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늘 밀어내려고 할 때마다 결국 밀려나는 건 나였다.
동해의 광활한 모습을 실제로 처음 보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갯벌이 없는 바다라니. 본관이 부안인 이의 아들인 내게 바다는 갈색과 검정, 그리고 파란색의 만남이었다. 그곳의 바다는 모래사장에서 시작해 긴 갯벌을 걸어야만 파도를 마주하는 곳. 물때가 심할 땐 바다는 벌에 바닷물만 흔적처럼 남긴 채 멀리 수평선을 향해 떠나 있었다. 그런 바다를 보고 자란 내게 손을 뻗으면 언제든 파도가 잡힐 듯 가까운 바다는 낯설다. 검정 갯벌은 온데간데없고 높은 파도만이 가득하던 바다. 깊은 수심으로 더 파랗게 보이는 물이 같은 색의 하늘과 함께 내 시야를 전부 파란색으로 뒤덮던 바다. 가끔은 서글퍼 보이기도 하는 서해와는 다른 그런 바다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바다를 보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이들의 마음을, 벅차오르는 소년의 꿈을 노래한 시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낙산사의 해수관음상 옆에 서서 그의 시선을 따라 바다를 바라본다. 섬 하나도 눈에 걸리지 않아 말 그대로 망망(茫茫)한 양양의 바다는 아주 멀리까지 뻗어 하늘을 만나 줄 하나를 긋고서야 겨우 멈춰 서 있다. 온통 파란 동해는 아쉬울 것도 아낄 것도 없이 자신이 가진 걸 얼마든지 나눠줄 듯하다. 그런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관세음보살의 끝없는 자비도 저 풍족한 바다에서 배운 것이 아닐까? 해수관음상의 손에 들려 있는 감로수 병에 저 바다가 담겨 있다는 상상을 해본다. 바로 뒤에 있는 종각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몇몇 새들이 날아올라 하늘에 검은 점을 새긴다.
어제는 고성 청간정에서 그런 검은 점들을 봤다. 해변에 새겨진 검은 점의 무리에서 점 한두 개가 물가에 나갔다 돌아오곤 했다. 멀리서도 느껴지는 그 총총걸음이 귀여워 해변으로 내려가 검은 점들에 다가가자 검정은 점차 갈색이 되었고 어떤 검정은 초록이 되었다. 철새 오리들이었다. 그런데 그사이에 유독 하얀 새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더 가까이 다가가 보니 하얀 갈매기 한 마리가 오리들과 함께 햇볕을 쬐고 있었다. 그 갈매기는 몇몇 오리와 같이 물가로 가 머리를 담그기도 하고 파도가 오면 날아가지 않은 채 물결에 몸을 맡겨 뒤로 물러났다. 2월 바다의 바람과 물은 여전히 찼으나 햇살은 따스웠다. 너도나도 여기에 겨울 동안 잠시 머무르다 다시 멀리 떠나야 하는 존재. 그들은 서로의 내일을 잘 알고 있다는 듯 무심하게,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두 새가 나란히 서서 햇살을 나눠 쬐는 그 풍경을 멀리서 오래 지켜보았다.
곧 해가 질 시간, 마지막 여행지인 남대천의 갈대밭이다. 갈대가 그러하듯 바람에 몸을 맡겨본다. 갈대처럼 바람이 시키는 대로 나 역시 흔들릴 수만 있다면. 이런 생각을 하며 겨울바람을 차곡차곡 담다가 시선을 멀리 던져보니 갈대들 위로 희미한 수평선이 보인다. 양양이 고향인 지인이 남대천의 끝에는 강과 바다가 이어지는 곳이 있다고 했다. 해가 아직 산 위로 한 뼘 정도 떠 있으니 가기에는 늦지 않은 듯해 차를 몰아 급히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으로 향한다.
차를 멈춰 세운 둔덕 위에서도 강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모습이 보이지만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에 해변으로 뛰어간다.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마음이 급하지만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은 생각보다 멀고 모래사장에 발이 푹푹 빠져 걸음이 자꾸만 늦어진다. 다행히도 해와 산과의 거리가 엄지손가락 길이만큼 남아 있을 때 도착해 강과 바다가 만나는 풍경을 조금은 여유를 갖고 지켜볼 수 있다.
이쪽에서 저쪽까지, 십 미터도 안 되는 폭 사이로 강물은 이 여정의 끝을 기다렸다는 듯 머뭇거리거나 뒤돌아보지 않고 바다로 뛰어 들어간다. 바다도 아무런 거부감 없이 강물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마치 언젠가 서로가 이렇게 만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렇게 둘은 자연스럽게 서로를 안는다. 이제 어디가 강물이고 어디가 바닷물일까? 서로를 나누지 않고 섞여 하나가 되는 그 어디쯤을 한참을 바라보고 있자 내 안에서 무언가 강물처럼 저 바다를 향해 빠져나가고 있는 기분이 든다.
지난겨울의 끝부터 이번 겨울까지 유독 나는 많은 이들을 미워했다. 심지어 내가 아끼는 이도 미워했으며, 때로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싶은 마음과 ‘그럼에도 불구한’ 마음이 부딪혀 더 괴로웠다. 사실 이번 여행 중에도 불쑥 미운 사람들이 떠올라 화가 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러다 당장이라도 전화를 걸어서 사과받고 싶은 정도의 마음이 되면 차에서 내려 겨울바람을 맞으며 화를, 미움을 식혔다. 하지만 미열 같은 마음이 조금씩 남아 있어 나를 다시 아프게 했다.
그런 미열이 지금 내 안에서 빠져나가고 있다. 끊임없이 흐르는 물살을 보며 무엇인가가 나를 여기로 인도했다는 생각이 든다. 관세음보살에게 자비를 알려주던 바다를, 그 바다를 나란히 서서 바라보던 오리와 갈매기를, 서로 먼 곳에서 흘러와 끝내 하나가 되는 만남을 보게 하려고. 그래서 너의 미움이 자꾸만 밀어내고 경계를 지으려 했던 네 안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알려주려고. 그러고 보면 누군가를 늘 밀어내려고 할 때마다 결국 밀려나는 건 나였다.
해는 이제 산 뒤에 숨어 노을만 뿜고 있다. 손으로 대어본 이마가 차다. 바닷바람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괜스레 고마운 마음에 그 손으로 강에게서 바다에게 들어가는 물결들을 향해 흔든다. 이 물결들은 이제 바다를 만나 어디까지 가게 될는지.
안녕, 이번 나의 여행은 여기까지. 이제 너의 여행을 응원할게.
글, 사진 : 임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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