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은 전갈, 독거미가 우글거리는 정글
내 오래된 말버릇 중에 "괜찮아요~"라는 말을 너무 자주 생각 없이 하는 버릇이 있다. 버릇이 대부분 그렇듯이 반복성이나 부적절성을 모르고 있다가 어느 순간 내가 거의 습관 수준으로 이 말을 남발한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내 사회생활의 시작이 서비스 기업이었고, 대기업의 특성상 조직과 분위기에 구성원이 매우 압도되는 곳에서 오랜 기간 생활을 했기 때문이라 짐작한다.
혹은 좀 더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대충 하려는 성격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보통 좀 더 세심하고 뭔가 확인하고 따지는 성격의 소유자들은 "괜찮아요"라는 말을 자주 하진 않을 테니. 다른 이유로는 다른 사람과의 갈등 상황이나 부담되는 상황을 피하고 싶은 나의 본능의 영향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자리가 올라가고 점점 조직 피라미드의 상위로 올라가면서 내가 견제당하고 때로는 무시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각되기 시작했다. 또한 예전엔 그런 것에 대해 한발 물러서거나 포기하고 말았던 것들이 슬슬 신경에 거슬리기 시작했고, 그러던 중 마침 고위 경영진이 참석한 회의에서 제멋대로 결정했다고 통보하듯 말하며 나의 발표를 잘라먹던 다른 간부에게 내가 정색을 하고 단호하게 따져 물었다.
표현은 달랐지만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그걸 결정했냐?"는 취지로. 그리고 비슷한 장면으로 무례한 방법으로 미팅을 요청한 팀장의 상사와 미팅하여 역시 표현은 달랐지만 "부하 직원 교육 똑바로 시키라."는 취지로 따져 물었다. 그러고 나서 달라졌다. 그들의 업무 관련 나를 대하는 태도와 내용이. 물론 내가 소위 부당하게 월권하고 갑질을 한 것은 아니었다. 나의 권한 안에서 따져 물은 결과이다.
이를 보며 그간 부지불식 혹은 알면서도 얼마나 나를 견제하고 무시하며 패싱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간 내가 너무 갈등을 피한다는 이유로 나의 것들에 대해 쉽게 내주고 산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이 들었다. 그러면서 어느 리더십 책의 문구가 생각난다. "조직은 전갈과 독거미가 우글거리는 정글이고 복싱 링이니 결고 그 복싱 링에서 내려오지 말라, 내려오면 죽는다."
유토피아 같은 세상에선 내가 선의를 베풀면 그 이상으로 되돌려 받거나, 아니면 최소한 공격받지는 않아야 할 텐데, 요즘은 나이를 불문하고 호의가 지속되면 권리인 줄 알고 더 나아가 상대방을 호구로 알고 주머니까지 탈탈 털려고 하니, 조직은 아니 이 세상은 전갈과 독거미가 우글거리는 정글이 맞는 거 같다.
그래서 가끔은 적당한 ㅈㄹ은 필요하다.
*주석: ㅈㄹ=지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