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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wayslilac Nov 29. 2020

가끔은 멍하니 하늘을 보자.

   배달어플을 켠다. 딱히 생각나는 메뉴가 있는 건 아니지만 식욕을 사로잡을만한 획기적인 메뉴가 있을지 모르니 스크롤을 내린다. 분야별로 게시되어있는 요리들을 찬찬히 살펴본다. 아는 맛이고 리뷰가 별로고 배달 소요시간이 길고 배달료가 비싸다. 배달을 받아 포장지를 뜯는 순간부터 다 먹은 후 쓰레기를 정리하는 모습까지 머릿속에 그려본다. 입맛이 떨어진다. 냉동실을 연다. 전자레인지에 3분만 돌리면 되는 도시락을 꺼낸다. 집에 있는 반찬이랑 먹으면 괜찮겠다. 비닐 한 귀퉁이를 살짝 열고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넣는다. 타이머를 맞추려는 순간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파리바게뜨가 있는데 거기서 베이글과 샐러드를 사 오면 근사한 베이글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전자레인지에 넣었던 차가운 도시락을 꺼낸다. 처음과 같은 상태로 비닐을 눌러놓고 냉동실에 넣는다. 핸드폰으로 레시피를 찾는다. 잠깐. 어차피 빵집을 갈 거면 만들어진 샌드위치를 사 먹으면 되지 않을까? 이것저것 따지다 보니 또 입맛이 떨어진다. 결국은 도시락을 먹기로 한다. 곁들여 먹을 장조림, 시금치나물, 멸치볶음, 오이무침을 한 접시에 모양내어 담아낸다. 고민의 시간이 무색하게 땡-하고 3분 만에 점심이 눈 앞에 놓인다.


    식비가 굳었으니 커피라도 사 먹자. 텀블러를 꺼내 들고 집 밖으로 나선다. 낮 공기가 새롭다.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걸으며 꿉꿉한 기운을 털어낸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며칠 만에 타인에게 입 밖으로 내뱉은 말. 커피를 한 모금 크게 머금고 카페를 나선다. 고개를 든다. 파랗다. 구름이 빠르게 흘러간다. 카페 앞에 있는 벤치에 등을 기대어 앉는다. 구름 끝부분이 흩어졌다 하나가 되고 틈 사이로 햇빛이 새어 나와 몸 전체에 내리쬔다. 구름이 내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지나가 버린 인연들, 몇 달간 나를 옭아매던 생각들, 마음과 달리 상냥하지 못했던 어제 어머니와의 대화가 구름 사이로 흩어진다. 하늘은 무심하게 그 모습을 바꿔가고 그 아래에 나는 그대로 앉아있다. 평화로운 낮 풍경에 잔뜩 힘주고 있는 건 나뿐이다.


    점심메뉴를 고르는데도 수십 가지의 경우의 수와 결과들을 따져봤다. 어떤 걸 먹든 땅을 칠 후회도, 쾌재를 부를 만족도 없을 건데 고민하느라 배만 더 굶주렸다. 고민은 투명한 물에 물감 한 방울을 떨어트리듯 전체를 물들인다. 처음엔 분명 맑은 빛이었는데 여러 색이 더해져 결국은 회갈색 탁빛을 띈다. 그 속에선 어떠한 명확한 결정도 내릴 수 없다. 물을 갈면 그만인데 계속해서 처음 빛을 되찾으려 다른 물감을 푼다. 지난 몇 달간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머릿속으로 계산만 해봤다. 회사생활에서 느끼는 답답함이 마음가짐만으로 해소가 될지, 그렇지 않다면 이직을 해야 할지, 이직하면 상황이 나아질지, 이직한 회사에서의 고민이 지금 고민보단 덜 할지, 나는 어떤 점에 가중치를 두는 사람일지 같은 선택을 어렵게 할 생각들을 계속해서 끌어왔다. 물은 점점 혼탁해졌고 나는 그 잿빛 물을 꼴깍꼴깍 마셨다. 선택을 해버리면 이후 일들을 어떻게든 처리 해나 갈 텐데, 첫 선택을 못 해 내내 물속에 잠겨있었다.


    그럴 땐 하늘을 보자. 방 안에서 뿜던 잿빛 기운을 바람에 흘러가게 내버려 두자. 생각하는 걸 멈추고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다 보면 정말로 중요한 것들만 남는다. 남은 것들을 하나로 이으면 어디서 시작하게 될지 보일 것이다. 하늘은 내일도 맑을 것이고 구름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태평하게 흘러간다. 그 아래에선 모든 것이 쉽게 느껴질 것이다. 조금 더 자주, 오랫동안 하늘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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