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작은 정말로 미약하였다. 대기업을 다닌지 10년 만에 여러번의 커리어 전환을 통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되었다. 누가봐도 안정적인 대기업, 모난 사람없고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는 부드러운 조직문화, 넉넉한 처우와 보상, 세련되고 쾌적한 근무환경, 넓은 업무 Scope과 단순하고 빠른 의사결정 구조 안에서 나는 더할나위 없이 행복한 직장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내가 도대체 왜 이직을 하게 된 걸까?
공대를 전공한 나는 엔지니어로 회사에 입사해 1년이 살짝 넘게 회사 생활을 하면서 크게 깨달았다. 이생망?이라는 사실을. 30살이 다 되도록 스스로 진로를 정한 적이 없었기에 부모님의 기대와 희망에 따라 윤택한 삶을 살 확률이 높은 쪽으로 순간순간 결정하여 내 진로를 정했다. 그 결과 공장에서 작업복을 입고 제품을 생산하는 일을 하고 있었고, 이 일은 결코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1년 동안 몸소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그 때 부터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다.
허무한 감정이 말도 못하게 밀려들었다. 어려서부터 열심히 공부하고 나름 성실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서른이 다 되어가는 마당에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뭐 하나도 정할 수 없는 현실에 허탈했다. 그렇게 나는 굳은 결심을 하고 팀장님께 퇴사 이야기를 전했으나 반려 당하고 말았다. 내가 회사에서 그나마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이 '교육'부서였는데, 엔지니어로 입사한 회사에서 그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퇴사하고 재취업 하겠다는 말에, 팀장님은 교육부서로 이동시켜 줄테니 퇴사하지 말라고 설득하셨고, 나는 설득 당해버렸다. 하지만 빠른 설득과는 다르게 부서 이동을 하기 위해 연말까지 엔지니어 일을 해야했고 그렇게 1년 가까이 더 버틴 결과는 다름 아닌 '이동 불가' 판정이었다. 회사의 실적이 악화되어 Staff 조직에 추가적인 인력 소요가 없을 뿐더러 기존에 있는 사람들도 부서를 이동하는 상황에서 엔지니어로 입사한 2년차 주니어가 교육부서에 갈 수 있는 상황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렇게 이동이 좌절되면서 나는 퇴사 결심을 더욱 굳건히 하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 갑자기 찾아온 기회에 본사에서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서울로 이동할 수 있다는 달콤한 제안을 뿌리치지 못하고 다시 한 번 원하지 않았던 일을 하게 되었다.
회사의 사업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각종 법과 규제, 정책 등이 매우 중요한 데 이를 우호적 환경으로 조성하는 일, 즉 대관업무를 하게 되었다. 공무원, 외부 이해관계자, 동종업계 경쟁사, NGO 등을 다양하게 만나며 우리 회사의 사업활동이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돕고 이를 통해 회사의 성과를 높이는 일. 풀어서 설명해도 돌아오는 말은 '그래서 대체 뭐하는데?'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예전이야 공무원 만나서 술도 묵고! 사우나도 가고! 다 했어! 하면 될지 모르겠지만, 김영란 법이 생기고 사회적 분위기와 환경이 그런 것을 용납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다양한 자료와 논리를 통해 상대를 설득하는 일을 주로 하게 되었는데, 첨예한 이해관계로 대립각을 세우는 관계에서 이런 일들은 매우 고난이도의 일이었다. 더군다나 높은 분들의 입김 한 번에 여반장처럼 쉽게 바뀌는 기조를 따라가는 것도 너무 큰 스트레스였고, 직급이 낮았던 나로서는 혼자서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도 기회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더 일에 대한 의욕을 잃어갔고 그야말로 수동적인 업무 태도의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나는 파편적으로 대중없이 떨어지는 일들에 항상 납득이 가지 않은 상태로 최소한의 에너지만 써서 일을 했었는데 근본적으로는 이 일을 왜 해야하고 이 일을 하면 나는 뭐가 좋은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만나게 된 선배와 함께 일하며 조금씩 빛을 보게 되었다. 그 선배는 일을 할 때 이 일이 생기게 된 배경과 이 일을 지시한 상급자가 원하는 바를 자세히 설명해 줬다. 더불어 이 일을 처리하는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그 안에서 나와 선배의 역할을 나눠서 일을 진행시켰다. 또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 일의 최종 결과물에 대해 미리 예상하는 바를 공유하고 그 결과를 달성했을 때 내가 어떤 역량을 갖게 될 수 있는지까지 설명해주는 사람이었다. 이에 더해서 본인의 일 뿐만 아니라 내가 해야할 일도 본인이 미리 해놓고 내 결과물과 본인의 결과물을 비교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를 통해 나는 선배의 역량을 조금씩 흡수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내가 일해야 하는 이유와 이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람과 함께 일하는 데 어찌 일을 열심히 안 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이전까지는 가질 수 없었던 마음가짐으로 내가 가진 에너지와 역량을 다해 일을 했고 점점 일을 통한 성취감을 느끼게 되었다. 주변에서도 달라진 나를 느꼈는지 격려와 칭찬을 해주셨고, 그렇게 점점 일을 곧잘 해내는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런 이미지가 만들어지니 점점 중요한 일에도 합류할 수 있게 되었고, 또 중요한 일을 하다 보니 큰 성과를 올리고 recognition을 받게 되었다. 사장님 포상이나, 장관 표창 등을 받게 되면서 내가 불과 1~2년 사이에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스스로 놀라게 되었다.
또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그토록 원하던 일에 점점 가까워져 갔다. 우연치 않은 기회로 사내에서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게 되었고, 내가 실천하고 있는 미라클모닝 프로젝트를 설명하면서 많은 분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달할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나는 사내에서 부지런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 요즘 말로 '갓생'을 사는 사람으로 브랜딩 되었고, 이것 때문이었는지 기업문화를 담당하는 부서로 이동하게 되었다. 생소한 일이었지만 평소에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관계를 맺으며 선한 영향을 주고 받는 일에 관심이 있던 나로서는 좋은 기회라고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조직문화 부서에서는 그동안 하지 않았던 새로운 일들을 통해 구성원들이 회사생활을 행복하게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이벤트와 제도를 만들고 적용하는 일들을 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동료들과 함께 고민하고 공부했던 것들이 나의 회사 생활과 커리어에 더 큰 도움이 되었다. 회사를 다니며 일을 하는데도 즐겁고 신날 수 있다는 경험이 가능한 것이었구나 확인했고, 어떻게 하면 신나게 일하고 행복하게 회사를 다닐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잊고 있었던 입사 초반의 기억이 흐릿해졌을 즈음에서야 나는 드디어 교육부서에 이동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10년차가 되어서야 꿈을 이룰 수 있었다.
드디어 꿈을 이룬걸까?
월급을 받고 일하는 회사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꿈같은 일이 아닐까? 그런 생각에 매우 설레기도 하고 의욕이 뿜뿜 솟아났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치열하게 주어진 일들을 해냈던 것 같다. 또 계열사에서 중간 지주회사로 이동했다가 결국 그룹조직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주어지는 권한과 예산이 늘어났다. 또한 함께 일하는 동료가 적었기에 대부분의 일들을 내가 직접 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담당 영역을 정해서 나눠했을 일을 혼자 하다 보니 처음에는 버겁고 힘들었지만, 익숙해지고 나니 높은 생산성과 효율로 한꺼번에 많은 일을 잘 처리하는 능력도 생기게 되었다. 이를 통해 동일한 기간을 일해도 압축적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대기업의 가장 큰 단점인 차곡차곡 쌓여있는 의사결정 구조가 내가 일하는 조직에선 매우 단순했고, 보고를 하는 일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래서 보고서를 만드는 시간 보다는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일을 기획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것들을 많이 접하고 들을 시간이 늘어났고, 점점 더 일하는 게 즐거워져갔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회사 생활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내 스스로 많은 권한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 가능했던 건 좋은 리더와 동료들을 만나 내가 하고 싶은 분야의 일을 했었기에 가능했던 건데, 대기업에서는 매년 리더가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이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동료의 이동을 막을 수도 없어서 언제든 지금처럼 행복하게 일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리고 만의 하나 몇년 더 이렇게 즐겁게 일한다 하더라도, 5년 뒤에는 팀장 후보에 들게 되고 직책자가 되는 순간 나는 자유로워지기 보다는 더 많은 것들에 종속되어 일할 것만 같았다. 이해되지 않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하는 경우도 많아질테고, 나의 자리와 안위를 위해 많은 분들의 눈치와 심기를 잘 살피며 더욱 종속되는 삶을 살 것이 자명했다. 2~3년은 그래도 어찌저찌 행복한 회사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 되면 나는 더 선택지가 줄어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평생 누군가에게 종속된 삶으로 인생의 반을 채우고 싶진 않았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무렵 업무 상의 이유로 자주 만나게 된 스타트업 씬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 성장의 중심에서 역동적으로 일하는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안하고 보장되지 않는 삶이겠지만, 더 많은 성장가능성에 배팅하고 모험을 하는 사람들. 아내와 아이를 둔 30대 후반의 가장으로서 두려움이 없진 않았지만 하루를 일하더라도 주도적으로 일하고 싶었던 나는 점점 더 마음이 쏠리게 되었다. 그렇게 스타트업 회사들에 관심이 가게 되었고 일단 레쥬메라도 업데이트 해보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고 내가 당장 시장에서 원하는 사람인지, 내가 가진 경력이 적절한 가치 평가를 받고 있는지 궁금했다. 물론 그냥 레쥬메 업데이트만 하고 지원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고, 지원을 하고도 이직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냥 일단 한 번 해보기라도 하자라는 마음이 컸다. 해보지 않고는 판단 할 수 없으니 기꺼이 빠르게 실행할 만한 이유는 충분했다. 결국엔 스타트업이 내가 찾는 답이 아니더라도 불편한 곳에 몸을 던져야 몸을 일으켜 세우듯 자칫 10년 커리어에 취해 더 이상의 성장을 마다하고 슬로우 데쓰하려는 안주감이 들기 전에 뭐든 해보자는 마음으로, 그렇게 나는 약간의 호기심과 불안감을 안고 이직 기차에 덜컥 타 버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