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감지 말고 잠시 물러나 보자.
영화 '그레이하운드'(2020, 애플TV+)
야간에 운전을 하다 보면 상대편 차의 라이트에 눈이 부셔서 순간 내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꼭 상대방이 의도를 가지고 상향등을 켜지 않더라도 길의 구조상 어쩔 수 없이 그런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상대방 차는 오르막 길을 오르고 내 차는 고개 위에 서 있을 때와 같은 경우다.
시속 100킬로미터 속도로 달릴 경우, 1초만 졸아도 약 28미터를 차량이 통제 없이 이동한다고 하니 1초의 반의 반만 앞이 안 보여도 매우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런 암흑의 순간에 당황하여 섣불리 운전대를 돌리거나 가속 혹은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다면 어떻게 될까? 경우에 따라 다르겠으나, 통제 없이 차가 이동하는 위험에 더해 위험이 배가될 것이다.
갑자기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위기가 닥칠 수 있다. 우리가 일기 예보에서 전에 없는 추위와 무더위를 말할 때 최근 00년 만에 최초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간 경험했던 충격과 파장을 뛰어 넘어서 나의 머릿속의 기억을 소환하여 대책을 세우거나 수습할 수 없는 정도의 위기 말이다.
그럴 땐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의 예에서처럼 눈을 감거나 급하게 핸들을 돌리거나, 페달 조작을 하게 된다.
결과론이지만 나중에 위기의 순간이 지나서 뒤돌아 보면 그런 위기의 순간에 본능적인 대응은 그 이후에 좀 더 살피고, 알아보고 판단하여 실행한 대응에 비해서 썩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그리고 사람의 의식 구조는 수만 년 전의 원시인의 DNA가 깊숙이 자리 잡혀 있어서, 그 시절처럼 동물들이나 외부의 위협에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아도 대응만은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그때의 위협에 대응하는 방식의 조건 반사적인 반응을 하게 된다.
위기의 순간이 오면, 일단 한걸음 물러나서 주변을 살펴 보자.
의외로 법과 상식이 지배하는 문명사회에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많은 수단들이 있다. 또한, 아무리 창호지같이 얇은 인맥이라도 재빨리 자신의 스마트폰 전화번호부를 열어보자. 위기 극복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는지? 혹은 직접 아니면 한 다리 건너서라도 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 줄 사람이 없는지 확인해보자. 위기 극복에 도움은 못주더라도 내 하소연이라도 들어주고 위로라도 해 줄 사람은 없는지 찾아보자.
다음 단계는 위기 상황을 냉정히 평가해보자.
위에 말한 대로 이 위기가 나의 경험 세계 속에서는 최초의 위기일 지라도 그것이 꼭 인류 최대의 위기라는 증거는 아니다. 즉, 위기 자체를 객관적으로 보고 실측해보자. 실측해야지 도망치든, 자포자기 하든 手가 나올 수 있다. 위기의 순간에서 잠시 물러나서 상황을 냉정히 평가해도 위기로 벌어진 피해가 그로 인해 겉잡을 수 없이 늘어나진 않는다. 어차피 벌어진 위기 수습과 대응을 위한 대가라고 생각하자.
최후의 단계는 위기를 받아들이자.
받아들이되 본인이든 주변이든 원망하지 말자. 주변은 차치해두고 세상 어느 누구가 자신의 미래에 해가 될 행동을 고의로 하겠는가? 혹여라도 이 행위가 나에게 해가 될 줄 알고 하게 됐다면, 최소한 현재, 눈앞의 이익과 쾌락이 더 크기라도 했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미래의 해악을 아무 이유없이 행했다면, 그건 또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기에 대응의 대상을 넘어선다. 받아들여야 다음 국면인 해결이 시작된다. 마치 중환자가 병을 받아들여야 의사의 진단과 처치를 신뢰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치료되는 것과 같다.
충격을 모두 피할 수 없다면, 충격에 대처하는 방법을 준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