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한 해

2025년의 회고

by 부지러너

'나의 행복론'이라고 거창하게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행복해지는 나만의 방법을 가지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을 경험을 통해 확인해 나가며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일이나 행위의 빈도를 늘려나간다.

행복은 강도보다는 빈도인지라

내 삶의 시간을 자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행하는데 쓰다 보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생각했었다. 올해까지만 해도..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경험을 통해 확인할수록

나는 이 일들을 더 많이 더 자주 하면 행복할 거라는 생각에 기인하여

올해는 그 일들을 하는 시간을 한 없이 늘려 보았고 깨달았다.

무엇이든, 설령 내가 좋아하는 것일지라도

지나치게 많이 하면 탈이 난다는 것을...


1. 독서모임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하기 싫었지만, 억지로 했던 터라

활자로 된 취미를 갖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다 독서모임에 우연히 나가게 되었는데

혼자서 읽기 어려운 책들을 누군가와 함께 읽는다는 것은

아예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은 책 읽는 과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책을 읽고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책을 읽는 내내 집중하게 만들고

어떤 이야기를 독서모임에서 나눌 수 있을까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책이랑 거리가 멀었던 내가 책을 많이 읽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독서모임을 꾸준히 한지 10년이 넘어서

올해는 좀 더 많이 독서모임을 해보고 싶어

한 달에 2~3개 정도였던 독서모임을 5~6개까지 늘려보았다.

관심 있는 주제의 독서모임,

일과 관련된 독서모임,

동네에서 하는 독서모임,

회사 근처에서 하는 독서모임,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들과 하는 독서모임 등등

정말 다양한 주제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내가 좋아하는 독서모임을 즐기는 듯했다.

하지만 어느새 1주일에 1권 이상 책을 읽는 것이 버거워졌다.

사실 1주일에 책 1권을 읽는 것이 버거운 게 아니라

내가 읽고 싶지 않은 책을 지속적으로 읽어내야 한다는 것이 버거웠다.

또한 독서모임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지만

사고의 폭을 확장할 수 있는 다른 생각들을 쏟아내는 것이 좋았는데

어느샌가 나와 다른 이야기들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내가 점점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적당한 정도에서 사고의 폭이 확장되는 것에는 흥미가 있었는데

시도 때도 없이 다른 생각들, 혹은 다른 태도들, 다른 궤적들을 마주하니

관계의 영역에서도 버거워졌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독서모임의 홍수에서 헤매다가 나 스스로 독서모임을 끊게 되었다.

하반기에는 독서모임을 1개 정도 하다가 그 마저도 나가지 않게 되었다.

너무 과도하게 밀어붙인 결과가 결국 내가 좋아했던 것 마저 잃게 만든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2. 달리기

나는 19년도부터 아침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3킬로, 5킬로 정도 달리던 것이 어느새 10킬로 마라톤 대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22년을 시작으로 매해 한 번씩 풀코스 마라톤을 뛰다가 올해는 더욱 욕심을 내어

봄에 한 번, 가을에 두 번의 풀코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매 달 150~200km 가까운 거리를 뛰던 내가,

올해는 1월부터 시작해서 250km 정도의 거리를 꾸준히 뛰었었고

중간에 부상이 오고 나서는 빠르고 강한 훈련보다는 천천히 오래 많이 뛰는데 집중해서

9월에는 월 마일리지 400km를 돌파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마라톤 기록은 좋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달리는 것이 숙제처럼 느껴졌다.

매일 13km 이상 뛰어야 월 400km를 채울 수 있었던 9월을 기점으로

10월부터 급격하게 뛰는 거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가을에 있던 두 번의 마라톤은 기록도 좋지 않았고, 마지막 마라톤은 완주를 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의 25년 달리기는 용두사미가 되어만 갔고,

11월, 12월에는 단거리 스프린트 대회에 참가했는데 그게 탈이 나서 결국엔 무릎을 다치고 말았다.

며칠간은 걷기조차 불편한 상태가 지속되었고, MRI를 찍고 여러 병원을 다니며

아직도 무릎상태를 체크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앞으로 40년은 써야 하는 무릎인데 내가 너무 많은 무게를

너무 잦은 고통으로 짊어지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달리기를 아예 못하지는 않겠지만 이제는 삶의 균형을 맞추는 정도로만

나의 달리기를 이어가고자 한다.

풀코스를 100번 이상 뛰신 분들도 있지만, 그게 나랑 반드시 맞다고 볼 수 없으니

나는 적당히 뛰면서 오래 즐기는 러너가 되기로 했다.


3. 콘텐츠

올 한 해는 독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를 소비하며 점점 더 많은 영역에서

다양한 관심사를 빠르게 접하는 한 해가 되었던 것 같다.

각종 OTT부터, 팟캐스트, 오디오북까지 콘텐츠란 콘텐츠는 쉬지 않고 소비했다.

쇼츠와 릴스도 수없이 보고 한 번 사는 인생 최대한 다양한 인생을 경험해 보자는 마인드로

콘텐츠를 무제한적으로 흡수하다 보니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속 빈 강정처럼 실제로 남는 콘텐츠가 몇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Output을 늘리려면 Input도 많아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Input이 너무 많아져서 Output이 거의 없는 한 해를 살았던 것 같다.

작년까지는 매주 1개 이상 글을 쓰고 인스타에도 여러 콘텐츠를 업로드했지만

올해는 정말 많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대신 생산은 뚝 끊겨버린 한 해가 되었다.

오늘부터 나는 다시 한번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으로 거듭나 보려고 한다.

꾸준함보다 위대한 것은 없기에 제한적으로 콘텐츠를 소비하고

그 시간과 자원을 아껴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에 다시금 집중해보려고 한다.


사실 어떻게 보면 후회가 많이 남는 한 해였던 것 같다.

뭐든 지나치면 모자란 만 못하다는 격언을 실제로 뼈저리게 겪어본 한 해였고,

이 또한 겪어보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라 생각하지만

내년에는 밸런스 있는 삶을 살면서 다시금 내 안의 충만한 요소들을 채우는 한 해를 만들어야겠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오늘부터 다시 시간 기록을 시작했다.


26년 회고할 때는 꼭 후회보다 기쁨이 더 크기를 바라면서.

25년 한 해도 수고 많았다.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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