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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지러너 Jan 19. 2020

[책리뷰]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 최지웅

정유회사에 엔지니어로 입사한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나는 석유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다. 국내 내수시장은 물론 유가와 관련된 글로벌 동향등에 대해서도 업무로써 접하기 전까지는 문외한에 가까웠다. 우연히 관련 정부기관의 직원이 출판한 석유관련 된 책이라는 소개를 받고 회사 도서관에 구매 신청을 해서 읽게 된 이 책은 어찌보면 백지와도 같았던 나의 석유역사에 관한 영역에 매우 진하고 강렬한 서체를 일필휘지로 남겼다.


회사에 후배가 몇몇 생겼는데, 당장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다녔다. 적어도 원유/ 석유제품을 다루는 회사에 근무하면서 석유를 둘러싼 세계 각국의 패권과 헤게모니가 어떻게 움직였고 움직이고 있는지에 대해 이렇게 명쾌하게 설명하는 책이 있을까 싶었다.


석유라는 에너지가 지금의 대체에너지 정도로 간주되었던 시절부터 최근 셰일혁명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의 패권이 석유(에너지)라는 거대한 무기를 통해 좌지우지 되었었고 그 과정에서 역사의 많은 사건과 변곡점들이 일어났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엉켜있는지도 몰랐던 실타래를 가져다 내 앞에서 풀어서 스웨터를 떠준 느낌까지 들었다.



지금은 물론 신에너지, 재생에너지에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가고 전통에너지로 치부되는 석유에 대해서는 관심도가 많이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전세계 에너지 시장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석유는 앞으로도 꾸준히 수요가 상승하며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를 찾기는 요원한 상황이라고 생각할 때 이 책이 가져다주는 지평의 확장은 실로 놀라울 따름이라고 생각한다.


석유를 둘러싼 세계사에 대해서는 책에서 많이 다루고 있어 나는 간단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다뤄보고자 한다.



석기 시대는 돌이 부족해져서 끝난 것이 아니다. 석유 시대는 석유가 고갈되기 전에 끝날 것이다.  
-아메드 자키 야마니-

우리 회사에서도 내심 석유시대의 종말과 관련해 여러가지 예측을 하고 대비를 하지만 아직까지 견고한 석유 수요에 대해서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없다. 하물며 몇십년 전 석유를 퍼내면 퍼내는대로 국부를 창출할 수 있던 시절에도 감산정책을 펼친 석유의 왕 야마니는 석유 시대의 종말을 석유고갈이 아닌 수요의 부족에서 보았다. 전기차다 수소에너지다 LNG다 태양광이다 풍력에너지다 요새는 수없이 많은 에너지들이 석유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사실 점점 비중이 늘어가고 있는 것은 맞지만 석유를 온전히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태양광이나 수소가 석유를 석탄과 같은 존재로 언젠가 전락시킬 수 있다 상상은 하고 있지만.

그렇다면 그런 시대가 오기까지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온전히 대체하는 에너지가 생길 때까지 석유시장은 유지가 될 것인가?

모래성은 굳이 모든 모래를 헤집어놔야 쓰러지는 것이 아니다. 사실 시장 붕괴라는 것은 조금의 수요 감소나 외부요인에 따라 충분히 무너지고 재편 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전통에너지인 석유시장에 종말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코 앞에 있을 거라는 자각을 할 필요가 있다.

사람이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인간에게 상상력이 있기 때문이다. -올드보이-
불안과 공포는 알 수 없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상상력이 더해진 결과일 것입니다.


1,2차 오일쇼크의 발단이 매우 다른 곳에서 기인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놀랐지만 2차 오일쇼크는 마치 태풍예보에 대비해 마트를 터는 소비자들의 심리와도 같이 여겨졌다. 1차 오일쇼크에 대한 학습효과와 더불어 석유 수급 위기에 대응방안이 비축량을 확대하는 것 외에는 없는 자원빈국의 과도한 불안과 공포 심리가 석유의 가치를 무한정 끌어올렸다는 사실에서 경제학적으로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주체라고 여겨지는 인간의 심리가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왜 공포정치를 하는지, 연애할 때 밀당을 하는지 어쩌면 석유의 패권이 아니라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도 인간의 불안과 공포를 조장해 얻고자 하는 것을 획득하고 있다. 석유가 제1에너지원으로 세계사에 중요한 팩터로 작용했다 뿐이지 결국 인간이 하는 의사결정에는 동일한 원리가 적용됐다는 게 새삼스럽게 새롭게 느껴졌다.


호메이니는 미국에 팔레비의 신병 인도를 요구하지만 미국은 이를 거부합니다. 그러자 이란 대학생들이 주 이란 미국 대사관을 점거하고 직원들을 인질로 잡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올해 팀 선배의 추천으로 보게 된 아르고라는 영화는 주이란 미국 대사관 직원들의 탈출기를 그린 스릴러 장르의 영화였다. 영화 자체를 볼 때는 탈출 스릴러에 방점을 두고 보아도 흥미진진했기 때문에 역사적 배경이나 시대상황이 궁금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연히 책에서 영화 배경의 장면이 거론 되었고 중동 정세와 각국의 이권다툼의 과정에서 미 대사관 직원들이 느꼈을 공포를 상상하니 매우 심각한 소재의 영화로 탈바꿈하였다. 미국은 중동 정세의 균형을 통해 세계의 패권을 유지하고 전세계 최강대국의 지위를 존속해왔다.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이탈리아, 프랑스, 이란 등의 지렁이들의 꿈틀거림을 철저하게 밟아가며 더욱 더 확고한 자리를 구축해간다. 어찌보면 강대국 사이의 친교라는 것이 결국 나라 간의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해서 벌이는 윈-윈 게임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언제나 누군가는 적으로 마녀사냥을 당해야 하고 그런 일은 자본주의라는 이름 하에 용인이 되고 있다. 그렇다고 사회주의나 전체주의가 절대 다수의 행복을 이뤄준다는 것도 부정당한 이 세상에서 과연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조차 판단하기 힘든 복잡다난한 상황에서 어떤 쪽을 지지하는 것이 맞는 걸까? 독서는 무지의 확장이라고 했던가. 미지의 영역을 조우할 수록 내가 모르고 결정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지는 아이러니가 이번에도 발생해버렸다.


금융은 재능과 자원의 불균형을 해소 함으로써 무덤으로 가야만 했던 인류의 수많은 잠재 재능을 실현합니다.


자본주의의 힘은 부와 재화를 가진 사람이 재능있는 사람에게 투자해 사장되는 인류의 가치를 극대화 시키는데 있다고 한다. 자본주의를 통해 이 세상이 윤택해지고 발전해왔으며 사람들의 질병관리 수준과 삶의 질이 높아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회성을 가진 동물이기에 조선시대보다 윤택해진 삶에 만족하기 보다 재벌집 자제에 비해 열악한 흙수저의 삶을 부정하고 비교하고 시기하는 것이 더 큰 이슈가 된다. 철저한 약육강식의 논리와 부익부빈익빈을 향해 치닫는 양극화의 시대에서 나는 출항하는 부의 크루즈에 꼬리칸이라도 승선하는 것이 나은 것인가. 이 시대의 이념과 패러다임에 저항해 돛단배를 띄우는 것이 맞는 것일까?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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