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별이후 또다른 이야기

시골 노인네들의 재산 차지하기 프로젝트

by 희야

지금부터 적어내려갈 이야기는, 지난 5월 8일 이후로 시작된 이야기 입니다.

저는 그간 일기를 전혀 작성하지 않았어요.

소송을 진행한 변호사님이 이 일기마저도 좋지 않을 수 있다며, 잠시 연재를 중단하라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속으로 묵히며 썩어문드러져내려간 지난 날의 이야기를, 이제야 합니다.

신상이 드러날 수 있는 정보들은 가급적 가려 이야기 할 예정입니다.

그런 이유로, 이전 제가 발행한 브런치 글들 몇개를 숨기곤 하였습니다.

저에겐 엄마와의 한줌 기억이지만, 그들에게는 악용될 소지가 있는 글들이었으니까요.

이야기는 조금 각색될 지언정, 있었던 일들을 최대한 상세히 적어내려갈 예정입니다.



또한 위의 사유들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작성하는 이유는, 저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 혹은 저와 비슷한 사례들에 대해 제가 겪고 느낀 것을 이야기 하고 이것들을 통해 도움 받으셨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저의 고통을 적어내려가다보면 이 일들을 겪으며 느낀 분노와 고통들을 삭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적어내려가봅니다.

별로 유쾌하진 않겠지만 불행 포르노 정도는 될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엄마가 와병중에도, 나에게 매일매일 전화를 거는 막내 삼촌이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사람을 잘 꿰뚫어보는 사람이었고, 늘 감이 좋은 편에 속하는 지라 사람에게

당하는 악재는 자주 피하곤 했다.

늘 사람의 행동, 목소리, 쓰는 문장등을 분석하고 그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빠르게 파악하곤 했다.

그렇게 어린시절부터 위험에 쉽사리 휘말렸지만, 또 그렇게 쉽게 빠져나오곤 했던것이다.

더불어 어릴때부터 잘 맞는 꿈을 꾸곤 하였다.

가지고 있는 종교와 다르게 나는 종종 앞일에 대한 계시를 꿈으로 받곤 하였다.

미래를 비추는 화경마냥 보여지는 꿈들은 대개가 틀림없이

똑 맞아떨어지곤했고, 때로는 상징적인 모습으로 나에게 미래를 알려주고는 하였다.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도 나의 턱을 들어 비추는 손가락의 끝은 내가 보기 싫은 미래도 알려주곤 하였다.



그런 와중에 막내 삼촌은 참 이상도 했다.

큰 이모의 말도 이상했다.

막내 삼촌은 엄마의 상태를 감시라도 하듯, 매일매일 전화를 해서 좀 어떠냐 물어보고 내 이야기에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걱정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부터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상태가 좋아도 나쁜 것처럼, 엄마의 상태가 나쁘면 더 나쁜 것처럼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사실과는 다른 이야기를 전하고, 그의 반응을 살펴보고는 했다.




그리고 엄마가 눈감던 날,

나는 30분동안 요양병원의 벽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고, 괴로워하다가 몸을 일으켰다.

의사선생님의 사망선고를 듣고도 이렇게 주저앉아있을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집에서, 요양병원에서 가까운 한 병원의 장례식장으로 엄마를 옮기고, 장례식에 쓰일 꽃장식이나

엄마의 관, 수의, 엄마의 유골함을 선택하고 상복으로 갈아 입었다.

장례가 시작되고 몇시간 뒤에야 도착한 외가 사람들의 얼굴을 보자마자 알수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오로지 돈이라는 한 글자로 모두 표현할 수 있었다.

오롯이 애도를 하는 사람은 딱 한사람,

큰 이모 뿐이었다.

나에게 큰 이모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서울에서 여자혼자 돈벌이 하느라 힘들었을 엄마 대신 나를 잠시나마 맡아

키워주고 귀여워해준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엄마의 장례식은 애도는 커녕, 고함과 고성, 욕이 울려퍼지는 3일이었다.

상주 이름에 올라간 세글자, 나의 이름만이 덩그러니 올라가 있었다.

아무도 상복을 입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장례식에서조차 이방인이 된 기분을 느꼈다.

아무도 절을 하지 않았다.

아무도 향을 피우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다닐무렵, 방학때 종종 엄마 손을 잡고 외가에 놀러가면, 외가 삼촌들은 늘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늘 좋은 기억은 없었고, 늘 꼴보기 싫었던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들에게 있어 나라는 존재는 알게모르게 어린시절부터 이방인 이었던 것이다.




" 막내 삼촌은 늘 돈 빌려달라고 할까봐 무섭다. 그 아들 A가 올라왔다던데,

너가 전화해봐라. 엄마는 통화하기 싫어 "



엄마에게 있어 삼촌들의 존재는 돈 빌리는 귀신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장례가 시작되고 그들은 술을 축내고, 음식을 축내었다.

나의 문상손님들은 아무도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오로지 그들만이 술을 축내었다.

그들은 나에게 너는 피한방울 안섞이고, 살점하나 섞이지 않은 남이기에 나를 법적으로 제재할 수 있다며

엄마의 유골을 강제로 뺏어갔다.

나는 소리를 지르고 울고 욕도 하고 빌어도 보았지만, 엄마의 유골을 빼앗겨 버렸다.

엄마의 사진조차도 말이다.



장례 시작전, 외가 사람들도 없을때 수의를 비싼걸 고르겠다고 고집한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 본 장례지도사가 있었다.

엄마의 마지막 단장을 자신이 도와줄 것이다 소개한 그는 나를 보며 앞으로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될꺼다.

라고 조언했다.

그는 지금 생각해도 신기가 있었던게 아닐까 싶을만큼 나의 모든 상황을 꿰뚫어보았다.

장례 마지막날에도 내 상태를 살펴보러 빈소에 왔으니 말이다.




장례 3일내내 그들은 씨발년, 미친년, 시끄러운년, 배를 발로 차버리겠다 등등 나에게 욕을 하고,

돌아가신 고인이 된 나의 엄마에게는 더럽게 놀아먹은 년이라고 욕을 하였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싸움은 지금부터 시작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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