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정근 Oct 11. 2019

모카포트 찬양기

캡슐 커피와 이별하기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가장 많은 시간과 돈을 쓴 곳은 단연 카페였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주변에 괜찮은 카페를 물색해서 시간을 보냈다. 정말 많은 커피를 마셨고, 정말 다양한 카페를 돌아다녔다.

그런 우리였으니 결혼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했던 가전 중의 하나가 커피 머신이었다. 그동안 카페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으니 이제는 집에서 직접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카페에 가는 돈을 아끼고 싶었다.

고심 끝에 맛이 괜찮다고 하는 일리에서 나온 캡슐머신을 구매했고, 여러 달 동안 매일같이 잘 사용했다. 전원을 켜고 잠시 예열되길 기다린 다음에 캡슐을 넣고 버튼만 누르면 꽤 괜찮은 맛의 커피가 추출되었다. 에스프레소만큼은 안되지만, 그래도 캡슐 하나당 몇 백 원에 꽤 근사한 맛의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추출량이 적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쉽게 만들 수 있었다.




그러던 우리가 작년 이맘때 즈음에 캡슐 머신을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어느 순간부터 캡슐 하나 뽑을 때마다 나오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일리 캡슐은 캡슐 내부의 커피 찌꺼기를 분리해서 버리기도 불가능해서, 그냥 일반 쓰레기로 버리는 수밖에 없다. 고작 커피 잠깐 마시겠다고 매번 플라스틱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옳지 않다고 느껴졌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눈에 밟히기 시작하자 이건 더 이상 아니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캡슐머신을 중고로 팔고 나서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새로 구입한 커피머신이 바로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모카포트다. 제일 유명한 회사인 비알레띠에서 나온 뉴브리카 2컵짜리 모델을 샀다. 모카포트는 사용한 지 며칠 만에 내 마음에 쏙 들어버렸다. 모카포트는 이탈리아에서는 교도소의 죄수들까지도 한 개씩 가지고 있다고 할 정도로 커피를 즐기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고 또 사랑하는 물건으로 유명하다.

먼저 이 녀석은 내구성이 매우 좋다. 녹이 슬지만 않게 잘 관리하면 평생 쓸 수 있다. 두꺼운 알루미늄으로 되어 있어서 깨질 일이 없다. 캡슐 머신이나 에스프레소 머신은 전자제품이기 때문에 아무리 잘 관리하더라도 하나의 제품을 죽을 때까지 사용하기는 힘들 것이다. 반면 모카포트는 사용 시에 조금씩 마모되고 늘어나는 고무패킹만 교체해 주면 평생 커피를 내려 먹을 수 있다.

사용법도 무지 간단하다. 물통에 정해진 만큼의 물을 붓고, 위쪽의 작은 컵에 분쇄된 커피 원두를 채우고 추출되는 위쪽 컵에 거름망과 패킹과 무게추를 끼우고 아래의 물통과 체결하면 끝. 이걸 말로 하니까 긴데 익숙해지면 준비하는데 30초에서 1분 정도면 넉넉하다. 그리고 가스 불 위에 올려놓고 추출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추출 시간도 3분이면 충분하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가스불을 이용해서 비교적 적은 에너지로 커피가 추출된다는 점도 좋았다. 이런 장점 때문에 캠핑족들 중에서도 모카포트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더라.

원하는 원두를 마음대로 내려서 먹는 재미도 있다. 캡슐커피는 캡슐 회사에서 출시한 만들어진 맛만 먹을 수 있지만, 모카포트는 분쇄된 원두를 직접 넣어서 추출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다양한 맛의 원두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원두를 직접 로스팅하는 동네 카페를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버전의 원두와 블렌딩을 구매하여 마셔보는 게 즐겁다.

다만 세척할 때는 비누칠을 해서도 안되고 수세미를 사용해서도 안된다. 이건 장점이면서 단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만큼 세척이 빠르고 편한 대신에 뭔가 구석구석 커피 때가 끼는 것을 완전히 제거하기는 좀 어렵다. 물통과 거름망에 커피 얼룩 같은 것이 끼는데 이탈리아 사람들은 세월의 흔적이라고 생각하고 개의치 않고 쓰는 것 같다. 빡빡 닦게 되면 알루미늄 표면이 상하면서 아마 습기에 취약해지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캡슐머신도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물통과 추출되는 부분을 분리해서 부품들을 일일이 닦아줬기 때문에 그것과 비교해서 세척에 더 많은 노동이 들어간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추출된 커피에서는 모카포트 특유의 맛이 있다. 사람에 따라서 처음엔 생소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에스프레소보다 물 양도 조금 더 많은 편이고, 맛도 에스프레소와 다소 다르다. 나에겐 에스프레소와 더치커피 사이의 어딘가라고 느껴지는데, 사람에 따라서 커피맛에 민감하다면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물 양이 아주 많지는 않아서 바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드물게 모카포트를 못쓰게 되는 경우는 녹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사용 후에는 오래 두지 말고 잘 씻어서 물기를 털어 바싹 건조해줘야 한다. 흰색 얼룩 모양의 녹이 슬게 되면 몸에 좋지 않은 알루미늄이 같이 추출되기 때문에 더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습기를 조심해야 하는 이런 점은 조금 불편하다.


그렇지만 이런 사소한 단점들은 모카포트를 향한 나의 콩깍지를 벗겨내지 못했다. 나는 나의 모카포트를 사랑하게 되었다. 쓰레기를 훨씬 덜 배출하고, 에너지도 적게 사용하고, 동시에 불과 4만 원대에 평생도록 사용할 수 있으면서 원하는 맛난 커피를 마음껏 내려 먹을 수 있는 이런 기계를 대체 어디서 구하겠는가. 이건 축복이다. 이 녀석을 이제 일 년 남짓 사용했지만 애정을 듬뿍 담아 아껴주고 꼼꼼하게 관리해서 앞으로 수십 년은 더 사용하고 싶다. 다른 말이 더 필요없다. 내 인생, 커피는 모카포트로!





작가의 이전글 조커를 향한 분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