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가라는 이름하에 행해지는 주체적 삶

by 부지러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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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게 된지 얼마 안되는 나지만 하루키 책은 우연찮게도 몇 권을 읽어보았다. 이번 책에는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작가가 어떻게 썼는지, 어떤 생각을 담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쓰게 됐는지 등이 담겨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 이 책은 소설가라는 것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예술가의 영역이라는 생각을 매우 차근차근 깨주었기 때문에 나도 소설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이내 1~2권을 쓰고 사라지는 여느 소설가가 많다는 부분에서 다시 덜컥 두려움을 주기도 했다. (세상에 쉬운 건 없어.)


1. 연결의 힘


소설은 어떻게 쓰는 걸까? 어떻게 그렇게 유기적으로 잘 연결된 하나의 스토리와 다양한 인물들이 한 사람의 머릿 속에서 탄생할 수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다.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그것에 대해 즉각 어떤 결론을 내리는 쪽으로는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 보다는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형태로 기억에 담아두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것에 대해 나중에 좀 더 마음이 침착해졌을 때, 시간 여유가 있을 때, 다양한 방향에서 들여다보고 주의깊게 검증하고 필요에 따라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소설가도 사람인지라 본인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억으로 축적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서 블록 장난감을 조립하듯 스토리를 완성해 나갈 수는 없나보다. 그래서 본인이 경험한 것들을 언제 어디서 쓸 지 모르니 최대한 생생하게 기억하고 (메모를 하든, 뇌릿 속에 꾹 눌러 담든) 그런 기억의 파편들이 나중에 어떤 소설에서 문득문득 연결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비단 소설가 뿐이겠는가, 사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렇게 거창한 일이 아닐지라도 융복합은 일어나곤 한다. 일종의 나비효과 같은 것인데 문득 생각하고 적어놨던 것들이 전혀 다른 곳에 활용되어 의외의 성과가 되기도 한다. 나는 어렸을 때 부터 책을 쓰고 강의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책을 쓰고 강의를 하는 사람이 되는 법을 알려주는 강의는 찾을 수가 없었고, 또 그런 강의가 있다고 한들 과연 내가 그 강의를 듣고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싶다. 얼마 전에 시작한 모임들에서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실천해 나가는 힘을 기르고 때로는 독자적으로 개인 브랜드가 될 수 있을만한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도해 보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 모든 것들에는 나의 의지와 더불어 함께하는 사람들의 피드백과 그들로부터 얻게 되는 동기부여, 인사이트들이 합쳐져 더 커다란 목표와 실행력이 되고, 의도하지 않았던 부분에서 연결이 되어 더욱 발전하게 된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나도 조만간 강의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연결의 힘은 그렇게 순간 결론을 내지 않았도 언젠가 만나게 되는 파편들의 합이 내는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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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규칙의 힘


장편소설을 쓴다는 것은 글을 써본 사람에게는 더더욱 엄두가 안나는 일이다. 하룻강아지만 되어 봐도 범이 무서운 것이다. 엄청난 분량의 초고를 쓰고 그걸 거의 초고를 쓴 기간만큼 수십 수백번 고치는 과정을 나열하는 작가에게서 경외감을 느낀 것 만으로 내 감정을 설명하기엔 부족했다.


"하루에 200자 원고지 20매를 쓰는 것을 규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좀 더 쓰고 싶더라도 20매 정도에서 딱 멈추고, 오늘은 뭔가 잘 안된다 싶어도 어떻든 노력해서 20매까지는 씁니다."
"과묵한 집중력, 좌절하는 일 없는 지속력이며 어떤 포인트까지는 견고하게 제도화된 의식입니다. 아울러 그러한 자질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신체력입니다."
"뇌 내에서 태어나는 해마 뉴런의 수는 유산소운동을 통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고 합니다. 즉 육체적 운동과 지적인 작업의 일상적인 조합은 작가가 행하는 종류의 창조적인 노동에는 매우 이상적인 영향을 끼치는 셈입니다."


그 어떤 탑도 하루 아침에 쌓을 수는 없다. 그는 소위 말하는 '예술가'로서 규칙적이지 않으며 남들과 매우 다르고 어떨 땐 일반인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통해 예술가적 기질을 발휘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매일 일정한 분량의 글을 쓰고 운동을 하고 규칙적인 수면시간을 통해 그의 탑을 쌓아가는 착실한 사람이었다. 물론 각자가 가진 성향과 기질에 따라 본인에게 맞는 스타일의 라이프 밸런스가 있을 것이다. 다만 규칙적으로 무언가를 계획하고 꾸준히 해내가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뒤쳐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생각한다. 설령 실패를 겪더라도 다시 일어날 힘이 그들에게는 있다. 나라는 사람은 사실 꾸준히 무엇인가를 하는데 맞지 않는 성향을 가진 사람의 대표주자라고 볼 수 있다. 굉장히 싫증을 잘 내고 새로운 것에 흥미를 가지기 좋아하기 때문에 계획을 세우고 좀 하다 마는 것에 익숙해있었고, 그런 나를 '성향'이라는 말로 합리화하며 살곤 했다. 그러나 요즘 꾸준히 하는 것들 (미라클 모닝, 글쓰기, 세줄일기, 다이어트 등등)을 통해 삶의 변화를 느끼고 있다. 무언가 대단한 변화라기 보다는 내가 스스로 내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점점 생긴다고나 할까? 규칙이란 건 사소하더라도 습관이 되면 축적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하며 그 축적된 시간은 언젠간 세상 밖으로 흘러넘칠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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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혼자쓰는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내가 읽은 첫번째 하루키의 책이었는데 내용이 너무 흥미진진해서 소설을 읽는 재미를 알게 해준 책이었다. 그런데 작가는 이 책을 단편소설로 생각하고 썼다고 한다. 극중에 쓰쿠루라는 인물이 어렸을 적 친했던 친구들과 갑자기 헤어지게 되면서 점점 잊혀져 가는 기억들을 그의 여자친구인 사라에게 이야기 하게 되는데, 작가가 만든 인물인 여자친구 사라가 쓰쿠루에게 그 친구들을 만나러 가라는 조언을 하게 되면서 단편소설이 장편소설이 되었다고 한다. 이 부분이 매우 흥미로웠는데, 작가는 고독히 혼자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는 소설 속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그 인물들과 호흡하여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소설이 더욱 풍부하게 완성되어 가는 것을 알려주었다. 마치 글을 쓰면서 내 글과 호흡하고 이야기해서 조금씩 고치고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 나에게도 조금씩 있는데 그런 부분이 인물로 확대되면 소설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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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무서운 일을 예방하는 법


어느 부분에선가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꼬집으며 작가는 말한다.


"수치 중시, 효율 우선의 체질을 가진 영리기업에서 운영할 때 ,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공감이 결락된 기계적 암기, 상의하달의 관료조직이 그것을 지도하고 감시 할 때 거기에서는 소름끼칠 정도의 리스크가 생겨납니다."


정말 무서운 일인데, 어찌 보면 큰 자연재해를 통해 일어난 비극적 참사라고 여겨지는 일들도 사실 알고 보면 인재에 가까운 경우가 있다. 부주의하고 무책임한 행동들의 축적에 의해 벌어지는 것인데, 이야말로 수동적인 삶의 태도로 일관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최악의 작품들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 줄 알면서도 감기걸려 후회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일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본인의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가랑비에 옷이 젖기 전에 우산을 쓰든 옷이 젖으면 잠시 비를 피하든 젖은 옷을 갈아입고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든 우리에게는 정말 무서운 일을 당하기 전에 많은 기회가 있다는 것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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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차별화


다르다는 건 어떤 면에서 이목을 끄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선 반감과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그다지 보통이 아닌 것, 남들과 다른 것을 하면 수많은 네거티브한 반응을 불러 일으킨다는 점은 일단 틀림이 없겠지요?
말을 바꾸면 프레임이 공고해지기 쉽고 권위가 그 힘을 휘드리기 쉬운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나랑 달라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갖기 마련인데, 다름을 인정하고 배우려는 사람들 보다는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여 배척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나는 어렸을 때 부터 누군가처럼 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남들처럼 하는 것은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물론 그런 부분이 때론 나를 자극시켜 무엇인가를 열심히 준비하여 뛰어나게 보여주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주었지만, 어떨 때는 너무 튄다, 오바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하기도 했다. 내 생각에는 차별화의 정도에 따라 사람들은 본인이 할 수 없는 영역에 다다른 사람의 차별성에는 경외감을 보이지만, 내가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범위에 해당되는 차별화에 대해서는 '누가 그렇게 할 줄 몰라서 안하는 줄 알아?'라는 비아냥을 섞고는 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을 수 있다.) 그래서 차별화를 할 때는 남몰래 조금씩 쌓아놓고 차별화 과정을 숨기고 있다가 어느 순간 현격하게 벌어진 차별화가 대체불가능한 존재로 인식되었을 때 비로소 그 차별화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게 되는지도 모른다.

대불차 (대체 불가능한 차별화)라는 닉네임을 지은 이유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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