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머릿속에 드는 생각을 말한다. 무의식적으로 반사적으로 나오는 반응을 제외하곤.
조직 내에서 생활하면서 이런저런 많은 말을 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즉, 머릿속 생각 중 극히 일부만 입 밖으로 나오게 된다.
그마저도 조직 생활이 20년을 넘어가면서 이젠 온전한 내 생각보단 주어진 상황 내에서 조직 내에서 할 수 있는 말들을 주로 하게 된다. 마치 '조직 언어생활 지침서'가 있는 것처럼.
조직 내에서의 생활이 만족스러울 때는 내 머릿속의 생각과 내 말이 정확히 일치하진 않아도 어느 정도는 비슷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조직 생활이 힘들어지고 불만족스러워지기 시작하는 신호는 내 머릿속 생각과 내 말이 상반되기 시작할 때이다.
그간의 내 가치관과 경험으로 이건 아니지 싶은데, 아니다고 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곳은 그래왔고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사용 경비의 귀속부서를 얘기하면, 어차피 회삿돈인데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되묻는 것처럼.
사실 그들도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건 아니다. 그저 귀찮고 자기들의 방식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것뿐이다.
많은 경영서적을 보면 차근차근히 변화를 만들어 가는 방법을 설명하곤 한다.
가끔은 성공 사례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성공 사례조차도 기존 조직과 기득권 세력들이 용인해준 것들과 또 그만큼만 가능하다. 결국 칼자루는 기득권 세력이 쥐고 있는 것이다.
월드컵에서 감독으로 선임되기 전 목표를 달성한 이방인(외국인) 감독들은 대부분 추가 계약을 잘하려 하지 않는다. 이는 감독을 선임하는 쪽도 마찬가지다. 즉, 눈앞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 변화와 새로움을 참아줬던 것뿐이지 뼛속 깊이 변화할 생각은 없는 것이다.
결국 나의 생각과 의지와 다르게 생활하는 나는 진정한 나도 나의 시간도 아니다. 그렇게 보내는 시간들은 먹어도 몸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음식과 같고 아무 짝에 쓸모없는 뱃살만 늘리는 것처럼 내 경력과 실력에도 군더더기만 생길 뿐이다.
또 하나 조직에서 힘들어질 때는 일의 목적이 돈과 시간이 될 때이다.
즉, 돈을 벌기 위해서 참고, 시간을 벌기 위해서-가령 이직을 위한 적당한 재직기간을 채우기 위해서와 같은- 참아가며 하는 일은 버티기에 불과하다.
이런 시간들은 꼭 티가 나고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가서 끝이 빨리 오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