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 잠이 오지 않아 오랜만에 고향 집 근처를 걸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20대까지 자란 고싱지만 타지 생활이 더 익숙해져 가다 보니 이제는 조금씩 낯설어지더군요. 가만히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니 언제부터 생긴 지 모를 집 근처 교회의 빨간 십자가가 홀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만큼 저녁에 십자가를 많이 볼 수 있는 나라도 드물 거라는 농담이 생각났지만, 문득 이 밤 혼자가 아닌 듯한 기분에 이렇게 한밤에 십자가가 불이 켜저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자지 못하고 새벽에 서성이는 것 또한 어느 시의 한 구절처럼 저를 넘어 '더 크고 높은 것'*의 뜻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했습니다. 하물며 신을 믿는 사람에게는 저 십자가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될까요.
기댈 수 있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봅니다. 내가 기대어도 그 사람이 받쳐줄 거라는 믿음. 신은 너무 멀리 있으니 살아 있는 동안 저는 사람에게 기대겠습니다. 빨간 십자가가 되어 서로의 밤을 비춰주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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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중
글, 사진 :: 임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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