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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May 06. 2023

보호자의 멘탈

꽃으로 맞아도 상처를 받는 나는

별거 아닌 말에도 나는 상처를 받았다.

엄마의 심혈관 검사가 끝나고 침대째

이동되던 날.

엄마는 의미 없는 눈 깜빡임과 약간의 꼼지락 거리는 모습으로 침대째 중환자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처절한 마음으로 엄마의 침대를 문 앞까지 따라가던 순간에 모르는 여자가 외쳤다.



" 엄마! 엄마! "


옆에 있던 여자와 함께 우리 엄마를 보고 엄마 엄마를 외치며 엄마가 눈을 떴다며 감사하다며

하느님을 부르고 눈물을 글썽이는 것이다.

그 시점에 이미 우리 엄마는 예후가 좋지 않았기에 나는 황당해하며 날이 선 목소리로 대답했다.


" 우리 엄마예요! "


뾰족한 내 대답에 두 사람은 허망한 듯 우리 엄마랑 꼭 닮았네... 라며 조잘거렸다.



그리고 그 여자 중 더 젊은 여자가 이렇게 말하는 걸 나는 들었다.


" 우리 엄마가 저만큼이라도 눈 떴으면 난 소원이 없겠어... "



두어 번의 고비를 넘긴 바로 다음날이었기에 이제 저대로 임종하실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나는 불쾌한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멱살이라도 잡고 흔들고 싶었다.

당신들 부모님이 저렇게 꼼지락 거리다 몇 개월 못가 돌아가시기를 원하시냐고.

그게 당신들 소원이냐고.

어쩌면 우리 엄마보다 더 심각한 상황일 수도 있다.

다 알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일부러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그들이 알고 그러는 게 아니라는 것도, 그들의 어머님은 우리 엄마보다 더 상황이 안 좋을 수도 있다는 걸 다 알지만 받아들여지지를 않는다.

그렇게 나는 자꾸만 못돼 먹은 심보가 생기는 나를 혐오하고 그걸 혐오하는 나를 다시 경멸하는 것이다.



별거 아닌 말에도 나는 계속계속 무너지고 상처 입었다.



내 퇴직소식을 들었거나 그다지 가깝지 않은 지인들이 엄마가 일어나실 수 있을 거라고 괜찮아질 거라고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또 상처 입는다.

하루하루 드리우는 죽음의 냄새, 그림자, 점점 사그라드는 엄마의 생기를 보면서 죽음을 목전에 두면 사람이 이렇게 되는구나를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나에게 위로랍시고 던지는 모든 말들에 나는 생채기 난다.



서류상에는 이름조차 올라와있지도 않은 아버지가 엄마의 면회를 온 날,

동물원 원숭이나 개를 대하듯 움직여봐! 말해 봐!라고 하는 말에조차 나는 상처를 받아버렸다.

사실 그 말대로 말을 하거나 움직이거나 할 수 있었더라면, 우리 엄마는 요양병원이 아니라 2차 병원으로 옮겨져 재활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몇 달간 엄마의 상태를 아주 소상히 전달했건만 이만치 허무한 적이 없었다.

그동안의 모든 통화 내용은 다 어디로 갔는가.

엄마가 기관절개해서 말을 할 수가 없다.

의식이 있는 듯 보이나 소통은 전혀 불가능하다.

엄마는 작은 눈 깜빡임조차 어려워졌다.




그리고 어느 날은 이모에게 전화가 왔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엄마의 임종을 앞두고 모두 한 번씩은 지방에서 올라와 엄마를 보고 내려갔다.

수화기 너머 이모가 이렇게 물었다.


" 식사는 죽 먹나? 죽 쒀가면 되는 거야? "



한번 더 무너진다.

나는 쉴 새 없이 무너진다.

엄마는 콧줄로 식사를 하시며, 그 피딩되는 양조차도 감당을 못해 때때로 구토를 하기도 하고,

양을 더더욱 줄여 충분치 못한 영양공급을 생존에 필요한 정도로만 하고 있다.

그런 엄마가 숟가락을 들고 음식물을 넘기는 행위를 할 수 있었더라면,

앞서 말한 대로 엄마는 2차 병원에서 재활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보호자들은 작은 말에도 상처 입는다.

매번 엄마의 고비를 함께 넘으면서도, 때때로 너무너무 힘들다고 혼자 중얼거리면서도 혼자 집에서 숨죽여 울다가도, 소리 내어 엉엉 울다가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현실들이 있으니 다 놓지도 못하고 계속 상처 입는다.



괜찮은 척하다가도 의사의 말 한마디에, 엄마의 반응 한 번에, 사람들의 말소리 한 번에도 바스러진다.

이 모든 걸 받아들이려면 대체 얼마나 강해야 하는 걸까.

그 어린 날의 내가 원인도 모르는 고통으로 병원에 입퇴원 할 때 엄마는 어땠을까?

아주 어린 시절, 갓난쟁이인 나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 공황장애가 와서 정신과를 다니기 시작했다던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가는 시점이었다.

다 큰 성인, 아니 이제는 어딜 가도 할머니 소리를 듣는 우리 엄마가 아픈 것에 어찌해야 할지 몰라 우울증을 앓게 되었고, 자다가도 공황이 찾아와 두근거리는 심장을 잡고 한참을 뜬 눈으로 보내는데 엄마는 어찌 버텼을까?

얼마나 더 강해져야 엄마를 잘 보내줄 수 있는 걸까?

얼마나 더 단단해져야 이런저런 말들을 들으면서도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을까?

나에게 상처받지 않을 권리가 있기는 한 걸까?




많은 생각 끝에 나는 오늘도 상처 입고 반박하고 때때로는 언성을 높이고 싸우기도 한다.

어설픈 위로를 할바에야 안 하는 게 낫다.

보호자의 마음은 보호자만 아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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