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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원동 바히네 Jul 31. 2021

아프지 않은 여성 동지가 없다.

우리의 호르몬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내가 자궁근종을 진단받았다고 얘기하면, 혹은 자궁적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으면 듣는 이들은 열이면 열 '나도 자궁, 난소, 유방 질환이 있다'라고, 혹은 '내 가까운 사람도 그런 병을 앓고 있다'라고 맞장구를 쳤다. 20대 후반부터 그랬다. 동료, 선배, 후배, 친구들에게 난소낭종, 다낭성 난소증후군, 자궁근종, 자궁내막증이 흔하게 있었고, 유방 섬유종, 유방암도 더러 있었다. 생리 전, 생리 기간, 배란 기간에 느껴지는 통증 때문에 조퇴를 하는 친구들이 늘어갔다.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인들은 왜 생리휴가제도가 없는지, 있어도 왜 이렇게 눈치를 보면서 써야 하는지에 대해 화를 토하며 배를 움켜쥐고 살아가고 있었다. 평소에 멀쩡히 생기가 넘치다가도, 꼭 한 달에 이틀, 길게는 일주일간 우리는 좀비가 되었다. 일은커녕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일도 쉽지 않은 날들... 좋아하는 취미생활도, 반려동물과 보내는 시간도 어려운 날들이 매 달 반복됐다. 6개월이나 1년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종양이 얼마나 또 커졌으려나' 마음을 졸였다. 우리의 몸속에서 자라고 있는 온갖 종류의 종양들은 속절없이 커져갔지만, 병원에서는 딱히 지켜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사회에서 제 할 몫을 잘하며 성실히 살아가고 있는 젊은 여성들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집에 누구나 구비하고 있는 싱크대 윗 선반의 설탕이 여러 브랜드의 것인 것처럼 우리는 이름이 다른 여러 형태의 호르몬 질환들을 당연스럽게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듯했다. 운이 좋아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은 이도 언제 나에게 생겨날지 모르는 호르몬 질환에 대한 공포를 안고 살고 있었다. 우리는 마치 러시안룰렛에 겨냥된 머리가 되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총에는 단 한 발이 아닌, 꽤 여러 발의 총알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내 주변인들 중 호르몬 질환으로 치료나 수술을 받은 이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이 병의 원인을 의사에게 듣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이렇다 할 근본적인 치료 방법도, 수술 후 관리 방법도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를 진료한 의사의 실력이 없어서 그랬을까?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난임으로, 자궁근종으로, 유방으로 제일 유명하고 권위 있는 의사들을 찾아서 진료를 받았다. 나는 그 의사들의 전문성에 대해 한치의 의심이 없다. 다만 허탈한 것은, 진짜로 자궁근종, 자궁내막증, 난소낭종, 난소 기형종 같은 생식기 질환들의 원인을 아직 규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원인을 모르니 약이나 치료법을 개발할 수 없고, 문제가 되는 것을 제거하는 수술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수술 이후에도 재발 방지를 위한 가이드를 줄 수 없다. 진짜 왜 생기는지 의사도, 나도,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여성질환에 대한 의학적 연구가 더디다는 것에 분노를 하는 것은 접어두기로 했다. 답답하다고 해서 내가 어찌할 수도 없다는 무력감에 빠져있기에는 억울했다. 정신질환인 '히스테리(hysterie)'의 어원이 자궁을 뜻하는 그리스어 '히스테라(hystera)'라고 한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히스테리를 '자궁에 의해 생겨난 질식'이라며, 자궁이 온몸을 떠돌며 일으키는 정신질환이라고 설명했다. 20세기까지도 여성들의 월경통을 포함한 생식기 질환으로 인한 각종 통증은 '히스테리'로 치부됐다. 세월이 지나도 남성 시각에서의 여성질환을 바라보고, 연구하는 행태는 변하지 않은 듯하다. 자궁내막증은 1990년대에 의사들로부터 '커리어 우먼의 병(Career women's disease)'라는 별명을 얻었다. 아이를 낳는 대신 커리어에 집중하느라 생긴 병이라는 시각 때문이다. 때문에 많은 의사들은 지궁 내막증을 진단받는 환자들에게 어서 아이를 가지라고 권고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20세기의 이야기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그 환장할 역사는 계속됐다. 다낭성 난소증후군으로 병원을 찾은 지인은 의사로부터 '남자 친구가 있냐? 없으면 야동이라도 봐라. 남자 친구랑 사랑을 많이 나누면 해결이 되는데, 그게 아니라고 하면 야동이라도 보라'는 얘기를 들었다. 나름 지방이지만 대학병원(2차 병원) 산부인과였다. 언제부터 호르몬 교란으로 인한 질병의 해결책이 섹스가 되었는가? 아니 섹스도 아니지.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불법인 포르노를 진료실에서 권하는 지경에 이르렀는가?


피임과 성병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던 지인은 6개월에서 1년마다 산부인과 검진을 받아왔다. 그러다 그 짧은 기간 사이에 자궁내막증이 갑자기 9센티로 자라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수술을 받았지만, 이후 재발방지나 자궁근종 같은 다른 질환을 조심하라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자궁근종과 자궁내막증은 동시진단이 늘고 있는 추세인데, 의사가 아무런 주의를 주지 않았다는 점을 이해하기 어렵다. 나중에 호르몬에 문제가 생기면 '호르몬 대체요법'을 받으라는 소리만 들었다고 한다.


폐경여성에게 시행되는 호르몬 대체요법은 안전성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지기 전에 전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으며, 모든 폐경여성이 받아야 할 치료로 꼽혔다. 2002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호르몬 대체요법을 받은 여성에서 심장질환, 뇌졸중을 높인다고 보고한 이후 호르몬 대체요법의 부작용을 확인하는 연구가 쏟아져 나왔다. 특히 유방암 발생의 위험마저 높이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호르몬 대체요법의 수요는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미국 질병예방서비스 테스크포스(USPSTF)는 폐경여성에 호르몬 대체요법 치료 권고 수준을 D등급, 즉 권고하지 않는 것으로 밝히고 여전히 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오늘까지도 호르몬 대체요법으로 인한 득과 실에 대한 연구는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산부인과학회에서는 모든 폐경여성에 대한 호르몬 대체요법을 권고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자궁내막증 수술을 받은 환자에게도, 아무렇지도 않게 - 마치 배고프면 밥을 먹으라는 듯이 호르몬 대체 치료를 권하고 있다.

(*https://www.ksog.org/public/index.php?sub=2&third=2)


또 다른 지인은 10대 때 유방 섬유종 수술을 받은 뒤 30대에 자궁근종 제거 술을 두 번, 세 번째 재발해 40대에 자궁적출을 받았다. 마찬가지로 유방 수술 때부터 이후 세 번의 자궁수술에서도 재발 방지에 대한 어떤 가이드도 받지 못했다. '두부 같은 콩이나 홍삼 같은 것들을 적게 먹으라' 같은 주변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콩은 아무 잘못이 없다. 콩 속에 들어있는 에스트로겐과 비슷한 물질인 파이토에스트로겐은 체내에서 선택적으로 작용해 오히려 인체의 에스트로겐 수준을 낮추는 항 에스트로겐 작용을 한다. 또한 파이토에스트로겐은 베타수용체에만 집중적으로 작용하는데, 자궁은 알파수용체로만 활성화가 된다. 베타수용체로 움직이는 것은 오히려 뼈 건강이다. 때문에 콩을 먹는 것은 뼈 건강을 지켜주면서 체내 호르몬 레벨을 오히려 건강하게 맞춰줄 수 있다. 콩에 대한 루머를 퍼트린 것이 어느 산업군이었을지 궁금해진다.


또 다른 지인은 올해 난소 기형종 수술을 받았다. 성적 지향을 포함한 각기 다른 개인의 삶의 선택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며, 본인 스스로도 그런 길을 뚜벅뚜벅 걷고 있어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는 '우리 모두의 찐 언니'다. 우연히 건강검진에서 난소 기형종을 발견하고 수술 준비를 하며 이 병이 왜 생겼는지,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수술 후에는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설명 듣지 못해 혼란스러웠다고 했다. 그 와중에 난소 기형종이 '아이를 낳지 않아 생기는 병'이라는 말에 좌절감을 크게 느꼈다고 한다. 아닌척하면서도 그 짧은 찰나의 순간 '내가 출산을 안 해서 진짜 이런 병에 걸린 건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는 '언니'의 말을 들으며 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더욱 이 문제를 찾아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속절없이 앉아서 애를 낳지 않아서, 커리어우먼이어서 병에 걸렸다는 얘기를 듣고 '그러려니' 받아들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핑크리본 캠페인으로 상징되는 유방암 인식개선 캠페인은 이제  많이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방암학회와 에스티로더를 비롯한 여러 회사들이 함께 여러 캠페인을  왔다. 목욕탕 세신사들을 교육시켜 유방암 조기 자가진단을 실제로 끌어올렸던 사례와 유방 절제술에 대한 인식개선을  부분은 몹시 훌륭한 캠페인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자궁, 난소질환에 대한 인식개선은 전무한 듯하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자궁이라는 단어를 드러내는 것을 꺼려한다. 모든 질환에 대한 인식개선 캠페인을 하는 캠페인 천국 미국에서는 자궁내막증이나 자궁근종 같은 질환도 인식개선의 달이나 날을 정해두고 여러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이런 인식개선 캠페인에 장단점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병을 가진 것만으로도 수치스러워하며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를 개선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몹시 환영한다.

7월은 자궁근종의 달이다.  과다출혈을 해본 자라면 알지. '화이트 드레스 프로젝트' 말만 들어도 소스라친다! https://www.thewhitedressproject.org/


뒤늦었지만 이런 움직임이 우리나라에도 전해지길. 그리고 이 더디디 더딘 여성건강과 관련한 의학연구의 진보에도 힘이 되어주길 바라본다. 보스턴칼리지의 사회학 연구 교수이자 보스턴대학교의 명예교수인 캐서린 콜러 리스먼은 자궁내막증을 생식의 문제로만 해석하는 이유를 의사들이 아이 없는 여성 같은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경우를 질병으로 여겨 성차별적 사회규범을 강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엄청나게 시끄럽고 지독하게 위태로운 나의 자궁, 에비 노먼 저) 다른 자궁, 난소질환의 역사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참을 자궁근종, 자궁적출 이후의 여성의 삶의 질에 대한 논문을 찾아보며, 그 어떤 연구도 나 같은 미혼여성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했다. 기대도 안 했지만, 사실로 확인하고 나니 허탈했다. 자궁적출술을 받은 미혼여성의 여성으로서의 인지라던지 섹스 라이프에 대해서 아무도 연구를 안 해서, 나는 오늘도 혼자 글을 쓰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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