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던 모든 보호자들이 동요하는 마법의 문장
작년 9월부터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이다.
이 말을 들으면 병동을 지나가던 모든 사람들이 한번은 돌아보게 되어 있고,
이 말 한마디로 나는 수많은 도움을 받아볼 수 있다.
제발 도와주세요
보호자들은 궁금한게 많다.
그 궁금한 것들을 필두로 나는 이 문장들을 마법의 문장이라고 부르기로 맘 먹었다.
간절함이 묻어나오는 저 말들은 까페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다.
환자들마다 양상이 워낙 다르니 모두가 자기와 비슷한 처지가 있나 찾아보고 그게 없을때 쓰는 말인거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엔 적지 않은 녹내장 이슈로 엄마에게는 꼭 필요한 안약이 하나 있었다.
엄마의 여명을 알수가 없기에 매일 전전긍긍하며 약이 떨어질까 불안해떨었었다.
알아보니 환자대신 보호자 대진 절대 불가 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요양병원 의사선생님과 상담결과 우선 소견서 써줄테니 다녀 와보라는 말을 들었다.
환자를 옮기는 것에 대해 어찌 생각하냐 물으니 쉽사리 답을 내지를 못한다.
그러나 괜히 빈대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 될까봐 겁난다는 말에는 의사가 적극동의 하며 대진을 이야기 했다.
내가 고민했던 것은 여러가지 옵션을 달고 있는 엄마를 어찌 안전하게 1시간 가량 떨어진 병원으로 데리고 가느냐의 문제였다.
사설 구급차를 부르는 건 할수 있는데 의료진 동반이동이 가능한지 여부라던지, 혼자서 환자 침대를 옮겨야 하는데 그 침대는 어디서 구해오느냐 라던지, 혹은 안과검사인데 환자는 누워있고 거동 불가능+ 의사소통 안되는데 진료가 되는 것인지에 대한 여부였다.
까페에 제발 도와주세요 라는 마법의 문장을 흩뿌리자 삽시간에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아주셨다.
역시 같은 보호자 처지에 제발 도와주세요는 나 역시 지나칠 수 없는 문장인 것이다.
병원에 입원하면 간호사 스테이션에 알림이 가는 콜벨이 있는데 나는 저 문장이 그것과 같다고 느꼈다.
그 콜벨은 누르자마자 간호사 선생님들이 응답을 주시고 이내 1-2분 만에 짠 ! 하고 나타났었는데...
제발 도와주세요 한마디에 삽시간에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댓글을 달아주는 걸 보고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34년.
점장이라는 명찰을 단 이후로 남에게 도움을 받느니 실패를 해도 내가 하고 후회를 해도 내가 하고 책임을져도 내가 진다는 가치관과 신념으로 도움 안받고 혼자 스스로 해결하는 성취감에 미쳐있었던 내가 이렇게 많은 도움을 요청할 줄은 몰랐다.
마법소녀가 변신을 위해 주문을 외우듯 나 역시 이 주문을 외운다.
제발 ! 도와주세요 !
어딘가에 있을 신에게 외치고
제발 ! 도와주세요 !
엄마의 수많은 병명 중 하나를 주제로 하는 거대한 까페에도 질문하고
제발 ! 도와주세요 !
다른 보호자들을 향해 외치고
제발 ! 도와주세요 !
병원에 오갈때마다 마주치는 의료진들의 가운이나 옷을 붙잡고 외치는거다.
입원해 있을때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엄마의 뇌 척수액 검사 때문에 바른 자세로 천장을 보고 4시간 가량을 누워 있었을때 화장실을 가면 안되냐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어보는 엄마를 향해 기저귀에 싸야해! 내가 사올께! 라고 외치던 그때의 내가 생각난다.
자신만만하게 팬티형 기저귀를 어찌어찌 사오긴 했는데 내가 고장난 듯 멍때리며 서있자 커튼을 살짝 제친 옆 침대 보호자가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다.
" 도와드릴까요? "
그 한마디에 나는 기어들어가듯 속삭이는 투로 마법의 문장을 쏟아내었다.
" 제발 도와주세요...."
그리고 그때 또 하나를 배웠다.
거동 불편한 환자에게 팬티형기저귀는 썩 좋은 선택지가 아니라는 것을.
차라리 접착식을 사올껄, 방수패드는 왜 빼먹었을까 등등등...
간병을 하는 내가 마스크를 끼고 있어 어려보이고 와상 간병초보인게 티가 나서인지 그녀는 이것저것을 가르쳐주며 조심스럽게 이것저것 팁들을 전수해주었다.
비록 엄마가 부끄러워해서 대놓고 갈아주진 않았지만 많은 의미로 나를 도와준 천사였다.
그 상냥한 천사는 자신이 지켰어야 할 그녀의 엄마가 요양병원으로 옮겨지던 날 엉엉 울며 무너졌다.
그 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면서 그녀에게 받았던 도움들을 상기시키고 안쓰럽다 같이 눈물흘려준 나는 그게 곧 내가 될 줄은 몰랐었더랬다.
어딜가나 내가 속한 장소에서 늘 위에 있었고, 누군가의 도움 요청에 선뜻 나서서 일을 해결하는 사람이었지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입장이 되어본 적이 없었다.
협력을 요청한 적은 있었어도.
적어도 엄마의 보호자가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보호자가 처음이라, 이전의 엄마 상태가 아니고 더 안좋아진 엄마의 보호자가 처음이라 매일매일이 새로운 것 투성이었다.
기저귀를 사용해본 것도, 기저귀에는 속기저귀와 겉기저귀가 나뉘어져 있다는 것도 나는 처음 알았다.
엄마가 아닌데 엄마가 된 것 마냥 이제는 기저귀를 누구보다도 잘 갈아줄 자신이 있다.
보호자는 항상 뻔뻔해져야 한다.
모르는 사람들과도 쉽게 말을 틀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
병원에서 모르는게 있어서 누군가를 붙잡고 물어볼때 간호사 선생님들은 너무 바쁘고 의사 선생님은 가운 자락 아침에 한번 보는게 다였다.
옆침대의 베테랑 처럼 생긴 보호자나 말이 통하는 듯 통하지 않는 외국 간병인들이 하는 걸 곁눈질로 보거나, 혹은 나를 보고 이유모를 호감을 내비치며 딸 보는 눈동자로 조언을 건내주시던 많은 분들의 호의를 뻔뻔하게 받아채고 감사히 받은 것을 그대로 돌려줄줄 알아야 한다는 소리다.
백마디 글로 읽고 영상을 봐도 소용없다.
정보는 많을수록 좋고, 직접 해보면 더 좋은 것이다.
다만 그것조차도 간병에 소질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다못해 석션하나 할때도 환자가 아프지 않게 하는 TIP ♥ 이라며 촉촉하게 네뷸라이저 먼저 하실께요 라고 이야기 해주는 사람들을 쫓아다녀야 한다.
그들이 얻은 팁은 수많은 시도끝에 이루어진 절충안인것이다.
내가 하기 편한것과 환자가 받아들이기 용이한 것 그 어느 중간에 있는 절충안.
나는 보호자가 되며 더욱 더 뻔뻔해졌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검색을 해보고 그래도 답이 안나오면 이젠 그곳에서 가장 베테랑처럼 보이는 사람을 보고 물어본다.
물론 감사의 의미로 작은 먹을거리와 함께 인사를 드리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간병인과 보호자들이 마법의 문장을 듣고 돌아서는 이유는 간병초보인 보호자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서툴렀던 시절을 떠올리는 게 아닐까?
혹은 그때 이랬더라면... 을 생각하는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