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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wayslilac Nov 16. 2020

직장인의 금요일 점심

    금요일 점심은 주말 낮의 한가로움을 닮았다. 모든 일들이 천천히 여유롭게 지나가며 사람들의 기운도 평일보다 맑은 주홍빛을 띤다. 직장인에게는 특별한 계획이 있지 않아도 주말이 다가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참을 인자를 한 번 더 그릴 수 있는 힘을 준다.

    가끔은 다 같이 먹는 점심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을 때가 있다. 업무의 소란함에서 잠시 벗어나서 본래의 내 모습을 찾고 예민해진 마음의 거스름을 잠재울 시간이 필요하다. 사실 나는 종종 점심시간을 혼자 보낸다. 사무실 자리에서 책을 읽으면서 간단하게 김밥이나 빵을 먹으면서 조용히 보내기도 하고 전날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번갈아 가며 모자란 하루의 행복을 충당하던 나 자신을 후회하며 짧은 낮잠을 즐기기도 한다. 아직도 혼자 먹겠다고 하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혼자?’라고 되묻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 순간만 넘기면 자유의 한 시간이 찾아온다.

    마침 단체로 점심을 먹자는 데 한주에 사용할 에너지를 이미 목요일 오후를 보내며 다 써버린 관계로 이번 주 금요일 점심은 혼자 보내기로 했다. 오전 11시부터 뭘 먹을지 고민하며 설레는 시간을 보냈다. 여럿이서 먹을 때 먹고 싶은 메뉴가 있는 만큼 혼자일 때 먹고 싶은 메뉴도 있는 법이다. 한 그릇 메뉴일 것,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메뉴일 것, 곁들여 먹을 사이드 메뉴가 있을 것. 이 세 가지를 충족한다면 그곳이 오늘의 점심 장소다. 날씨도 쌀쌀하겠다 가장 좋아하는 메뉴인 쌀국수를 먹기로 했다. 쌀국수가 대중화되면서 회사 근처에 쌀국수 집이 몇 개나 있지만, 가까울수록 회사 사람들을 만나기 쉽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걸어가기에 살짝 거리가 있되 손님들끼리 마주 보고 앉아 어색한 시선처리를 하면서 먹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곳이 제격이다.

    걸음을 재촉한 덕에 기다리지 않고 가게에 들어갔다. 이 쌀국수 집은 디귿자로 된 바 형식의 자리 배치와 키오스크를 통한 주문 방식으로 말하거나 눈치 볼 필요 없이 요리를 먹을 수 있어 혼밥족에게 최적화되어있다. 실제로 가게의 운영 방침도 ‘조용히 음식에 집중해서 드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세요’이다.

    차돌 쌀국수와 곁들여 먹을 사이드 메뉴로 윙 2조각을 주문했다. 혼밥을 할 땐 음식을 다양하게 맛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는데, 이렇게 사이드 메뉴를 소량으로 파는 곳을 찾아가면 간단히 해결된다. 넷플릭스를 보면서 먹으려고 했는데 분위기 탓인지 음식에 집중하고 싶어 졌다. 에어팟을 빼 주머니에 고이 넣고 해선장 소스를 종지에 담으며 마음가짐을 경건히 했다. 쌀국수는 이런 마음가짐으로 영접해야 한다. 국물을 한 숟갈 떠먹는 순간 ‘아, 금요일 맞네’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차돌에 해선장을 찍어 한입, 숙주와 한입, 양파 절임과 한입, 또 국물 한 숟갈. 젓가락과 숟가락을 규칙적으로 움직여 입이 쉬지 않게 하면서도 맛이 지루하지 않게 변주를 해줘야 한다.

대화나 다른 방해 요소 없이 쌀국수 그릇만 보며 먹으니 20분도 안되어서 한 그릇을 완벽히 비웠다. 아쉬운 마음에 혹시나 놓친 고기 한 점, 숙주 한줄기가 있을까 젓가락으로 휘휘 뒤적였다. 몇 초 전의 내가 이미 남은 숙주 한줄기를 찾아 먹은 후였다. 허한 마음에 보리차를 한잔 더 마시고 가게를 나왔다.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해장을 한 듯한 개운한 마음이 들었다. ‘아, 잘 먹었다.’

    완벽한 점심의 마무리는? 커피다. 대다수의 식당에 커피 자판기가 있는 건 밥 먹고 믹스커피를 먹어야만 하는 부모님 세대의 영향이다. 그러므로 밥 먹고 후식으로 커피를 먹는 건 부모님께 물려받은 유전자에 들어있다. 나 자신을 돌보기 위한 작은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성과는 없이 스스로에게 보상만 주고 있다는 사실은 가뿐히 무시해버리면 그만이다. 바쁘게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여유롭게 커피 한 모금과 넷플릭스를 틀었다. 왜 하이틴 물은 질리지 않는지. 썸 타는 애들을 보면서 왜 내 광대가 올라가는지 모르겠다. 몰입해서 보다 보니 벌써 1시다. 남은 아메리카노를 일회용 용기에 담아 다시 회사로 무겁게 발을 옮긴다. 내 다리가 자의로 움직이는 건지 회사가 내 다리에 묶어 둔 끈을 당기는 건지 모르겠다.

    금빛 햇빛이 잘게 부서져 얼굴을 타고 흘러내린다. 아! 들어가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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