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의 미학
난 혼잣말을 좋아한다.
어떤 고민거리가 생기거나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 때, 혹은 결정을 위해서 이것저것 확인, 점검해야 할 때 혼잣말을 자주 한다. 때로는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서도 한다. 마치 '셀프 토닥토닥'과 비슷하다.
당연히 혼잣말은 혼자 있을 때 한다. 집에 혼자 있을 때 현관에 있는 전신 거울 앞에서 마치 다른 사람과 대화하듯 혼잣말을 한다. 전신 거울 앞에서 대화를 할 때면 평소엔 전혀 보지 못하던 내 표정과 몸짓이 보여서 마치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기분이 든다.
차 안에서 혼잣말하는 것도 좋아한다. 예전 내비게이션 보급 초창기에는 내비게이션 안내 멘트와 대화한다는 웃픈 에피소드들이 많았고 요즘은 그보다 훨씬 진화된 말동무들이 생겼지만, (빅스비, Siri, 아리아 등) 그래도 혼잣말이 주는 장점을 넘어서진 못한다.
혼잣말이 주는 장점은 내 성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난 무언가 고민을 하고 선택을 해야 할 때는 가능한 한 모든 경우의 수를 확인해 보고 싶어 한다. 가령 물건을 살 때도 내가 상상하고 확인할 수 있는 많은 가능성을 확인하려고 한다. 나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이것저것 경우의 수를 따지고 최종 결정을 하곤 한다. 그럴 때 혼잣말이 매우 유용하다.
나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가령 '이 물건이 정말 필요해?', '이 결정을 위해 이런 건 확인해 봤어?'와 같이.
나의 혼잣말은 혼자 하는 말은 맞지만, 약간 일인이역의 혼잣말이다. 가령,
나 1: 이번에 그 결정이 최선이야? 플랜B가 더 좋은 선택 아니었나?
나2: 아냐 그건 문제 해결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시간을 지연시키는 것뿐이야, 문제를 미루는 거지.
나1: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박사가 됐는데도 활용도 못하고 달라진 게 없는 거 같아
나2: 아냐, 당장 학위가 돈을 벌어주거나 하진 않지만, 너의 말과 행동에 선택에 자신감이 생겼어.
이런 식이다.
마치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듯한 느낌이다. 한편으로는 나에 대한 이성적 이해와 감정적 교류가 깊은 타인이 있었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굳이 코로나19를 핑계로 대지 않아도 내 기준으로는 타인에게 얻을 수 있는 이해와 조언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는 결국 타인은 모르지만 혼잣말의 상대인 '나'는 알고 있는 나만의 생각과 얘기들이 반영되고 안 되고에서 오는 차이일 게다.
혼잣말은 내 영혼의 안식처가 돼 준다.
굳이 술 먹고 건강을 해치고 술로 인한 말실수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도 이런저런 솔직한 얘기들을 할 수 있다. 무슨 얘기를 해도 다 받아주니 최고의 좋은 친구다. 혼자만 있다면 시간도 공간도 제약이 없다. 시간 약속할 필요도 없고 이 얘기가 타인에게 전파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없다. 그리고 언제든 나만 바라보고 내편만 들어주는 일방적인 응원도 가능하니 이보다 좋은 안식처가 없다.
끝으로, 혼잣말은 내 일기장이다. 엄연히 말하면 매일 쓰는 건 아니니 일기장은 아니고 기록장 정도가 되겠다. 이 기록장의 특징은 완벽한 기록보다는 선별적 기록이 더 매력인 기록장이다. 가끔은 사실과 다르게 기록해도 문제 될 것이 없다. 오로지 내가 기록하고 나만 펼쳐보는 기록장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