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의 정상화

휴가제도 개편

by 부지러너

'다르다고 틀린 것은 아니다'라는 말은 귀에 박히도록 들었지만

정작 내가 이 말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었나 싶게 만드는 일이 있었다.




이직한 지 한 달 남짓,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있던 찰나에

구성원 중 한 명의 이슈를 듣게 되었다.

지금 굉장히 바쁜 시기라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부서였는데

당장 다음 달까지 써야 하는 휴가가 5개라

어쩔 수 없이 휴가를 쓰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고

부서장 역시 울며 겨자 먹기로 휴가를 보내줘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갔던 것이

왜 3월에 휴가 소진을 걱정하고 있지? 하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우리 회사의 휴가 관리와 운영현황에 대해 뜯어보게 되었는데,

내가 다녔던 대기업은 소위 공채라는 시스템이 연말에 가동되어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1월 2일을 기준으로 입사하는 시스템이었고

따라서 당연하게도 휴가관리 기간은 회계연도와 일치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모든 구성원의 입사일이 다른 우리 회사는

모든 구성원의 휴가 기산일이 다르기에 각자의 입사일을 기준으로

법정 휴가가 부여되는 구조였다.

사람이 1~20명이 될 때 까지야 문제가 없었지만

60명이 넘어가는 지금으로서는 위와 같은 구성원의 케이스가

매달 발생하는 문제로 다가왔다.




구성원과 리더 모두 휴가관리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전사적으로 휴가를 회계연도 기준으로 통일하고

이 과정에서 구성원들에게는 휴가를 더 주면 주었지, 불이익이 가지 않게 제도를 설계했고

대표님의 재가를 받아 휴가제도 개편 준비를 마쳤다.

자세한 공지글과 함께 자체 설명영상도 찍고 편집하여 공지를 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많은 구성원들의 문의가 폭주하였다.


크게는 3가지의 케이스였는데,

그동안 쓴 휴가가 매우 적은 사람들은 본인이 쓰지 못한 휴가에 대한 이월을 요구했고

휴가를 많이 썼던 구성원들은 초과 소진연차에 대한 차감에 대한 항의를 표했고

마지막 한 케이스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경우였다.


앞의 두 케이스는 당연히 법적 기준을 적용하여

이월휴가와 추가소진 휴가를 적용함으로써 구성원 설득이 가능했지만,

마지막 케이스는 처음에 몇 번 듣고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예를 들면, 올해 7월에 1년 만근이 되는 A구성원은 만근이 되어야만 받을 수 있었던

15일 치의 연차를 6개월 앞서 올해 1월 기준으로 받게 되었는데 이것이 본인에게 손해라는 주장이었다.

더 많은 휴가를 당겨서 주는데도 불만이 나오는 것에 대해,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아 차분히 설명했으나 구성원의 주장은 완고했다.

계속적으로 되풀이하는 말이 본인은 올 7월에 15개의 휴가가 생기는데

이를 회계연도 기준으로 1월에 부여하는 것으로 하게 되면

당장 올 7월에 생기는 휴가 15개를 온전히 보상받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처음 듣고는 이해가 안 돼서 휴가의 양을 비교하려면 동기간의 휴가량을 비교해야 하는데,

왜 자꾸 원래 제도로 적용했을 때 내년 7월까지 써야 하는 휴가를

올해 연말까지 써야 하는 휴가와 비교하는지 되물었다.

그제야 A 구성원은 올 8월에 퇴사를 한다는 가정을 하면

본인이 보상받을 수 있는 휴가가 개편된 제도로는 줄어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제야 나는 퇴직 시 연차보상은 법정 근로일 기준으로 다시 산정하여
모두 보상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구성원을 안심시킬 수 있었다.


그러자 구성원은 안내 시에 이런 부분까지 포함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고,

나는 전사 안내를 할 때 퇴직을 가정하고 안내하긴 힘들다고 받아치며 오히려 되물었다.

혹시 퇴사를 고려 중이냐고.

그러자 구성원은 당황하여 아니라고 얼버무렸지만

나는 퇴사이벤트를 생각하지 않고서는 이와 같은 의문이 생길 수 없다며

혹시나 회사 다니는 데 어려움이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하라고,

무엇이든 들어주고 도와주겠다는 말로 구성원을 돌려보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을 겪고 난 뒤에 든 생각이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들

회사를 당연히 근속할 거라는 믿음들이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

전 구성원의 생각이 모두 다를 수 있기에

많은 것들을 고려해야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한 명의 아웃라이어의 케이스일 뻔한 세 번째 케이스는

다음 날 다른 구성원에게서도 똑같은 질문을 받음으로써

예외적이라기 보단 있을 수 있는 일이 되었고

이 구성원 역시 퇴사를 고려하는 것이 느껴져

조직의 변화와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리라는 약속을 건네며

근로의욕을 조금 불어넣어 주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사실 어떻게 보면 나는 아직도 나를 내려놓지 못하고

내가 한 경험이 진리인 양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겪어온 환경과 경험이 다른데 어떻게 사람이 모두 나와 같이 생각한다고 믿고 있었는지

참으로 어리석다는 생각을 하면서,

모든 일에 모두를 만족시키겠다는 욕심을 내려놓고

오히려 모두에게 1대 1 문의가 들어오더라도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그런 동료가 되어 보겠다고 소리 죽여 외쳐보았다.


잘 들어주는 동료가 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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