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
물어봐줘서 고맙다고 바로 대답하는 사람
요새 연프에 빠져 산다. 정확히는 요 며칠.
회사 동료의 추천을 받아 환승연애4와 72시간 소개팅 삿포로 편을 보고 나서 연애한 지 오래된 아재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다른 뜻은 아니고 열열한 사랑을 하던 그 시절의 내가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어려진 기분이랄까.
환승연애는 사실 이름만 들어도 자극의 끝이라 볼 생각이 없다가 환승연애2가 종영을 앞두었을 무렵 유튜브 콘텐츠에서 환승연애 나간다 vs 안나간다로 토론하는 영상을 보고 왜들 그렇게 난리인지 싶어 보기 시작했었다. 그렇게 3년 전 겨울 며칠 밤을 새워서 환승연애 2를 정주행하게 되었다. 자극적인 제목과 달리 20대의 가장 뜨거운 연애를 했던 X와 다른 이성들 사이에서 미련과 설렘과 혼란을 느끼는 주인공들을 보며 청춘의 한가운데에서 꿈과 희망이 가득했던 그 시절의 내가 떠올라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그렇게 나의 레전드 연프로 남았던 환승연애2가 끝나고 3년이 지났는데 동료가 환연4에 빠져있는 걸 보고 그때의 그 기억이 떠올라 다시 정주행을 시작했다. 이번 시즌은 한층 더 자극적인 요소들로 도파민이 터지긴 했는데 도파민이 터지는 것과 별개로 이해할 수 없는 출연자들의 행동들에 짜증과 불만이 섞여 후기를 나누며 개탄할 수밖에 없었다. 거의 대부분 이해 안 된다는 말 밖에..
그러다 알게 된 72시간 소개팅. 영상미, 그림체, 기획력 모두 갓벽한 연애드라마 같은 콘텐츠였는데 72시간 안에 사랑에 빠질 수 있는지 여행지에 떠난 두 남녀가 서로의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을 만나 낯섦과 설렘 사이에서 보내는 3일을 담았다. 여행지에서 사랑에 빠지는 건 엄청나게 로맨틱하기도 하면서도 자칫 이 설렘이 상대가 주는 게 아니라 상황이 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말도 안 되게 잘생긴 남주가 말도 안 되는 섬세함과 배려심에 후회가 1도 남지 않을 것 같은 결정들을 반복하며 여주의 마음을 얻을 것 같았지만 결국 그들의 마지막 선택은 엇갈리고 말았다. 영서는 뭐가 두려웠던 것일까. 처음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현웅의 외모뿐만 아니라 그의 배려와 충실한 표현들 속에서 사랑에 빠지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신중한 그녀의 선택에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둘은 한 달 뒤 서울에서 다시 만나며 영상은 끝이 난다. 너무 좋았던 기억과 설렘으로 시작된 만남에서도 현실에 돌아가도 지속할 수 있는 관계일까에 대해 드는 생각들, 그리고 상대가 너무 배려하는 나머지 그 자신을 잃게 될까 봐 걱정하는 영서의 마음이 마지막 서울의 재회에서 느껴졌다. 그들의 끝은 알 수 없지만 누군가에게 걸음의 속도가 괜찮다고 물어봐주고 그 물음에 괜찮다고 답하면서 물어봐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사이. 그 단순한 물음과 대답 속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아이의 속도가 답답해서 걸음걸이를 재촉하던 내 자신이 이내 부끄러워지는 새벽 1시 30분 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