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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May 04. 2023

연명치료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기관절개, 연명치료에 대한 후회

엄마가 중환자실에 내려간 당일, 

나는 엉엉 소리 내어 울며 의사 선생님의 가운을 붙들고 제발 살려달라고 빌었다.

일반병실과 중환자실을 거쳐 요양병원에 모신 지금.



나는 엄마를 살려달라고 애타게 빌었던 그 모든 날을 후회하고 있다.

지금의 엄마는.... 비록 숨은 쉬고 있으나, 의식이 명료한지 확인할 수 없으며, 

와상환자가 된 지금, 기관절개를 하고 홈벤트 인공호흡기를 착용한 이 시점에서 

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엄마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는지에 대한 확신조차도 없기 때문이다.

엄마는 콧줄로 식사를 해야 하며, 그 식사량조차도 구토를 하기에 충분치 못한 양이다.

소변줄을 꽂고 있고, 인공호흡기가 엄마의 호흡을 대체해 준다.

손가락 발가락 하나둘 까딱 하는 의미 없는 몸짓, 그 이상으로는 움직일 수 없어 엄마의 약한 피부는 

조금씩 조금씩 상해 가고 있다.

아무리 간병인이 열심히 뒤집어 주어도, 소위 말하는 체위변경과 욕창매트를 사용해도 조금씩 상하고 있다.



살릴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살리는 게 맞다.

그러나 예후가 좋지 않다면...

나는 다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엄마 간다, 안녕이라고 엄마가 나에게 인사를 건네었던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주저 없이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 잘 가, 안녕하고 인사해 주었을 것이다.



기관절개를 한 엄마는 이제 목소리를 낼 수 없다.

중환자실에서 두 달여를 넘게 버틴 엄마는 여러 번의 뇌경색으로 더 이상 몸을 의지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며, 

말을 하지 못하니 엄마가 의식이 또렷한지 아닌지조차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입술을 벙긋거리는 모션조차도 취하지 않게 되었다.



눈은 뜨고 있으나 의미 없는 허우적거림만이 계속될 뿐이다.

더 이상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탁해진 엄마의 회색빛 눈동자, 확장된 동공, 허공 어딘가를 바라보는 그 눈빛.

엄마와 눈 맞춤을 할 수 없는 이 순간에 나는 아직도 그 순간으로 자꾸만 자꾸만 돌아간다.



엄마가 아프기 시작한 후에 나는 임종면회 후 장례를 치른 사람들의 글을 하나도 빠짐없이 찾아보았다.

나는 엄마가 중환자실에 간 후로 이별을 준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엄마가 괜찮아질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매일매일 임종 전 증상, 혹은 임종 후에 글을 남긴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그들의 글은 모두 양상은 달랐지만, 나처럼 최선을 다해 살려달라고 한 보호자도, 아닌 보호자들도 똑같이 

이야기한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치료를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한다는 말이다.

치료를 최선을 다해 한 보호자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괜히 고통만 더 드린 게 아닌지 후회됩니다...

가시고 싶을 때 보내드린 보호자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그래도 그때 더 노력했으면 하루라도 더 살아계셨을까 후회됩니다...


나는 후회한다.

많이 후회한다.

기관절개, 기도삽관은 연명치료 범주에도 들어간다.

나는 이 모든 걸 후회한다.

엄마에게 고통을 주는 시간을 연장시켜 버린 나의 욕심 때문에 엄마는 손도, 발도 퉁퉁 부었고

의식이 있었을 때의 엄마는 아파, 아파,라는 입모양을 많이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결국 다 내 욕심이었다.

엄마가 살아있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욕심이다.

내가 슬프지 않으려고 엄마의 실낱같은 영혼을 붙들고 강제로 숨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기관절개를 해버리는 순간부터 엄마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나의 엄마는 임종기에 접어들어가고, 그런 엄마의 마지막 모습은 목소리를 듣지 못해 그저 

우연히 엄마의 핸드폰에 녹음된 나와의 통화내역을 계속 재생해야만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엄마의 예후가 좋았다고 한다면, 엄마가 다시 일어나 줄 수 있다면, 

엄마가 다시 예전처럼 걷고 웃고 화내고 이전으로 돌아만 갈 수 있다면 내 영혼도 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예후가 좋다면 무엇이든 다 하겠지만 나의 엄마는 회복되지 않는 장기 때문에 아파한다.

암을 겪는 환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 엄마는 여명이 보이지 않는 정도일 뿐...

나는 엄마가 겪는 고통을 겪어보지 않았지만 눈으로만 보아도 알 것 같았다.

엄마의 찡그린 눈썹, 한없이 치켜 올라가는 눈동자, 석션할 때마다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의식 없는 엄마.



의식이 있던 때의 어느 날,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더 버틸 수 있어?

그 물음에 엄마는 절레절레 고개를 젓고 눈물을 흘린다.

정말 아프지 않다면 엄마가 과연 그렇게 대답했을까?

엄마의 딸로 34년을 살았지만 엄마를 위한 최선을 선택을 못했던 것을 나는 땅을 치고 후회했다.

엄마가 중환자실에 가던 날, 엄마 죽어, 엄마는 이제 간다 따위의 말들을 그저 무시하고 제발 살려달라고 

의사 선생님의 가운을 붙잡았던 그날을 미치도록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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