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입사한 뒤 대부분 3년 안에 본인의 갈 길을 정하게 되는 것 같다. 계속 이 회사를 다닐지 또는 계속 이런 생활을 이어갈지 또는 계속 이런 업무를 해야 할 지에 대해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 같다. 그러고 나서 대기업 4년 차부터는 퇴사율 또는 이직률이 현저하게 낮아진다. (신입으로) 다시 도전하기에는 그동안 쌓아 온 경력이 점점 아까워지고, 원래 다니던 회사와 사람들은 점점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점점 오르는 연봉과 연초면 받게 되는 성과급에 또 몇 달은 버틸 만 해진다. 이런 식으로 몇 해가 지나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그렇게 가족 구성원이 추가될수록 이직 또는 퇴사의 길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고 만다.
30대 후반의 나이로 아내와 4살짜리 귀여운 딸이 있는 내가 그 좋다는 대기업을 10년 근속하며 금배지를 받았음에도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대체 무슨 연유로,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해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사실 개인적인 성향을 따지고 보면 나는 입사 초기에 퇴사할 만한 사람으로 분류되기는 했었다. 100명의 동기들 중에 개성이 강하고 본인의 주관이 뚜렷하며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열정적인 부류의 사람들은 대기업의 틀과 위계를 중시하고 연공서열을 따지는 문화에 쉽사리 적응하기 힘들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추측을 하는 게 당연했고 나도 그런 부류의 속하는 사람 중 하나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까지 오래 다니고 보니 나는 누구에게나 둥글둥글하고 서글서글하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성격적인 특장점과 인간관계에 대한 호기심을 통해 드넓은 네트워킹을 구축하고 업무마저도 점점 연차가 쌓이며 익숙해져 가면서 근속기간이 길어졌다. 그런 내가 도대체 어떤 이유로 단순한 이직도 아닌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이라는 큰 변화를 결정하게 된 걸까?
나는 사실 게으름뱅이다. 끝도 없이 늘어지는 것을 좋아하고 그 누구보다도 놀기를 좋아하며 나태할 대로 나태한 삶을 그 누구보다 만끽할 만한 성향의 사람이다. 그래서 오히려 어려서부터 적당히 게으른 사람에 비해서 훨씬 더 게으름에 대해 경계하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내가 한 번 게을러지면 끝도 없는 나락으로 갈 것을 알기에 게으름에 대한 신호나 기미가 조금만 보이면 과민반응을 보일 정도로 나를 몰아붙이게 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마치 엄청 부지런한 사람인 마냥 보이게 되었고,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는 관종기가 더해져 나는 결국 부지런하고 열정적이며 열심히 사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어느새 그런 사람이 되고 나서 보니 인생을 그 누구보다 몰입해서 사는 사람이 되었고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근로시간에 대해서도 고민이 늘어만 갔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나의 일로써 찾으려고 했고 일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누군가 시키는 대로 정해진 기한 내에 하는 일 보다 내 스스로 만들고 발의해서 조직을 꾸리고 성과를 만드는 주도적 방식을 적용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나는 점점 누가 봐도 회사에 애정이 넘치고 야무지게 일하면서 시키지 않은 일까지 미리 고민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조금만 방심하면 빠지고 만다
그러나, 보이는 것과는 달리 나는 점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남들은 고민하지도 않는 5년 뒤, 10년 뒤의 내 모습을 미리 고민하고 있었고 내가 나아가는 방향이 맞는지 끊임없이 현 위치 버튼을 눌러도 보고 줌아웃을 하면서 앞 길을 내다보았다. 우상향 직선을 타고 누구보다 안정적인 궤도로 상승하고 있는데도 불안해져만 갔다. 10년 뒤에 팀장이 되고, 운이 좋아 임원이 된다 한들 지금의 선배들처럼 자리와 사람에 따라 본인의 주관을 바꾸며 사는 삶이 행복할까?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는 누군가 시킨 일에 목매면서도 그들이 선사하는 달콤한 단기적 보상에 취해 결국 그 직선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면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를 원망하지 않을까? 사실 내가 고민하는 것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할 때 바라는 것 내지는 이루고 싶은 것이기에 나처럼 생각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안정적이면서 보장된 삶을 남들은 살고 싶어 안달인데 오히려 그것 때문에 고민이 된다니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사실 주도적으로 인생을 산 지 얼마 안 된 사람이기에 주도적으로 인생을 살면서 내 인생이 얼마나 달라지게 되었는지를 몸소 느낀 최근 몇 년이 그전 30년과 비교해서 너무 드라마틱하게 달랐던 것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과거의 내가 하지 못했던 결정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앞으로의 인생은 후회가 남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 과감한 도전을 결정하기 위한 자료조사와 냉철한 판단력, 그리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빠른 실행력을 갖춘 사람이 되고 싶었다. 우상향 직선에서 '우상향'에 포커스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직선'에 대해 갑갑함을 느낀 나는 직선을 2차 함수, 3차 함수 더 나아가 Exponential Function으로 만들고 싶었다. 삶의 궤적을 바꾸기 위해 과감한 도전은 거부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두려웠다. 특목고, 명문대, 대기업으로 이어진 20년 인생동안 나는 울타리를 벗어나 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어찌 보면 울타리 밖 세상에 대해 두려움이 커져 더 이상 울타리 밖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가 실패하면 어떡하지?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고 아내와 아이는 어떻게 먹여 살리지? 실패 후 잉여인간처럼 살게 되면 어떡하지? 막연한 두려움이 앞선 게 사실이다. 하지만 차분히 생각해 보면 나의 하방지지선은 그렇게 낮은 곳에 있지 않았다. 내가 하는 도전의 결과를 최악의 경우로 가정해 본다면 이직 후 몇 년 안에 회사가 망하거나 내가 회사에서 해고당하는 경우였는데 그렇게 된다면 나는 다시 다른 스타트업에 이직하거나 또는 스타트업이 맞는 길이 아니라고 느끼면 다시 대기업으로 이직하면 그만이었다. 2~3년 뒤에 나는 경력 13~14년 차의 과장 말년차의 나이로 회사에서 가장 퍼포먼스가 좋고 데려가고 싶은 시기에 속할 수 있기에 내가 생각할 때 가장 큰 실패를 겪는다 하더라도 다시 대기업 직장인이 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하방지지선을 견고하게 다지고 보니 도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물론 처우가 조금 떨어지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나 일하는 방식 또는 환경이 조금 열위에 있을 수는 있지만 이를 통해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는 더욱 많아지고 개인적으로는 더 많은 커리어를 쌓을 수 있다. 게다가 확률이 낮긴 하지만 충분한 Upside Potential을 기대하고 회사의 성장에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을 만한 스톡옵션도 부여받을 수 있다. 아무리 열심히 일 해도 외부 시장환경에 따라 성과급을 받았던 지난날에 비해 내가 이룬 성과가 회사의 성장으로 이어져 외부 시장의 평가를 받고 기업가치가 오른다면 이것이야 말로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자 회사와 나의 성장을 Align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제 나의 도전에 큰 영향을 준 사람과 저녁을 먹으며 근황을 업데이트하고 서로의 도전에 영감과 아이디어를 나누며 4시간 넘는 시간을 순삭하고 난 뒤에 나는 또다시 느꼈다. 난 그냥 이렇게 살 사람이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도전하고 실패하며 성장하는 운명을 타고 난 사람. 어쩌면 게으르단 핑계로 대외적으로 부지런해질 명분을 쌓되 사실은 태생이 부지런하고 열정적인 사람. 사람은 안 바뀐다고 했는데, 나는 변한 사람이 아니라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난 오늘 출근 3주 차의 스타트업에서 오감을 자극하며 새롭게 벌어지는 다이내믹한 일들에 신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