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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다만 기록과 타인의 기억이 남아있을 뿐.
[사망일시] 2003년 XX월 XX일
[사망장소]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XX리
[신고일] 2003년 XX월 XX일
[신고인] 동거친족
사망일시와 우리 가족이 기리는 기일은 2일간의 차이가 난다. 바다에서 아버지가 아직 죽지 않고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 이틀간 지속되어 사망신고를 늦추었기 때문이다.
감정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면 그 현실에 대한 반항은 어떠한 형태로든 나타난다. 다양한 형태의 반항이 그날에 있었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서류상에서 이틀의 기간 차이뿐이다. 사망을 받아들이고 신고를 하는 동안 걸린 이틀의 시간은 엄마로 하여금 얼마나 억겁의 시간이었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더불어 우연이지만 제적등본에는 혼인신고일도 같이 나와있었는데 기일과 일치했다.
매번 자산이나 소득에 관한 증명을 해야 될 때가 오면 나는 부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존재가 없음을 증명하는 일은 보통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간단히 증명서만 있으면 되니 얼마나 편한 일처리인가? 2008년 이전에 사망한 자는 가족관계증명서에 사망 공시가 되어 있지 않는다. 그래서 매번 제적등본을 출력해서 제출하곤 한다. 제적등본 첫 페이지에는 이렇게 사망일시와 장소가 뚜렷이 적혀있다. 나는 아버지가 바다에서 죽었던 것을 몰랐다.
난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나의 방이 없이 엄마와 같은 방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나의 감정이나 행동을 숨길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되도록이면 내 감정들을 감추고 숨기고 드러내지 않는 것이 할아버지 집에 얹혀사는 우리 가족의 입장을 유지하는 것에 도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엄마와 나 사이에서 행복이라는 착각을 잠시나마라도 느끼고 싶다면 필요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적다. 아니 애초에 감정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 적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 커가고 모진 말들을 엄마에게 내뱉기 시작할 때 즈음에 엄마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버지의 사망은 많은 의문이 남아있다. 해수욕장 근처 횟집에서 술자리를 하며 지인들과 있었다. 그때의 바다 근처로 혼자 나아가기 전에 남긴 말이 여러 사람들에게 다른 의미로 해석되고 있는 것 같다. 엄마는 절대 자살이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는 한편, 아버지의 친구였던 다른 동업자들은 그렇게 믿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사업이 번창하고 잘 풀릴 때에 늘어놓았던 일들이 잘 풀리지 않았고 많은 빚도 있었다 했다. 정확한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사람은 원래 믿고 싶은 대로 믿기 때문에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나름의 근거와 이유를 끼워 맞춰서 내가 믿기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엄마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믿어왔을까? 사망 이후 의지할 곳이 없는 엄마는 일기장에 연모와 절망과 같은 평생 가슴을 후벼 파는 짐덩어리들을 글로 옮겨놓았다. 지금은 일기장이 다 뜯겨서 어디 갔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렸을 때 어렴풋이 읽었던 내용은 그러한 것들이었다. 엄마는 기록하는 것을 좋아했다. 몇 년 치 가계부에는 장을 본 목록과 어디를 갔고 무엇을 먹었는지 그리고 그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모두 기록되어 있었다. 하지만 2003년부터는 그런 기록들이 남아있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알량한 자존심으로는 나와 형을 계속 다니고 있었던 값비싼 사교육시설에서 졸업을 시키는 것이었다. 내가 공부하던 책상 서랍에는 그곳에서 적은 어릴적에 가장 슬프고 기뻤던 일들을 적어놓은 글이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