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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써니 Dec 30. 2021

what is this feeling?

뭐라고 할까 이 낯선 느낌

  살면서 처음 본 뮤지컬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라이언킹”이라고 대답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가장 처음 압도당했던 공연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는 자신 있게 “라이언킹”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날 이후 며칠간 느꼈던 느낌과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초등학교 3학년밖에 되지 않던 어린 나이,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서 며칠간 나는 뮤지컬 배우를 꿈꾸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무대에서 어린 심바를 연기하는 소년을 꿈꾸었다. 그토록 순수하게 무엇인가를 강렬하게 열망했던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오죽하면 직접 어설프게나마 인터넷을 뒤져가며 오디션 정보를 찾고 그걸 부모님에게 들이밀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때의 나는 이미 어린 심바가 되기에는 나이가 많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무언가를 꿈꾸기에 한없이 더 어린 나이임에도 나이가 조금 더 많다는 이유로 시도조차 할 수 없었고 또 하지 않았다.


  그 뒤로도 여러 뮤지컬을 보았다. 아니 아마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라이언킹” 만큼이나 강하게 뇌리에 남아있는 공연은 영국에서 보았던 “위키드”일 것이다. 너무도 노래가 충격적으로 좋아서, 노래를 부르는 배우들이 너무도 실력이 완벽해서, 무대장치와 조명 그리고 의상, 그 모든 것들이 화려해서 영국 웨스트엔드의 극장에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행복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내 모습이 기억이 난다. 이후 “위키드”는 정말 내가 원하고 또 좋아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보게 되는 공연이 되었다.


  이번 뉴욕 여행에서, 그러니까 브로드웨이에서 주저 없이 “위키드”를 보기로 결심한 이유 역시 바로 그렇다. 누군가는 계속 같은 내용의 공연을 보면 질리지 않냐며 이상해 하곤 했지만 그동안 본 7번의 공연 모두 그 이전과 달랐다. 단순히 배우, 언어가 다른 것뿐만이 아니라 그날그날의 분위기, 배우들의 애드리브, 어쩌면 처음 보면 눈치채지 못할 미세한 차이들이 있었고 그것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분명히 있었다.

  

  솔직한 심정을 밝히자면 “위키드”가 탄생한 이곳 브로드웨이에서 보게 된 나의 8번째 “위키드”는 공연 내내 조금씩 실망감을 적립시켜 나갔다. 무대장치에서 조금의 차이가 보이기는 했지만 한국 배우분들의 뛰어난 노래 실력에 비하면 브로드웨이 배우분들이 조금 부족한 듯했다. 전반적으로 애드리브이나 연기력도 조금씩은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물론 늘 느끼는 감동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피날레에 글린다와 엘파바가 서로를 그리는 모습이 여전히 눈물이 고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로드웨이에서의 “위키드”는 특별했다. 분명 뉴욕에는 볼 것도 할 것도 먹을 것도 즐길 것이 셀 수 없이 많다. 무엇을 하는지는 이곳을 방문하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러나 만약 누군가 나에게 뉴욕에서 단 한 가지만 하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브로드웨이의 공연을 선택할 것이다. 설령 공연 그 자체의 만족도가 평소 보아온 공연보다 조금은 부족할지라도 브로드웨이만이 가져오는 마법을 내가 느끼고 말았으니까 말이다.


  공연이 끝을 나고 마담 모리블을 맡은 배우가 말을 시작했다. 한국이나 영국에서 보았던 그 어떤 공연에서도 커튼콜에서 배우가 말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상당히 놀랄만한 일이었다. 그녀는 불확실성이 가득한 오늘날의 세상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브로드웨이에 가져온 영향도 말이다. 그리고 공연을 구성하는 모두에 대해 큰 감사를 표현했다. 그녀의 말을 통해 우리는 엘파바를 맡은 배우가 공연 4시간 전에 출연 통보를 받았으며, 글린다는 5시간 전에 통보받았음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글린다를 맡은 배우는 오늘 공연에서 처음으로 글린다를 공연한 것이었다.


  그녀가 오늘 공연을 구성한 개인 개인의 소중함과 필요성을 말했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좇아 브로드웨이로 향하는지, 또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공연이 끝나고 진행하는 에이즈 환자를 위한 모금행사를 홍보하며 자신 역시 지난 30년간 HIV를 앓아왔고 여전히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고백하는 대목은 과연 브로드웨이 아니면 내가 경험하지 못했을 대목이었다. 예술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와 소외받는 이웃을 대하는 자세, 과연 문화의 수도에서 일하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극장을 빠져나와 걷는 뉴욕의 밤거리는 여전히 시끄러운 경적 소리와 눈부신 전광판의 불빛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그 수많은 인파, 교통체증, 소음, 어디선가 올라오는 냄새 그 모든 것들 속에 담겨있는 누군가의 치열함이 느껴졌다. 자신의 꿈을 좇아 잠들지 않는 도시로 온 이들의 순수한 열정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뉴욕에 처음 도착하고 설렘을 품고 많은 곳을 찾았지만 사실 질리기도 했다. 너무도 많은 사람과 더러운 거리, 지하철 그리고 시끄러운 도시의 소음까지. 사실상 낭만을 느끼기에는 뉴욕이 가진 이미지가 내가 느끼는 현실과는 너무나 달랐다. 그러나 막이 내리고 커튼콜에서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의 표정과 관객들의 호응 그리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진심이 담긴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는 배우 한 사람의 말까지, 마치 이 공연 속 두 마녀가 나에게 마법을 건 것처럼 새로운 감정과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지만 무엇보다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추억이 고개를 들었다.


  어쩌면 초록마녀와 착한 마녀의 마법이, 어쩌면 브로드웨이라는 공간이, 아니 정확히는 그녀들의 마법과 브로드웨이가 불러일으킨 내가 가보기를 진작에 포기한 길을 묵묵히 가고 있는 누군가의 존재에 대한 자각이, “라이언킹 고개를 들었던 순수한 열망을 깨운 것만 같다. 그동안 잠시나마 잊어버렸던 무엇인가를 그토록 순수하게 열망했던  순간의 짜릿함,  짜릿함이 다시금 느껴진다.  현실을 마주하면 겁에 질려 도망치던 지난날, 언제나 시작도 하지 않고 바쁘다는 핑계로 도망쳤고 겨우 용기를  순간에도 무서움에 결국에는 도망쳤다. 그런 도망침을 이제는 끝내야 하지 않을까? 심장이 두근거리고 순수하게 열망하는 무엇인가가 아직 나에게 있다면  반짝임을 찾아보자, 따라가자. 이제는 나이가 많다는 것처럼 진부한 핑계를 대며 도망갈게 아니라 무작정 뛰어들어 보아야  순간임을 알았기에. 적어도 어린 심바를 꿈꾸던 철없지만 반짝이는 열망의 존재를 마법처럼 다시 확인했으니까.


2021.12.25, 크리스마스 뉴욕 한복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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