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뇌에게 먼저 말을 거는 노드

[Body as a Distributed System] 9화 - 장

by 공인식

뇌가 지시하지 않아도 소화는 계속된다. 척수가 절단된 환자에서도 장은 멈추지 않는다. 뇌와 연결이 끊겼는데 작동한다는 것은 — 장이 처음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되도록 설계됐다는 뜻이다.


주의

이 글은 비전공자의 창의적 해석입니다. 본문에 포함된 의학·생물학적 사실은 공개 학술 자료를 참고했으며, 의학적 조언이나 진단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건강 관련 판단은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AI 정보


우리 몸은 하나의 중앙 서버가 운영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각자의 역할을 가진 노드들이 신호를 주고받으며 합의해 나가는, 분산원장 네트워크에 가깝다. 이 시리즈는 그 노드들이 어떤 순서로, 왜 등장했는지를 따라간다.


뇌에는 약 860억 개의 뉴런이 있다.


장에는 약 1억 개의 뉴런이 있다.[1]


1억이라는 숫자만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비교 대상을 바꿔보면 다르다. 척수의 뉴런 수는 약 1억 개다.[2] 장신경계(enteric nervous system)는 척수와 맞먹는 규모의 신경망을 소화관 전체에 분산해 보유한다. 뇌에만 뉴런이 있다는 가정은 틀렸다.


문어의 뉴런 중 약 3분의 2는 팔에 분산되어 있다. 각 팔은 뇌의 지시 없이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인다. 장신경계는 인간 안에 있는 그 원리의 흔적이다.


장을 소화기관으로만 볼 때 생기는 일

1983년, 배리 마셜(Barry Marshall)이라는 호주의 젊은 내과 전공의가 위궤양 환자의 위 조직에서 나선형 세균을 발견했다. 그는 이 세균이 위궤양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학계의 반응은 냉담했다. 위산이 강하게 분비되는 위 안에서 세균이 살 수 없다는 것이 당시의 정설이었다. 위궤양은 스트레스와 과도한 위산 분비의 문제로 이해됐다. 치료는 제산제와 식이요법이었다.


마셜은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직접 그 세균 —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 — 배양액을 마셨다. 10일 후 위염이 생겼다. 항생제로 치료했다. 이 실험 하나가 위궤양의 원인을 바꿨다. 마셜과 워런(Robin Warren)은 200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이 이야기가 중요한 것은 세균의 발견 때문만이 아니다. 장을 오직 소화기관으로 보는 프레임이 수십 년 동안 틀린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위산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를 묻는 동안, 실제 원인인 외부 노드는 보이지 않았다.


헬리코박터는 현재 전 세계 인구의 약 44%가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3] 모두가 궤양이 생기지는 않는다. 같은 외부 노드가 숙주 네트워크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


채널이 있는데 방향이 달랐다

뇌와 장을 잇는 채널이 있다. 미주신경(vagus nerve)이다.


미주신경은 뇌간에서 출발해 심장, 폐, 복부 장기까지 뻗어 있다. 오랫동안 이 신경은 뇌에서 장으로 명령을 내리는 단방향 채널로 이해됐다. 뇌가 상위 노드, 장이 하위 노드인 구조.


실제 측정 결과는 달랐다. 미주신경 섬유의 약 80~90%는 장에서 뇌 방향으로 신호를 전달한다.[4] 뇌가 장에게 지시하는 채널이 아니라 — 장이 뇌에게 상태를 공유하는 채널이었다.


트래픽 방향을 반대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mermaid

flowchart LR

A["장신경계\n(ENS)\n뉴런 ~1억 개"]

B["미주신경\n(vagus nerve)"]

C["뇌간 →\n전뇌"]


A -->|"80~90% 신호\n장→뇌"| B

B -->|"10~20% 신호\n뇌→장"| A

B <--> C

```


세로토닌이 어디서 만들어지는가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serotonin). 기분, 수면, 식욕, 감정 조절과 연관된다. 뇌에서 만들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전체 세로토닌의 약 90~95%는 장에서 생산된다.[5] 장 내벽의 장크롬친화성 세포(enterochromaffin cell)가 주요 생산지다. 나머지 5~10%가 뇌에서 만들어진다.


장에서 생산된 세로토닌은 혈뇌장벽을 통과하지 못한다. 뇌에서 쓰는 세로토닌과 장에서 쓰는 세로토닌은 같은 분자지만 별개의 풀로 운용된다.[5] 장의 세로토닌은 소화관 운동을 조절하고, 미주신경을 통해 뇌에 포만감·메스꺼움·불편감 신호를 전달한다.


항우울제 계열의 SSRI(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가 소화 장애를 부작용으로 동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의 세로토닌 시스템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뇌를 타깃으로 한 약이 장에도 작용하는 것은 두 시스템이 같은 분자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장내 미생물: 네트워크 안의 외부 노드

장에는 약 38조 개의 미생물이 산다.[6] 인체 세포 수와 거의 같은 규모다.


이것들은 우리 몸이 만든 세포가 아니다. 외부에서 유입되어 장 안에 정착한 생태계다. 그런데 이 외부 생태계가 내부 네트워크에 깊이 연결되어 있다.


장내 미생물은 단쇄지방산(short-chain fatty acids)을 생산한다. 이 물질은 장벽 세포의 에너지원이 되고, 면역 세포의 활성을 조절하며, 일부는 혈뇌장벽을 통과해 뇌에 영향을 미친다.[7] 미생물은 또한 세로토닌 생산에 관여하고, GABA 수용체에 영향을 주는 물질도 만들어낸다.


외부 노드가 내부 네트워크의 신호 물질 생산에 직접 개입하는 구조다.


그리고 이 외부 노드의 다양성이 중요하다.


항생제를 복용하면 병원성 세균과 함께 장내 유익균도 대량으로 제거된다. 단기간에 마이크로바이옴 다양성이 급감한다. 무균 환경에서 자란 실험동물은 면역 발달과 신경 발달 모두에서 결함을 보인다.[8] 외부 노드가 없으면 내부 시스템이 제대로 훈련되지 않는다.


노드가 다양할수록 네트워크는 안정적이다. 림프계 편에서 쓴 것처럼 — 잘 만들어진 분산 시스템은 단일 장애점이 없다. 그런데 다양성 자체가 줄어들면 그것이 새로운 취약점이 된다. 개별 노드가 아니라 노드 생태계가 무너지는 것이다.


```mermaid

flowchart TD

A["장내 미생물\n(~38조 개)"]

A --> B["단쇄지방산 생산\n→ 장벽 유지·면역 조절"]

A --> C["신경전달물질 관여\n→ 세로토닌·GABA 경로"]

A --> D["면역 세포 훈련\n→ 전신 면역 반응 조율"]

B & C & D --> E["장-뇌 축 신호\n→ 미주신경 경유 뇌로"]

```


장의 상태가 기분이 된다, 그리고 루프가 생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배가 아프다. 긴장하면 속이 불편해진다.


이것을 심리가 신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만 읽으면 절반이다.


장의 상태가 뇌의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방향도 실재한다. 동물 실험에서 특정 장내 미생물을 제거하거나 교체하면 불안 행동이 변한다.[9] 프로바이오틱스를 투여했을 때 불안 수준이 낮아졌고, 미주신경을 절단하면 이 효과가 사라진다 — 채널을 끊으면 장의 신호가 기분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뜻이다.[10]


과민성 장 증후군(IBS, Irritable Bowel Syndrome)이 이 루프의 임상적 표현이다.


IBS는 명확한 구조적 손상 없이 복통, 팽만감, 설사 또는 변비가 반복되는 상태다. 오랫동안 "기능성" 질환, 즉 심리적 문제가 신체에 나타난 것으로 분류됐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서 IBS 환자의 장신경계가 과민화되어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11] 뇌의 불안 상태가 장의 설정값을 바꾸고, 과민화된 장이 다시 뇌에 불편 신호를 보내는 루프.


신장 편에서 만성 불안이 레닌 분비를 통해 혈압의 기본값을 바꾼다고 썼다. 장에서는 그것이 더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심리 상태가 말단 인프라의 감도를 조정하고, 조정된 인프라가 다시 중앙에 신호를 보낸다. 단방향이 아니라 쌍방향 루프다.


발생: 뇌보다 먼저 배선된 신경망

장신경계는 배아 발생 초기에 형성된다. 신경능선세포(neural crest cell)가 발생 4~5주 차에 소화관을 따라 이동하며 장신경계를 구성한다.[12] 기본 배선은 태아기에 일찍 완성된다. 전전두엽이 25년이 걸리는 것과 대조적이다.


진화적으로도 장신경계는 먼저 있었다. 신경계가 단순한 다세포 동물에도 장신경계와 유사한 분산 신경망이 있다. 중추신경계 없이 소화관 주변의 분산 신경망만 있는 상태. 뇌가 나중에 생기면서 이미 운영 중이던 시스템과 연결 채널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 "제2의 뇌"라는 표현은 절반만 맞다.
장이 먼저였다.
순서를 바꿔야 한다.


장-뇌 축(gut-brain axis)이라는 표현은 이 양방향 통신 구조 전체를 가리킨다. 미주신경, 세로토닌 경로, 면역 신호, 미생물이 생산하는 물질 — 이 모든 채널이 장과 뇌를 잇는다.


림프계가 뇌의 노폐물을 얼굴 아래로 흘려보내는 채널이라면, 장은 그 반대편에서 뇌에게 먼저 말을 걸어온다. 뇌가 중심이 아니다. 장이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외부 미생물이 신호 생산에 개입하고, 채널의 80%가 장에서 뇌로 향한다.


네트워크에는 위아래가 없다.




책 추천

사실 관계를 더 촘촘하게 따라가고 싶다면 이 책들이 있다. 마이클 거숀(Michael D. Gershon)의 《제2의 뇌(The Second Brain)》(1998)는 장신경계 연구의 선구자가 30년의 연구를 정리한 책이다. 에머런 메이어(Emeran Mayer)의 《장과 뇌(The Mind-Gut Connection)》(2016)는 장-뇌 축의 최신 연구를 임상 관점에서 풀어낸다. 저스틴 소넨버그(Justin Sonnenburg)의 《좋은 장이 사람을 살린다(The Good Gut)》(2015)는 마이크로바이옴의 다양성과 건강의 관계를 다룬다.




참고

[1] Furness JB. The enteric nervous system and neurogastroenterology. Nature Reviews Gastroenterology & Hepatology. 2012.
[2] Herculano-Houzel S. The human advantage. MIT Press. 2016.
[3] Hooi JKY, et al. Global prevalence of Helicobacter pylori infection. Gastroenterology. 2017.
[4] Prechtl JC, Powley TL. The fiber composition of the abdominal vagus. Brain Research. 1990.
[5] Yano JM, et al. Indigenous bacteria from the gut microbiota regulate host serotonin biosynthesis. Cell. 2015.
[6] Sender R, et al. Revised estimates for the number of human and bacteria cells in the body. Cell. 2016.
[7] Cryan JF, et al. The microbiota-gut-brain axis. Physiological Reviews. 2019.
[8] Sudo N, et al. Postnatal microbial colonization programs the hypothalamic-pituitary-adrenal system for stress response. Journal of Physiology. 2004.
[9] Bravo JA, et al. Ingestion of Lactobacillus strain regulates emotional behavior and central GABA receptor expression in a mouse via the vagus nerve. PNAS. 2011.
[10] Bhattarai Y, et al. Gut microbiota-produced tryptamine activates an epithelial G-protein-coupled receptor to increase colonic secretion. Cell Host & Microbe. 2018.
[11] Wouters MM, Boeckxstaens GE. Is there a causal link between psychological disorders and functional gastrointestinal disorders? Expert Review of Gastroenterology & Hepatology. 2016.
[12] Hao MM, Bornstein JC, Young HM. Development of myenteric cholinergic neurons. American Journal of Physiology.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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