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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May 05. 2023

모든 일은 갑작스럽게 2

2023년 2월 16일의 기억수첩

엄마의 침상이 빠르게 빠져나갔다.

나는 주치의를 붙들고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작년 9월 S 병원에서 들은 말을 그대로 내뱉었다.

우리 엄마는 폐 기능이 30%도 채 안 되며, 작년 9월에 이산화탄소 배출을 못해서 돌아가실 뻔했고, 

그 병원에서는 엄마가 기도삽관까지 가게 되면 못 일어날 수도 있을 거라고 조심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우리 엄마 이제 어쩌냐, 어쩔 거냐, 살려내라.



나는 그 이야기를 할 때조차도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34살의 어른은 온데간데없고 어린아이 보다 더 크게 울고 있었다.


주치의는 기도삽관은 최대한 피하고 자기가 최선을 다하겠다며 살리겠다 선언하고 엄마의 침상을 따라 내려갔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그의 눈동자도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한참을 그 병동에 서서 어린애처럼 울고 있었다.

새벽 6시, 그 병동의 복도에 사람이 하나둘씩 나와 나를 위로하고, 쳐다보기도 하고, 수근거리기도 하는

그때에 한 간호사 선생님이 짐을 싸서 가야 된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6인실을, 울면서 들어가 한가득 짐을 짊어지고 4층으로 향했다.

엄마는 이미 들어갔다.

중환자실에.



무슨 정신으로 내려갔는지 지금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간호사 처치실로 옮겨지기 전 엄마의 잠꼬대를 떠올렸다.

수면제를 먹고 중얼중얼 잠꼬대를 하던 엄마.



엄마의 잠꼬대는 최근부터 거꾸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최근에 가장 많이 했던 말을 필두로 점점 더 나의 어린 시절로 엄마는 회귀하고 있었다.



- J.. 어서 와서 밥 먹어 J!

- 송희 아빠, 송희 아빠!



거꾸로 흘러가는 엄마의 잠꼬대를 들으며 나는 그날 한숨도 못 잤고, 그 잠꼬대마저도 길게 이어지지 못한 채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중환자실 앞에서 한참을 기다려서야 나는 엄마를 살리겠다 비장하게 선언하고 들어갔던 주치의를 볼 수 있었다.

주치의는 고된 한숨을 뱉으며 내 앞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 어머니 기도삽관까지는 안 갔어요, 이거 보세요. 제가 동영상 찍어왔어요. 환자분 이름도 알아들으시고 이제  괜찮아요. "


그렇게 꺼내든 동영상 속 엄마는 간호사들의 외침에 자기 이름을 한 글자씩 내뱉고 있었다.

그저 숨 넘어가지 않은 상태. 딱 그 직전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더더욱 절망스러웠다.

나는 울면서 그 주치의에게 매달렸다.

제발 우리 엄마 살려달라고.



" 엄마 죽으면, 저 진짜 고아예요. 제발 좀 살려주세요 우리 엄마... "



그 한마디를 내뱉으면서 작년 9월을 떠올렸다.

그날은 유독 택시가 안 잡혀 엄마는 119를 타고 S병원에, 나는 내 자취방에서 S병원으로 택시를 타고 따로따로 갔던 날이었다.

그날도 엄마는 돌아가실 뻔했고, 5,6명의 의료진들이 모두 달려들어 응급실에서 저승문턱을 넘어가려는 엄마의 멱살을 잡고 돌아온 날이었다.

오죽하면 그들은 엄마의 의식이 돌아온 후 나중에야 나에게 슬쩍 알려줬다.

정말 못 돌아오실 줄 알았다고....

기적 같은 일이라고...



주치의는 더러워진 내 패딩 손목 부분을 흘깃 보고 괜찮을 거라 다독여줬다.

이미 일주일 가량의 병간호로 패딩의 세탁을 맡길 틈도, 섬망증세와 불안증으로 잠시라도 내가 눈앞에 안 보이면 어디냐 빨리 와라 죽을 것 같아 라는 세 마디를 반복하는 엄마의 보호자로 병원에 있었던지라 꼬질꼬질했다.

주치의가 잠시 다독여주고 자리를 비우고 나는 또 하염없이 기다렸다.

중환자실 앞에서 한참을 발을 뗄 수가 없었다.

호흡기 내과 교수님과 한차례 더 면담을 하고, 나는 집으로 가서 기다리라는 말에 가방 네 개를 들고 지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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