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들의 위로

by 임성현

개구리야 편해 보여 좋구나.

너를 보며 뜨거운 물에 반신욕 하는 상상을 할게.

온몸이 노곤해진다고 믿어볼게.

- 김화진, 「개구리가 되고 싶어」 중에서


새 학교로 옮길 시간이 왔다. 고작 교무실의 한 자리가 나의 자리일 뿐인데도 짐이 상당히 많았다. 책과 각종 사무용품과 컵 같은 개인용품 등을 미리 준비해 온 캐리어에 차곡차곡 담았다. 어느 정도 짐을 다 빼자 책상에는 수경으로 키우는 식물이 담긴 작은 화병들과 컵, 엽서들과 곰 모양의 향초가 남았다.

작년 한 해는 처음으로 담임 교사 대신 교무 업무를 주로 맡게 되었다. 그것도 업무 강도가 강하고, 학교의 중요한 일을 전반적으로 다 다루는 부서의 일이었다. 업무를 처음 맡은 날부터 시작된 야근도 힘들었지만 나를 더 괴롭게 한 것은 산적해 있는, 채용이나 인사 평가, 학교 운영 계획 등 민감한 일들이 주는 심적인 부담이었다. 은퇴할 때까지 담임을 하면서 학생들과 부대끼며 지내고 싶어 했던 내게 그 자리는 맡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하기만 했다. 직장인으로서 월요일이 오는 게 싫은 적은 있어도, 선생님으로서 학교에 가는 것이 심란하기는 교직 생활 13년 만에 처음이었다.

- 어떻게 하면 될까?

문득 그때쯤 읽은 김화진 작가의 소설 「개구리가 보고 싶어」가, 회사 책상에 놓인 개구리 모양의 도자기 인형을 보고 마음의 쉼을 얻는 소설 속 상황이 떠올랐다. 내게 주어진 여건을 바꿀 수 없다면 하루 종일 있어야 할 자리의 물리적인 환경이라도 바꿔봐야지. 내 자리가 편하면 그에 따라 마음도 조금은 편안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주 주말, 나는 소품 가게를 찾아 개구리 대신 책상에 올려놓을 대상과 기능이 아닌 디자인이 예쁜 컵을 샀고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 담긴 엽서들을 챙겼다. 그걸로도 부족해 며칠 뒤에는 인터넷으로 키우기 쉬운 수경 재대 식물들도 주문했다. 그렇게 교무실 속 내 자리는 조금씩 아기자기한 것들로 채워졌다.

아기자기한 것들이 정작 내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없겠지만 일보다 마음이 힘들 때마다 그것들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숨을 쉴 수 있었다. 또 두 화병을 손에 쥐고 세면대로 가서 헌 물을 비우고 새 물로 갈아줄 때면 헛헛함을 비우고 단단함을 채울 수 있었고, 예쁜 컵에 차를 우려낸 후 잎 차 거름망을 조심히 꺼낼 때면 조급한 마음을 약간은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 작고 작은 물건들이 하루 종일 쉬지 못하고 일만 하는 나를 일에 매몰되지 않게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보조 모니터를 치우자 모니터 뒤에 있던 책장에서 작은 메모지가 떨어져 나왔다. 메모지에는 서로 다른 색으로 ‘나는 할 수 있다’가 연달아 쓰여 있었다. 걱정이 밀려 올 때마다 메모지 위에 ‘나는 할 수 있다’라고 쓴 순간들이 눈앞에 지나갔다. 모니터 위치를 일하기 편한 위치로 조금씩 조정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모니터 뒤에 가려졌나 보다. 결국 시간은 흘렀고 방학에, 심지어 짐을 싸야 하는 마지막 날까지 학교에 혼자 남아 내게 주어진 일들을 모두 마무리했다.

언제부터 나는 저 메모지를 찾지 않게 되었을까? 순간 고생 많았다는 말이 듣고 싶었다. 아마 누구라도 옆에 있었다면 나는 부둥켜안고 울었을 것이다.

- 너희들도 고생 많았어.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다가 엽서와 향초를, 물을 비워낸 화분과 컵을 캐리어가 아닌 작은 쇼핑백에 조심스럽게 담았다. 비로소 이 학교를 떠난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새로 옮기게 된 학교는 중학교였다. 중학교는 신규 교사 때 일을 한 적이 있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3년 만에 고등학교로 옮겼었다. 그러다 10년 만에 다시 중학교로 가게 된 것이다. 새 학교의 소문이 좋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새 학년을 준비하기 위해 개학 전 새 학교로 출근했을 때 새 학교에 근무하시는 선생님들은 이전 학교와 분위기가 아주 다를 거라며 시에서 가장 체계가 잘 잡힌 학교에서 온 나를 걱정하셨다. 애써 침착한 척을 하는 와중에 업무 발표가 이루어졌다. 이전 학교와 같은 업무였다. 이전 학교보다 업무량은 적을 듯했으나 작은 학교라 담임까지 함께 맡아야 했다. 더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기존에 계신 모든 선생님들이 피하고 싶은 학생이 있는 반의 담임으로 내가 배정되었다. 예전에는 신규 교사의 패기라도 있었지. 적성이 맞지 않아 떠나온 곳에, 그것도 사고뭉치들이 많은 곳에서 근무할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렇게 아찔한 마음으로 새로운 교무실에서 짐을 풀어놓다 문득 일본에서 사 온 개구리 모양의 도자기 인형이 생각났다.

몇 주 전 일본 다캬야마 거리를 걷다 개구리 모양의 도자기 인형이 잔뜩 전시된 상점을 발견했었다. 「개구리가 보고 싶어」 속 인형(소설 책에는 작가가 가진 개구리 모양의 도자기 인형 실물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과 비슷한 개구리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 창으로 상점 안을 구경하다 소설 속의 인형과 똑같은 개구리 인형을 보았다. 내가 착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봤지만 틀림없이 똑같은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작가도 일본에서 이 인형을 구했다고 했었다. 반가운 마음에 상점 안으로 들어가 개구리 인형을 선물용까지 샀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책장 위에 책과 함께 올려둔 개구리 인형을 챙겼다. 걱정과 근심이 밀려올 때마다 온천에 몸을 반쯤 담근 저 개구리를 봐야겠다. 올해에도 책상에 나를 지켜줄 작은 존재가 함께 있을 테니 나는 결국 또 해낼 것이다. 마지막까지 일을 마치고 묵묵히 다음을 맞이할 것이다. 13년 전의 패기는 없지만, 13년의 경력이 지금의 나에게 있지 않은가.

- 너는 할 수 있다.

온천물로 따뜻한 수건을 머리에 올려놓은 채 살짝 웃고 있는 개구리가 내게 말을 건네는 듯했다.









글, 사진 : 임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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