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팝

by 부지러너

얼마 전 고등학교 친구들과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다.

대학교 2학년 때 같이 유럽여행을 갔던 친구들과 리마인드 유럽여행으로.

이번엔 스페인 남부도시들을 일주일간 여행하는 로드트립이었다.

7일간 1500km 정도를 달리며 여러 도시들을 다녀왔는데

기억에 남는 여러 장면들과 시간들을 뒤로하고

지금까지 생각나는 건 광활한 평원에 드리운 수만그루에 올리브 나무들 위로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그 도로들 위에서 들었던 노래들 중에

일본 80년대 시티팝 노래들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stay with me'로 시작해서

'푸른 산호초'로 끝났던 그 메들리가 잔상처럼 남아서

요즘 계속 시티팝을 듣게 된다.

출근하는 길에도 운동할 때도 점심시간에도.


'푸른 산호초'는 뉴진스 하니가 부르면서 다시 화제가 되었는데

나는 하니가 부른 버전에서 전혀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나는 원곡이 주는 시대상과 그 시절의 사람들과 분위기가

훨씬 와닿고 좋은 것 같아 80년대 원곡버전을 교차편집한 영상을 수도 없이 돌려본다.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열린음악회, 전국노래자랑, 가요톱텐 같은 무대들에서

각각 '푸른 산호초'를 부르는 원곡가수의 열창도 열창이지만

그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들과 주위 풍경들과 분위기가

마치 영원히 번영할 것만 같은 세상에서 한껏 행복감에 취해있는 것이

부흥기를 살던 사람들의 세상 걱정없는 천진난만함을 느끼게 한다.


황혼기이자 쇠퇴기를 사는 지금의 나에게는

인생의 절반을 살아내어 이제 한 풀 꺽여버린 나에게는

그저 그들의 걱정없는 얼굴에서 오는 편안함이 가장 와닿는 것 같다.


'내 사랑은 남쪽 바람을 타고 달려가요'

'푸른 바람을 가르며 저 섬으로 가요'


어쩜 저리 태평하고 낭만적이란 말인가

90년대 IMF를 고증한 태풍상사 드라마나,

요새 유행하는 대기업자가김부장이야기 드라마와는 사뭇 다른

그때 그 낭만이 나는 왜 이렇게 사무치도록 그리운 걸까?


다시 번영의 시대가 올 수 있을까?

아니, 다시 천진난만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냥 시티팝이나 몇 번 더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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