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탄 호아킨 피닉스의 수상소감을 봤다. 이번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모두에게 비건 메뉴가 제공되었고 그는 이에 대한 감사를 표하면서, 소감 말미에 '투표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 삶 속에서 변화하고 희생하며 책임져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투표를 통해 대리인을 뽑고 권력을 위임하는 과정만을 정치라고 여긴다면 정치에 대한 관심이 혐오로 변질되기 너무 쉽다. 나와 완전히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내가 바라는 세상을 그대로 이루어줄 사람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이도 나와 꼭 같을 수는 없기에 나의 염원을 정치인들에게 투영한다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것은 기대와 다를 것이다. 게다가 정치인도 나와 같이 불완전한 한 명의 인간이므로 그의 소견은 바뀌기도 하고 틀릴 수도 있으며 적당한 타협과 거짓말과 배신을 할 수도 있다. 시민들은 스스로의 생각을 기준으로 정치인을 평가하지만, 정치인들은 생각이 아닌 행동으로 인정받는 사람들이다. 스스로의 생각도 행동으로 실천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운데, 타인이 내 생각을 대신해서 그대로 실행해줄 거란 상상은 실현 불가능에 가깝다.
'이번 정권도 3년 차에 들어서니 어차피 다 똑같더라, 투표해봤자 소용없는 일이야'라는 이야기를 자주 본다. 반대로 '그분이 당선되셨으니 다 해주실 거야, 우리 XXX 하고 싶은 거 다 해'와 같이 좋아하는 정치인을 향한 맹목적인 사랑과 덕질에 매몰되어버린 말들도 있다. 양자 모두 정치에 대한 어긋난 허상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정치를 정치적 권력의 위임의 과정과 평가로만 한정하는 순간, 이상향을 향한 발걸음은 얼마 가지 않아 불가능의 한계에 부딪치고 정치가 가져야만 하는 구체성과 현실성을 잃어버린다. 국회의사당은 집단 간 욕망의 대리전이 벌어지는 전장으로 탈바꿈하고,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욕심을 투사하고 반영해줄 감정의 덩어리가 된다. 투표를 통한 권력 위임 행위는 현대의 간접민주주의 제도로부터 유래한 정치의 수단 중 일부분일 뿐이지, 이것이 정치의 본질은 아니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눈곱만큼이나마 가지기 시작하면서 정치는 다른 누구의 것이 아니라 나의 삶 그 자체라는 생각이 슬그머니 자리 잡았다. 정치의 진짜 힘은 내가 오늘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며 결정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저녁 식탁에는 어떤 음식들을 올릴 것인지, 출근해서는 직원들과 어떤 태도로 함께 일할 것인지, 쇼핑하면서 물건들을 어떠한 기준으로 구매할 것인지, 운전대를 잡고 스쿨존을 지나면서는 어린이들과 나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그들을 대할 것인지까지도 모두 정치의 영역이며 이런 사소한 성찰의 순간들로부터 세상을 바꾸는 힘이 솟아난다. 매 순간의 생각과 선택이 미래를 만든다. 변화는 멀리 있지 않고 변화를 갈망하는 내 숨결과 손짓, 애정이 담긴 눈길에 깃들어 있다.
나는 호모 사피엔스이자 삶에 최소한 필요한 정도 이상의 경제력을 가진 사람이고, 직원들을 여러 명 고용하고 있는 사업주기도하고, 신체적으로 사회 평균보다 더 많은 힘을 가진 남성이자 30대 후반의 청년층이고, 비장애인이면서 이성애자이고, 대한민국에서 무시받지 않을 한국 국적이기도 하다. 나는 곧 사회의 주류에 속해있다. 내가 해온 노력에 비해 운 좋게 손에 쥐게 된 권력들이 어떨 때는 소름 끼치게 무섭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엔 아무것도 모르고 말겠다는 일념과 욕망에 휩싸여 고개가 뻣뻣해지며 주변을 둘러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다. 언제나 가지지 못한 것은 잘 보이지만 가진 것은 인지하기 어렵고, 잘하고 있는 것은 내세우기 쉽지만 스스로의 흠결과 부족함을 바로보기란 훨씬 어려운 법이니까. 어렵다고 눈감으며 회피하면 타인의 고통에 안일해지기 쉽고, 상대적으로 이득을 보며 살면서도 차별받는 약자들에게 도리어 억울해하기도 쉽다. 안일함과 억울함, 무관심과 무감각은 돌아선 시선 뒤에서 상대의 가슴에 멍울을 남기고 서로를 갈라놓는다. 하니 삶의 접점들에 더 민감해져야 한다. 닿아있는 모든 것들에,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일말의 책임감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다짐한다. 그 어떤 사건도 내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일은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유하지 않는 것이 악이라는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다른 이에게 의무를 맡겨놓고 관망하고 기대하고 지적하는 일은 악행으로 가는 지름길이 된다. 힘겹게 천천히 돌아가며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자기혐오에 빠져 멈추더라도, 치열하게 생각하고 고민하고 그 결과를 삶으로 하나라도 더 직접 옮기는 일이 정치다. 문재인도, 황교안도, 심상정도, 옥중의 전직 대통령들도, 세상 그 누구도 이를 대신해줄 수 없다. 오직 나만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다. 누구나 스스로가 이미 정치인이며 정치적 행위를 숨쉬기와 같이 반복하고 있음을, 하찮아 보이는 일상에 태산 같은 무거움과 이슬 같은 소중함이 스며들어 있음을 호아킨 피닉스의 수상소감을 들으며 다시금 되새긴다. 삶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