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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원동 바히네 Jul 26. 2021

엄마가 시장에서 들통을사 왔다.

두 번의 수술 뒤 엄마의돌봄 노동을바라보며

첫 번째 수술 후 마취와 통증에 취해 누워있던 틈을 타 오빠가 엄마에게 나의 수술 사실을 전했다. 아무리 봐도 혼자서 집에 있는 건 불안하니 엄마가 좀 와보라고 했던 것 같다. 엄마는 짐가방 안에 화장품 하나 챙기지 않고 반찬만 가득 싣고 급히 서울로 올라왔다. 


나에게 우리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예민한 사람이다. 익숙한 곳이 아닌 곳에서 잠도 못 자고 식사도 어려워한다. 비행기를 타는 것에 큰 공포가 있어서 엄마를 데리고 두 번 해외로 여행을 갔지만 엄마는 '내가 해 냈다'는 성취감 말고 오롯이 여행을 즐기지는 못했던 것 같다. 엄마의 여행 공포는 나라를 가리지 않았다. 마음이 편하지 않은 상태에서 강원도를 가다가 차 안에서 발진을 일으켜 집으로 돌아간 적도 있다. 내가 서울로 독립한 이후 엄마는 서울에 딱 두 번 왔었다. 


세 번째 온 서울행이 갑작스러운 딸내미의 수술 소식을 듣고 급히 오는 것이다 보니 엄마도 경황이 없었을 것이다. 옷이며 화장품은 하나 챙기지 않고 일단 반찬부터 챙겨 오는 모습이 영락없는 엄마다 싶었다. 혼자서는 어딜 가본 적이 없는 엄마였기에 가족 모두가 걱정이 컸다. 하지만 엄마가 오는 것 말고 또 그렇다 할 대안도 없었다. 평생 온 가족을 위한 돌봄 노동을 쉬지 않았던 엄마가 또 강도 높은 돌봄 노동의 주체가 되어버렸다. 


"사유리 봤어? 엄마는 사유리 너무 멋있더라. 아들도 너무 귀엽고. 그냥 특이한 앤 줄 알았더니 자기 주관이 아주 뚜렷해. 엄마 사유리 유튜브 구독했잖아."

엄마는 반찬을 꺼내 밥을 차려주면서 사유리 얘기를 꺼냈다. 

"너도 결혼하지 말고 사유리처럼 애나 하나 낳아봐. 하나 낳아서 키우는 건 괜찮지 않나?"

아뿔싸. 오빠는 엄마에게 내가 자궁 수술을 받았다고는 얘기를 했지만 자궁 적출을 했다고는 말을 안 했던 것이었다. 이 일을 어쩌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엄마, 엄마 손주 손녀는 오빠네 애들이 끝이야."

엄마는 그 얘기를 듣고 다음 날 아침이 될  때까지 울었다. '왜 내 딸한테 이런 일이 생겼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엄마는 밤새 말이 없었다. 


내가 결혼에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아주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부모님도 내 선택을 존중하고 지지했다.  혼자서도 잘 사는 모습을, 나보다 앞서간 멋있는 언니들이 혼자서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부모님, 특히 엄마는 본인이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당연히 내가 손주를 안겨다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부모 마음은 또 그렇지만도 않았나 보다. 혼자 늙어갈 내가 걱정되던 차에 사유리가 엄마에게 훅 하고 들어왔다. 

"지금까지 산 것처럼 앞으로도 혼자 잘 살 건데 뭐. 자식이 있다고 외롭지 않을 사람이었으면 혼자서도 외롭지 않을 인생이었을 걸." 

불을 끈 깜깜한 방에서 나는 혼자 중얼거리듯 말하고 선잠에 들었다. 얕은 잠을 자다 잠깐 깨 보면 엄마의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한 숨도 자지 못한 듯 퉁퉁 부은 얼굴로 일어났다. 

"시장은 어디로 가면 돼?"  

"혼자 어떻게 가려고?"

"가면 가지. 왜 못가. 길만 알려줘. 내가 뭐 바본 줄 알아. 나도 다 할 수 있어."

엄마는 혼자 시장을 가보겠다고 했다. 서울이 낯설기도 하고 핸드폰으로 지도를 볼 줄 모르는 엄마가 너무 걱정됐지만 결심이 단호해 보였다. 집을 나선 뒤 한 시간쯤 지나 엄마는 양손에 정말 한 가득 장을 봐서 돌아왔다. 부었던 얼굴이 가라앉고 표정이 한가득 밝아져 있었다. 

"뭘 그렇게 샀어? 이건 뭐야. 들통이야? 이걸 어디서 샀어?"

"야, 여기 시장 진짜 대박이다. 우리 동네 시장보다 더 싸고 훨씬 신선해! 없는 게 없어."

엄마는 채소와 과일, 사골과 들통을 사 왔다. 곰국을 끓이겠다고 했다. 

"엄마, 나 곰국 안 먹어. 고기 안 먹어 엄마. 이걸 왜 이렇게 많이 사 왔어." 

대단한 채식을 하는 건 아니지만, 최대한 고기 섭취를 줄이고 싶어 하는 나에게 곰국은 너무 본격적인 고기메뉴였다. 게다가 다시 쓸 일 없을 것 같은 저 들통. 공간만 차지하다 녹이 슬어 버릴 것 같았다. 큰 들통과 사골을 보는데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짜증이 났다. 

"가만있어. 이거 먹고 힘내서 잘살아보면 되지 뭐." 

왜 우리 집에 이런 들통이 생겨버린 거죠...?


엄마는 밤새 뒤척이며 잠을 못 이루다 곰국을 먹고 힘을 내서 잘 살아보자는 결론을 얻었나 보다. 오래오래 곰국을 끓이고, 또 끓여 총 세 번을 끓인 다음 이를 한데 섞고, 사태를 삶고 대파를 썰어 올리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앞으로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  곰국은 엄마에게 그런 의미였던 것이다. 나는 그 앞에서 이 소가 얼마나 많은 항생제와 호르몬제를 먹고 자랐는지, 그래서 내 몸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칠지, 뼈를 오래 고아서 먹으면 오히려 몸속에서 칼슘 섭취를 못하게 만드는 성분을 먹는 것인지, 콜레스테롤을 얼마나 높이는지 따질 수 없었다. 떡국을 먹어야 한 살을 더 먹는 것처럼, 곰국을 먹어야 앞으로 건강하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주 앉아 곰국을 원샷하지 않으면 엄마와 나는 앞으로 한 발짝을 못 움직일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매일 하루 한 끼 곰국을 먹기 시작했다. 먹어도 먹어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솟아나는 곰국이여. 


그날 이후 엄마는 하루 한번 시장보기, 두 시간 한강에서 운동하기를 실천하며 서울 생활에 적응해갔다. 내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고 내 운동화를 신고 오전에 운동을 하고 오후에 시장을 봤다. 늦은 오후에는 침대에 같이 누워 하루에 한 편씩 영화를 봤다. 동네를 걷다가 미용실을 발견하고 충동적으로 머리를 자르고 오기도 했다. 동네 빈티지 숍에서 인테리어 소품을 사 오기도 했고, 떨어진 내 화장품을 사러 올리브영에 다녀오기도 했다. 낯선 곳을 온몸으로 거부하던 엄마는 어떻게든 이 생활에 적응을 하려 안간힘을 썼다. 한숨도 못 자던 밤을 보내다 코를 골며 자는 날이 이어졌다. 수술한 데는 괜찮냐느니, 좀 걸을 수 있겠냐느니 묻지 않았고,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도 물은 적이 없다. 그저 삼시 세끼 열심히 장을 봐서 밥을 차려주는 것으로, 그리고 모두가 절대 서울에서 이틀 이상 못 지낼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오랫동안 옆에 있어주는 것 만으로 엄마는 엄마로서의 몫을 다 했다. 엄마를 앞에 두고 아프다느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느니,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느니를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주는 밥을 반찬투정하지 않고 싹싹 비우는 것으로 나는 내 몫을 해야만 했다. 


어려운 엄마와 딸 사이. 엄마는 나를 보면서 거울을 보는 것 같아서, 내가 아프면 엄마 탓인 것만 같아서 괴롭다고 했다. 나는 내가 아픈 게 엄마한테 죄를 짓는 것 같아서, 내가 아무 문제없이 잘 살지 못하는 게 불효인 것 같아서 화가 났다. 두 번의 수술 뒤 5주의 시간을 그렇게 같이 보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옷과 신발을 장착하고 병원 가는 길을 따라나선 엄마.


엄마밥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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