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몸을 사리는 스타일이다.
정확히는 기회를, 자리를, 경험을 사리곤 한다.
언뜻 보거나 들으면 겸손한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
추천해 주는 자리를 마다하거나,
꼭 맡아주었으면 하는 기회를 사양하거나,
그럴 때마다 정중하게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 그래 보일 수도 있겠다.
다만, 내가 몸을 사리는 진짜 이유는 겸손이라기보다는 두려움에 있다.
나는 그 일을 하게 되면 얼마의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하며
어느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게 될지를 미리 고려하여
최대한 고사하거나 미뤄내는 것이다.
그 일을 하게 된다면
그 누구와는 다르게 혹은 그 누구보다 빠르게
혹은 그 누구보다 강렬하게 하고 싶은 성향 상
그 일을 맡는 일이 나에겐 엄청난 부담이 되기 때문에
최대한 그런 기회를 갖지 않는 것이 내게 이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앞으로는 그런 기회, 자리, 경험의 빈도가 점점 줄어들 것이고
앞으로 계속 사리다 보면 이제 고사할 기회조차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나는 조금 걱정이 되더라도, 다소 우려가 있더라도, 큰 부담이 느껴지더라도
이를 감내하고 몸을 더 사리며 경험을 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훗날 내가 고사했던 많은 기회가
그때 왜 도전하지 않았을까라는 후회가 남는 일들이 되지 않도록
나는 몸을 덜 사리고 무엇이든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2. 나는 몸을 사리지 않는 스타일이다.
운동을 할 때, 승부에 큰 영향이 있는 순간이 아니더라도
낭만에 몸을 던지며 그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점프와 스피드와 힘을 써서 목표를 향해 몸을 던진다.
어떤 일을 할 때면 그 누구보다도 원대하고 높은 목표를 세워
스스로를 타이트하게 몰아붙이고 해내고자 채찍질을 한다.
그래서 결국 탈이 난다.
십자인대 수술을 두 번씩 한 사람이 또 무릎이 다쳐나가고
그렇게 하면 힘들거라 알면서도 몸을 사리지 않고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
미련하지만 나는 어떤 때에는 몸을 사리지 않는 과오를 범한다.
문득 이제 나는 더 이상 격한 운동(축구, 테니스 같은)을 할 수 없고,
앞으로 풀코스 마라톤에도 나갈 수 없어서 내가 도전하려 했던 세계 7대 마라톤 완주도 물거품이 되었고,
더 이상 나는 월 300km 이상 뛰는 사람이 될 수 없어서
매우 적은 거리를 매우 느린 속도로 꾸준히 뛰는 것으로
에너지 발산 욕구를 대체해야만 한다고 느끼게 되었다.
몸을 사리지 않으면 머지않아 정상 범주의 활동 반경도 소화하지 못하는
망가진 몸을 갖게 될 거라는 두려움이 앞서서
나는 이제부터 몸을 사리고 지속가능한 삶을 준비해야 한다.
매우 슬픈 일이지만 나는 이 슬픔을 아직 감당하기에
너무 어리고 너무 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슬프다.
그렇지만 아직 그래도 성한 이 몸뚱이를 보존하기 위해
나는 지금보다 몸을 더 사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연초부터 이런 역설적인 다짐에 또 한 번 갸우뚱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