도 되는 국민건강보험료까지)에 의사는 그 정도 시간과 정성을 쏟기는 무리였을지 모른다. 의사협회 파업이 있을 때마다, 건강보험료 관련 중요한 의사결정이 있을 때마다 의사들은 '수가 정상화'를 주장해왔고, 나는 우리나라의 의료행위수가가 몹시 낮은 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짧은 시간 내에 대기실 복도 줄줄이 앉아있는 환자를 다 보려면, 구구절절 병의 원인부터 호르몬의 작용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걸 머리로는 이해한다. 그리고 이걸 또 이해하고 있는 나에게 짜증이 났다. 


결국 마지막 외래진료에서도 속 시원한 답을 찾지 못한 채로 나는 병원을 나섰다. 다시는 이곳에 오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두 번의 수술과 두 번의 회복을 거치며, 나는 정말 한동안은 병원에 다시 오고 싶지 않았다. 생각보다 아늑했던 수술실과, 수술이 없었다면 깨닫지 못했을 가족들의 희생과 사랑, 그리고 다시 보게 된 주변 사람들까지. 기억의 재구성 능력을 발휘해 좋았던 기억만을 액기스로 뽑아 뇌에 심어 두고 있지만, 그래도 굳이 이 경험을 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모든 것을 중단하고 회복에 몰두했다. 일도, 만나던 사람도, 내가 회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은 모두 중단했다. 그리고 한동안 누워서 잠을 잤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불안하지 않으려 애를 쓰며, 잠을 잤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갑자기 기운이 뻗쳐올라왔다. 무엇이든 할 욕구가 생기고, 용기가 생기고, 의욕이 생겼다. 나는 일어나 앉아서 책을 읽고, 논문을 찾고, 운동을 하고, 식사를 챙기기 시작했다. 편견이 없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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