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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 키우기는 좋은 아침 명상 방법

작은 집에서 허브를 잘 키워서... 뜯어먹습니다.

by 망원동 바히네

집에 큰 베란다는 없지만 거실 창 밖에 에어컨 실외기를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이 작은 공간에 나름 우드 데크를 깔고, 이태리 토분에 허브를 놓고 심은지 3년째다. 왠지 올해는 예감이 좋다.


첫 해에는 로즈마리와 바질만 키웠다. 금방 죽었다. 이유도 모른 채 죽음을 맞아야 했다. 같은 해에 후배가 정말 웬만하면 죽지 않는다는 식물을 선물로 줬는데, 그걸 죽여버린 나였으니...


작년에는 로즈마리와 바질, 애플민트, 딜, 이태리 파슬리, 타임을 키웠다. 이렇게 많이 키울 생각은 아니었는데, 양재 꽃시장에 모종을 사러 갔다가 과소비를 해버렸다. 요리에 쓸 허브들을 주로 키워먹어야지 싶었는데, 요리에 허브를 많이 쓰니까, 보는 족족 구매욕이 솟구쳤다. 바질과 이태리 파슬리는 모종을 다섯 개씩 샀다. 딜은 세 개, 민트와 로즈마리, 타임은 각각 하나씩 샀다. 딜은 심자마자 축 늘어지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나무젓가락을 꽂아 대를 세워 묶어주었다. 간신히 살리긴 했지만 파는 딜처럼 줄기가 굵어지지 않고 늘 시들했다. 파슬리도 파는 것처럼 키가 크지 않았다. 바질과 로즈마리는 나름 선방했다. 타임은 이 중에서 가장 씩씩하게 잘 자랐다.


작년에 허브를 키우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여러 명에게 알렸다. 그 전해에 대차게 모두 죽여버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말과 함께.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안돼요. 허브가 죽는 이유는 첫째도 과습, 둘째도 과습!

첫 해에 나는 물을 너무 많이 줬다. 비가 오면 '와, 영양이 풍부한 비를 맞으니 우리 허브들이 정말 좋아하겠구나!'하고 축하해줬다. 비가 오면 화분을 실내로 들이고, 실내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선풍기 바람을 쐬 주라고 했다. 과습만큼 허브가 싫어하는 것이 통풍이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토분 네 개를 비가 올 때마다 거실로 들였다. 장마철엔 비가 꽤 많이 와서 화분을 들일 때마다 내 머리와 옷이 많이 젖었다. 화분을 쪼르르 의자에 올려두고 써큘레이터로 바람을 쐬줬다.

'이게 맞는 거야?'

식물 살리겠다고 전기를 쓰는 게 맞는 일인가? 하지만 이게 현대 농업이 하는 일이 아닌가? 아니 안 먹자고 마음먹으면 쓸데없는 전기를 안 써도 될 일이 아닌가? 그럼 결국 나는 또 새벽 배송으로 허브를 시켜먹을 텐데, 그럼 플라스틱에 담긴 허브가 올 텐데?

이런 생각을 오조오억 번쯤 하는 동안 허브들은 써큘레이터 바람을 쐬며, 크고 튼튼하진 않아도 어떻게든 살아냈다. 딜과 바질은 한참 꽃을 피우다 갔다. 나중에 들어보니 꽃을 피우게 두면 안된다고 했다. 꽃이 피지 않게 꽃대를 부지런히 잘라줘야 계속 잎을 먹을 수 있는 거라고. 나는 몰랐다.


올해는 마르쉐와 망원시장에서 모종을 샀다. 바질과 딜은 마르쉐에서, 스피아민트와 애플민트, 로즈마리는 시장에 있는 꽃집에서 샀다. 4월에서 5월 초가 되면 시장 꽃집엔 모종이 가득하다. 상추, 고추, 토마토 같은 익숙한 작물부터 예쁜 꽃모종, 바질과 로즈마리, 민트 같은 기본적인 허브류도 잘 갖춰놓고 파신다. 농부들이 직접 소비자에게 작물을 파는 '파머스마켓'인 마르쉐에서도 봄이 되면 모종을 파는 농부들과, 모종을 사려는 사람들이 북적인다.

"이거 딜이죠? 이거 두 개 밖에 없어요? 두 개 다 주세요!"

"네. 담아가실 가방 있으시죠? 근데 딜을 왜 사시는 거예요?"

"키워서 뜯어먹으려고요!"

"집에서 키우세요? 화분에?"

"네! 왜요? 화분에 키우면 잘 안 커요?"

"다들 딜을 사면서, 딜을 키워서 드시려고 사시겠죠? 근데 딜이, 뿌리가 놔두면 1미터까지 자라는 애거든요. 아파트 베란다에서 많이 답답해할 거예요. 그리고 얘는 하루에 6시간 이상은 해를 쫘 줘야 되고... 물도 잘 줘야 되고..."

"아이, 모종 사러 오는 사람한테 김 빠지게 왜 그런소릴해요! 선생님, 이거 지금 사가서 뜯어먹기만 해도 사 먹는 딜 값이랑 비슷해요. 이미 많이 자란 걸 가져와서."

옆에 있던 스태프가 농부님을 말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번 사고자하는 내 욕구를 막을 수는 없었다. 다른 농부님에게 딜 모종 하나가 남아있어 마저 챙겼다. 그 딜 모종에는 한켠에 어쩌다 날아와 틈을 비집고 자리 잡은 고수가 자라고 있었다. 뿌리가 뭉쳐있는 것 같아서 그냥 같이 데리고 왔다고 했다.


화분의 흙도 3년 차가 되었으니 한번 갈아주려고 흙도 샀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에서 화분의 흙을 모두 비우고, 새로 모종을 심고, 흙을 채운 다음 뒷정리를 하는 일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득해졌다. 하는 수 없이 애인 찬스를 썼다. 둘이서 화분을 건물 앞 놀이터에 옮기고, 마음 편히 흙을 비우고 새 모종을 심었다. 혼자서는 힘들고 오래 걸릴 일이 둘이 하니 금방 끝났다. 새 흙으로 꽉 채워진 무거운 화분을 나르는 일도 훨씬 수월했다. 쪼르르 밖에 내놓은 화분들을 보며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부는 것 같던 올해 봄날에 심은 허브가 잘 자랄 수 있을지, 올해도 비올 때마다 화분을 들여서 바람을 쐬줘야 하는 것인지 등의 얘기를 나눴다.

"그거 알아? 모종을 옮겨 심은 다음에는 바람을 쐬줘야한데. 심자마자 지지대에 묶으면 안 된데. 바람이 불어야 뿌리를 강하게 내린다고 하더라고."

".....!!!!"

작년에 딜을 심자마자 나무젓가락으로 지지대를 만들었던 과거의 나여...

"그리고 모종을 심은 다음에 흙은 꼭꼭 눌러야 해. 잔뿌리가 흙에 가까이 있어야 금방 뿌리를 잘 내리거든."

".....!!!!"

흙을 내가 눌렀던가...? 기억에 없으니 신경 써서 누르지 않은 것은 틀림없다.

한 시간도 멍하니 볼 수 있다. 예쁜 내 새끼들.

아무튼 올해의 허브 심기도 완료.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물을 한 사발 떠서 천천히 마시며 허브들이 잘 있는지 관찰하는 재미가 크다. 바람에 파들파들 흔들리는 잎들, 새로 빼꼼히 올라온 어제 없던 잎들, 조금 더 굵어진 줄기들을 관찰한다. 물은 겉흙이 아주 바싹 말랐을 때 너무 많지 않게 준다. 요즘은 날이 건조하고 일조량이 많아 허브들의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 두 농부님에게 사온 딜은 각각 컨디션이 다르다. 고수와 함께 데려온 아이는 상대적으로 비실비실하다.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잘 심었으니 이제 잘 키워보는 수밖에.


코로나 이후에 '반려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급증했다고 한다. 특히 MZ세대들 사이에선 식물을 쇼핑하는 일이 낯설지 않은 일이고, 키우기 어려운 식물을 잘 키워 다시 파는 리셀 시장도 형성되어 있다고. 잘 자라는 몬스테라 잎을 나눔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비싼 식물을 키워 파는 시장이 따로 있다니! '식물 테크' 시장이 잠깐 반짝할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2년 넘게 고속 성장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투자용이 아니더라도 집을 꾸미고 공기 정화나 습도 유지의 목적으로, 단순히 예쁘기 때문에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도 많다. 물을 줄 때가 되진 않았는지, 오늘 비 예보가 있진 않은지 신경 쓰이는 일이 적지 않지만, 그래도 아침에 식물을 관찰하는 재미와 무엇보다도 뜯어먹는 재미가 몹시 크다.


아직 심기에 늦지 않은 시기. 시장엔 여전히 모종을 많이 판다. 창문을 열어둘 수 있는 베란다나 바깥으로 연결되는 공간이 있다면, 도전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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