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시몬 비젠탈

by 부지러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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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와 용서 사이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극악무도함이 절정에 다다르던 순간

유대인 수용소에서 강제노역을 하며 총살 당할 날만을 기다리던 시몬은

우연히 죽어가던 나치 장교의 진심어린 참회와 고해를 듣게 되고

그를 용서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그를 용서하지 않았던 순간을 생각하며

끝나지 않을 고민에 빠지게 된다.


시몬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그 상황에서 당신은 어떻게 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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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의 이해


용서를 하고 말고 이전에 우선 그 상황에 대한 감정이입이 필요하다.

인간은 이성적이라고 하지만, 그 순간의 판단은 매우 충동적일 수 있기에


그에게 우리는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우리 각자는 단지 사망일이 적혀 있지 않은 자신의 사망 진단서를 짊어지고 있는 셈이었다.


유대인 수용소에서는 아무 이유 없이 하루에 수십명이 죽어나간다.

줄을 똑바로 안서서 몇 명을 본보기로 총살한다던가,

새로운 유대인이 수용되면서 침상이 부족하니 몇 명을 죽인다던가.

그냥 기분이 나빠서 몇 명 불러다 죽인다던가.

그냥 글자로는 표현안되는 두려움과 공포 속에 하루하루를 버텨내던

유령같은 존재였던 시몬에게는 삶의 희망이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던 순간에 찾아온

원수같은 나치 장교의 고해가 곱게 들렸을리 없다.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시몬이 보인 사려깊은 행동들 (나치 장교가 본인의 손을 계속 잡게 놔둔다든지,

파리를 쫓아준다든지, 손을 뿌리친 후에도 계속 이야기를 들어준다든지)은 커녕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병실 문을 박차고 나왔을지 모른다.

나치 장교 '카를'의 용서가 과연 참된 후회와 깊은 뉘우침을 동반한 것이었을까?

실명을 한 채로 죽어가고 있는 인간으로서 뒤늦은 후회와

죽기 직전의 용서를 구해 본인의 마음이 편해지고자 하는 인간의 이기심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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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자격


용서의 자격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유대인 동료들의 말처럼 시몬은 나치 장교 카를의 피해자가 아니었기에

그들을 학살한 극악무도한 전범을 용서 할 자격이 없는 것일까?

그럼 나치 장교는 누구에게 용서를 빌어야 하는 것일까?

책의 후반부에 시몬의 질문에 각계각층의 인사들 53명의 답변들이 수록되어 있다.

용서는 하느님께, 신께 빌라는 종교인들도 있고 죽은 피해자들에게 마음속으로 고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용서를 구하기 전에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누구를 위한 용서인가?

죽어가는 카를은 본인의 죄책감을 씻기 위해 용서를 구하고 있는가?

아니면 본인이 학살한 죽은 영혼들의 한을 위로하기 위해 용서를 구하고 있는가?


그 상황에서 시몬은 용서 대신 침묵으로 일관함으로써 용서의 자격이 없음을 표명하는 것이 옳은가?

수용소로 돌아와 몇날 며칠간을 그 순간에 대해 꿈꾸고 후회하며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 것을 되새기게 될 자신을 알았다면 본인을 위해서라도 시몬은 용서를 해야했던 것일까?

만약 용서를 하고 왔다면, 죽어가는 나치 장교 대신 희생된 유대인들의 영혼이 시몬을 괴롭히지는 않았을까?


용서는 누구를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누군가가 자네에게 저지른 짓에 관한 한, 자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용서하고 잊어버려도 되지.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할 문제니까 말이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자네의 양심으로 무마하려는 것은 오히려 끔찍한 죄가 될 수 있을거야.
내 생각에는 용서라는 문제에 대해 위대한 종교들이 갖는 기본적인 생각에는 큰 차이가 없을 거라고 봐.
뭔가 차이가 있다면 이론에서가 아니라 실천에서겠지.
다만 한가지 분명한 건 자네는 오로지 자네가 당한 일에 대해서만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다는 거야.
물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그 SS대원은 누구에게 용서를 빌어야 할까? 그가 잘못을 저지른 대상들은 모두 죽었으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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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의 의도

난 처음에 나치와 유대인의 관계가 어찌보면 일제 식민지 시절 징용, 징병, 위안부에 차출된

조선인들과 일본인들 사이의 관계와 유사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SS대원이 되기로 결심한 10대의 카를은 본인이 하게 될 일에 대해 알고 있었을까?

유대인 학살 작전에 투입된 상황에서 학살당하는 유대인과 눈이 마주친 순간에

그는 과연 죄책감 없이 순수한 본인의 판단으로 사격을 한 것일까?

나치안에 속해 사회적 차별을 당하지 않기 위해 나치로 살 수 밖에 없던 것은 아니었을까?


일본인들을 용서 할 수 없는 우리에게

야만적 행위를 일삼은 그들 중에 나치 장교 카를처럼 그 시대 일본의 정서와 사회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조선인들을 학대하고 처형하고 유린할 수 밖에 없었고 이를 뉘우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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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용서의 방법


후반부 53인의 답변 중 참된 용서라고 공감이 되었던 두 구절이 있다.

진정한 참회는 나치 대원이 본인의 동료들에게 고해하고 유대인 학살을 만류하는 것이라는 구절.

또 시몬은 스스로는 카를을 용서할 자격이 없었기에, 시몬은 종전 이후로 나치를 끝까지 발본색원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구절. (시몬은 미국전쟁범죄조사위원회에서 활동했고 유대역사기록센터을 세우기도 함)


과연 카를은 자기 침대곁에 앉아있는 그 무기력하고 불쌍한 유대인 한 사람에게 잘못을 고백하는 대신,
자기 동료인 SS대원을 불러다 놓고 똑같은 이야기를 함으로써 많은 유대인의 목숨을, 하다못해 몇 명의
목숨이라도 구해 줄 수는 없었던 걸까?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그가 할 수 있는 진정한 참회가 아니었을까?
사실상 그 병원 침대 위에서 그토록 생생하게 묘사된 장면의 연장선에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몬은 나치 한 명 한 명을 철저하게 색출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임종에 직면 했을 때 참회와 고해를 하게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를을 용서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쉽사리 지워지지는 않는다.

피해자 혹은 유족들은 어쩌면 그 어떤 보상보다 사죄의 한마디가 더 절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오토바이 사고로 병원에 누워있을 때 불법유턴한 택시기사가 단 한통의 사죄의 문자조차

없었을 때를 상기한다면 더더욱 그 사람이 사과 한마디만 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그 사람이 용서를 구하건 안 구하건 사죄를 하건 안하건 그 시련을 통해 내 스스로가

어떤 깨달음과 삶의 변화를 줄 수 있었는지 돌이켜본다.

그게 어찌보면 용서를 구하지 않은 그를 나 스스로 용서하는 것이 결국 나를 위한 용서가 아니었는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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