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정상입니다.
어느 병원을 가던, ㅇㅇㅇ님의 보호자님이 있다.
좁아터진 보호자침대에 몸을 새우처럼 뉘이고, 쪽잠을 잔다던지 앉아서 꾸벅꾸벅 졸음을 이겨내거나
석션을 하거나, 혹은 오물처리실 앞에서 환자의 소변통을 들고 서성이는 그런 보호자들 말이다.
엄마와 함께한 34년.
나에게는 여러 번의 입퇴원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무서웠던 적이 없었다.
중환자실에 엄마를 보낸 보호자의 입장으로서 드는 생각들이 있다.
엄마가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에 슬프고,
한창 커리어적으로 잘 나가야 할 시기에 이런 일이 생긴 것도 슬프고,
이 터널의 끝이 어딘지 몰라서 슬프며,
엄마는 언젠간 돌아가시겠지만 내 남은 삶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이 끝없이 나를 갉아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생각 때문에 오롯이 엄마에게만 집중할 수 없다는 나는 너무 속상하다는 것.
이건 모든 보호자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족간병을 위해 퇴직한 사람이라면 앞으로 다시 복직할 수 있을까?
잠시 휴직계를 낸 사람이라면, 휴직계가 끝나기 전에 일상 복귀가 가능할까? 대체 끝은 언제일까?
모든 보호자들이 공통으로 가질 생각들이다.
잠을 못 자 힘든 것은 체력적인 문제다.
밤새 석션해야 하는 환자의 보호자라면, 그 쪽잠 역시 그치들의 몫일 것이다.
그리고 환자 본인의 아픔에서 비롯되는 짜증이라던지, 불안감을 받아들이며
내 안의 불안감도 함께 커졌다.
끝을 모르고 달리는 레이스는 너무나도 무섭다.
수많은 입퇴원의 기억들을 되돌이켜본다.
중환자실 아닌 일반병실에서의 기억들을 말이다.
수시로 울리는 페이션트 모니터의 삑삑 - 하는 음성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체크하러 오는 간호사 선생님들
때에 맞춰 주어지는 식사
때때로 이동해야 하는 모든 검사들
아침 되면 회진을 오는 의사 선생님들
옆침대의 환자나 보호자의 소음
나는 그 많은 소리들 틈 속에 수시로 소변통을 비우러 새벽에도 2-3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 나는 엄마의 소변통을 들고 까치발로 걸어 다녔었더랬다.
그게 너무나도 싫었던 날들이 많았다.
힘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니 매 순간이 힘들었다.
엄마에게 주어지는 많은 처방을 챙기는 건 1차적으로 간호사 선생님들이겠지만,
그 약들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엄마가 뭘 얼마나 먹었고 소변양은 얼마고 대변양은 얼마인지
따위를 기록하는 모든 일들은 나의 일이었다.
거동이 어려운 엄마이기에 화장실을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엄마를 말리는 것도 나의 몫이었다.
의식이 있었을 당시의 엄마는 당연히 본인이 화장실을 걸어서 갈 것이라 우겼으나
엄마는 그 당시 산소치료기를 사용 중이었기에 ( 이동이 불가능한 )
엄마는 침상에서, 그것도 다인실에서, 자그마한 휴대용 변기를 사용해야 했다.
그걸 참 싫어했다.
커튼하나를 사이에 두고 옆에서 냄새가 풍길 때마다 엄마는 인상을 찡그렸고, 엄마 본인도
그렇게 볼일을 봐야 한다는 것 자체를 싫어하셨다.
또한 그렇게 나는 간병인이자 이현숙 님의 보호자로서 불리던 그 많은 날들 속에서도
업무 관련된 연락을 받아야만 했으며, 손님들과 통화할 때만큼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해야 하는 그것들조차도 나에게는 부담이었다.
일터에 내가 없었어도 나를 찾는 전화는 많이도 왔었다.
아픈 엄마는 짜증이 늘어갔으며, 본인의 손가락질 하나에 내가 바로바로 움직이지 않으면 무척
앓는 소리를 내며 짜증을 나에게 전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내 할 일을 할 뿐이었다.
같은 병실의 다른 보호자 어른들보다는 내가 어려 보였는지 그들은 나에게 효녀라고 불렀다.
아니, 아니오.
나는 그 말이 턱끝까지 차올랐으나 그냥 웃음으로 무마하고는 했다.
효녀라서 간병을 하냐고 묻는다면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저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오롯이 내가 했던 것이다.
때때로 회사일 때문에 도무지 간병을 할 수가 없는 타이밍이 올 때면 다른 사람이 투입되었지만
엄마는 그마저도 불편해하였다.
간병을 하면서 나쁜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나쁜가? 내가 이상한가? 나는 나쁜 사람인가?
하는 온갖 생각에 매몰될 때마다 나는 어딘가에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아기를 돌보는 일도 힘든 일인데 다 큰 성인을 돌보는 일은 얼마나 힘이 드는가 하고.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야기하고 싶다.
어쩌면 내 짧은 간병에도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음에 나보다 훨씬 더 긴 세월을 간병하는
ㅇㅇㅇ님의 보호자들 당신들이 하는 그런 생각 당연한 것이라고.
간병은 나의 영혼을 갈아 넣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결코 당신은 효녀, 효자 따위가 아니라 그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ㅇㅇㅇ님의 보호자라고.
그리고 과거의 나에게도 이야기하고 싶다.
나쁜 게 아니라, 원래 힘든 일이라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거라고.
물론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면 그 모든 싫었던 순간들의 엄마조차도 그리워질 테지만,
그리고 그 그리움에 몸서리치게 슬퍼하겠지만,
그 슬픔에 잠겨 익사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겠지만.
나는 이렇게 오늘도 글로 울며, 글로 내뱉고, 글로써 엄마를 추억할 것들을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